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면 인생은 결코, 희망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들짐승처럼 울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헤세만큼 우리의 사랑을 받는 독일 작가는 드물 것이다. 헤세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그건 헤세가 작품에서 다루는 문제와 정서가 오늘날에도 유의미하다는 의미다. 잃어버린 낙원과 잊힌 고향에 대한 향수, 첫사랑의 추억과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 자신의 세계와 바깥 세계 그리고 낯선 세계와의 충돌을 통해 찾아가는 내면 세계로의 여행, 어느 곳에도 얽매이지 않는 방랑과 고독과 도전, 자연과의 은밀한 교감과 합일, 죽음과 절망과 구원, 서정적 음악의 세계 등 헤세가 작품에서 다루는 세계는 시공간을 넘어 우리들의 경험과 고민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은 낙원이며 그 시절의 경험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유년 시절은 즐거움이 많은 시기이다. 사소한 놀이 하나, 가족들과 친구와의 작은 추억 하나하나가 행복을 주고, 오래도록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 인상은 대체로 유쾌하고 경쾌하다. 「유년 시절」의 ‘나’는 봄날, 온 세계가 무엇이 되기 위한 욕망에 사로잡혀 동경에 차고 기대에 부푸는 기적 같고 낙원 같은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희미한 기억이 점차 선명해지면서 친구 브로지와의 추억이 하나씩 떠오른다. 유년 시절 ‘나’는 브로지와 다투고 다시 화해한다. ‘나’는 브로지의 몸에 난 커다란 상처를 보고 깊은 연민을 느끼며 아끼는 장난감을 선물한다. 몸이 약한 브로지는 자기 생의 시간을 선택할 수 없고, ‘나’는 어머니의 권유로 브로지의 소생을 바라며 정성껏 히아신스 꽃을 가꾼다. 어른이 된 ‘나’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유년 시절에 경험하고 체험한 것들이 훗날 여기저기 다닌 여행길에서 경험하고 체험한 것들의 총합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은 불완전하기에 대담하고 위험했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젊은이들은 좀 더 많은 것을 적극적으로 체험하고 선택의 순간을 경험한다. 그 경험과 선택이 쌓여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눈이 밝아지고 지혜로워진다. 「대리석 공장」에는 세 명의 젊은이가 나온다. ‘나’와 ‘베커’는 젊기에 자신감에 차서 행동한다. ‘나’는 여러 가지 힘든 경험 끝에 삶을 긍정하는 철학을 지니게 되었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침착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었다. 리파하 저택의 관리인인 베커는 노련하고 약은 젊은이로 세상의 모든 지혜는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며 냉소적이다. 헬레네는 홀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여 아버지를 닮아 남자 같은 데가 있지만 상당한 미인이며 의연함과 성숙함도 지닌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고 있는 데다가 여자라는 한계 속에서 자기 자신의 인생을 자유롭게 선택하지 못한다. ‘나’는 헬레나를 사랑하여 그녀가 강하게 만류하는데도 대담하게 사랑을 고백하며 저돌적으로 다가간다. 헬레나는 ‘나’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자기의 운명에 순종하기 위해 ‘나’의 사랑을 거절한다. 굳세고 강한 베커는 자신감에 차서 그들의 연애를 방관하다가 사랑하는 헬레나를 영원히 잃고 만다.
*나는 자유로운 남자가 되어 모든 나의 길을 홀로 걸었다.
「가을 도보 여행」의 ‘나’는 라틴어 학교 학생일 때 어리석은 치기에 ‘나’를 찾아온 예쁘고 선량하고 남루한 어머니를 외면한 적이 있었다. 아름다운 율리를 사랑하여 그녀를 따라 시민 단체에 가입하지만 곧 탈퇴한다. 율리를 떠나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내 미래가 불투명하니 기다리지 말라는 편지를 율리에게 보낸다. 율리는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답장했다. 하지만 반년가량 지난 뒤 그녀는 다른 사람을 사귀고 싶으니 자기를 잊어 달라는 편지를 보낸다. 얌전하고 조용했던 ‘나’는 폭풍처럼 세상을 휘젓고 돌아다닌 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청춘의 추억이 깃든 곳을 다시 보려고 가슴 두근거리는 일겐베르크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율리를 다시 만나지만 ‘나’는 자기의 어리석음에 괴로워한다.
*단조로운 일상이 반복되는 불변의 시간은 죽음과 같다.
「늙은 태양 아래서」의 시립 양로원에 사는 카를 휘를린은 공장 감독관으로 지내다가 운 좋게 꽤 많은 유산을 상속받고 사업도 크게 번창한다. 그러나 새로운 경쟁자가 나오면서 휘를린은 파산하고 요양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양로원에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양로원 생활은 기대와는 달리 그에게 분노와 회한, 모멸감과 불쾌감, 권태감만 느끼게 할 뿐이다. 공장주 휘를린은 형편없이 무능력한 인간으로 남의 보호를 받고 사는 자신의 처지에 고독과 절망을 절감하고 점점 더 조용하고 침울한 인간이 되어 간다. 익살꾼 핑켄바인은 자유와 가난과 활동성과 끊임없는 긴장을 찾아볼 수 없는 양로원 생활에 숨이 막혀 자신의 선택이 어리석었음을 깨닫는다. 쓸쓸하고 조용해지는 양로원 생활에서 핑켄바인은 자기가 침몰하는 배 위에 혼자 살아남은 최후의 한 사람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봄의 향기를 음미하면서 좀이 쑤시기 시작한다.
헤세의 작품은 대체로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결코 어둡지 않다. 이는 주인공들이 보여 주는 자연 친화력 때문이다. 또한 헤세의 자연 친화성뿐만 아니라 자연을 묘사하는 세심한 필치에 담긴 성실성과 진정성으로 독자에게 신뢰감을 준다. 또한 인간을 묘사하는 데에도 성실성과 진정성을 보여 준다. 헤세의 단편들 2 『대리석 공장』 역시 그러한 면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책 속 인물 대부분은 전형적인 선인, 악인이 아니라 두 속성을 공유하고 있는 약점을 지닌 인물들로 ‘너무나 인간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 책에서 헤세는 피할 수 없든, 자초했든 생의 길목에서 슬픔과 고독에 직면하여 고통과 절망에 빠질지라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희망에 차서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설 수 있다면 그 삶에도 찬란한 봄의 햇빛이 스며들고 젊음이 약동할 거라고 말한다. 우리의 어리석음은 무엇이며,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 책에서 헤세는 말하고 있다. 살아있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든 뒤로 물러서든 옆으로 옮기든 변화한다. 미래를 꿈꾸고 새로이 도전하고 자기 의지에 의한 선택을 그만두지 않는 영원히 젊고 활기찬 삶 가치에 주목하게 하는 헤세의 단편들 2 『대리석 공장』은 우리가 여전히 헤세의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