현대 과학의 언어로 설명한 『반야심경』 강의!
과학의 언어로 불교의 교리를 설파해 온 정화 스님의 『반야심경』 강의책이 나왔다. 『반야심경』은 일반인에게도 가장 널리 알려진 불교 경전 중 하나이며, ‘동아시아 불교에서 가장 많이 암송되고 연구된 경전’이다. 대승불교 초기에 성립된 ‘반야경’(대표적인 반야경이 당나라 때 현장玄奘이 번역한 600권에 달하는 『대반야바라밀다경』이다)의 요체를 한자(漢字) 260자에 담아 낸 경전이 오늘날 우리가 주로 보는 『반야심경』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존재는 인연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며 실체가 없다고 하는 ‘공’(空) 사상을 말하며 이런 인식은 반야바라밀(지혜의 완성)에 의거해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반야심경』의 기본 논지다.
『반야심경』은 유명한 만큼, 전문가용 입문자용 할 것 없이 해설이 담긴 많은 판본이 시중에 출간되어 있다. 현대적인 언어로 수월하게 해석하고 해설한 책들도 적지 않지만 정화 스님의 이 책은 『반야심경』이 압축한 대승불교의 요체를 현대 진화생물학과 뇌과학, 생명공학 등 현대 첨단 과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언어로 표현하여 이해를 돕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실제로 생명활동을 한다는 것은 외부의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이를 열린계라고 이야기합니다), 내부의 비움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받아들인다는 뜻이 성립될 수 없으니, 비움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온전한 생명활동을 이어 가기가 쉽지 않게 됩니다. 생명계가 열린계, 곧 경계의 막이 열려 있다는 것은 어떤 생명체건 고립된 개체로서의 삶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하겠습니다. 이를 연기법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정화 스님의 반야심경 강의』, 32쪽)
‘열린계’는 자연과학의 개념으로, 외부와 물질 및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는 물리적 계(系)를 뜻하는데, 어떤 생명체건 고립된 개체로 있을 수 없다는 이 개념을 가지고 정화 스님은 불교의 ‘연기’(緣起)를 말한다. 공성의 장에서 인연 따라 모든 현상이 생겨나고 사라진다는 ‘연기’는 생명의 장 자체가 앎의 장이라는 말과 같은데, 마음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반야바라밀다 수행이 깊어지면 조건의 변화에 따른 인연의 장, 곧 앎의 장이 만들어 내는 패턴 변화를 직관하게 된다고 말이다. 자연과학의 생명계를 불교의 ‘연기법계’와 연결하며, 고립된 막으로 닫힌 자아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을 무아(無我)에 연결해 간다.
또한 대승불교의 중요 개념인 보살(깨달은[보리] 중생[살타])을 설명할 때도 보살의 깨달음의 내용이 바로 낱낱의 생명체는 그 모습 그대로 자신의 우주를 실현하는 생명체로 존재하지만, 그렇게 존재하고 활동할 수 있는 것은 환경과 이웃 생명체들과 맺고 있는 생명의 네트워크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보살 수행자의 수행이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바라밀이란 “생명활동 본연의 내용을 온전히 체화한다는 것이기에, 완성 또는 피안(분별을 통해 겪게 되는 불만족이 없는 세계)에 이른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정화 스님은 이처럼 현대 과학의 개념들로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는 물론 오온(五蘊), 육근(六根), 법신(法身) 등 핵심적인 불교 용어들을 풀어 가며, 『반야심경』이 주문을 외며 마음의 평안을 찾는 경전을 넘어 “중생계 그 자체를 부처세계로 만드는 깨닫는 사건”에 나아가는 책으로 실감하게 하고 있다. 하여 “생명활동은 언제 어디서나 이미 깨달음을 실현하는 찬연한 삶, 반야바라밀다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삶”이라 할 수 있으니, 삶의 모습마다가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않고, 시절인연을 온전히 살아가자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