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살 빠른 여울처럼 숨차고 달뜨고 맑은 청춘의 한때!
처음이라, 그땐 누구나 지나치게 대담하거나 소심했다.
헤세의 단편들 1 『회오리바람』에 실린 작품은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헤세의 초기 창작 시기의 작품들이다. 이 책에는 「칠월」, 「라틴어 학교 학생」, 「회오리바람」, 「청춘은 아름다워라」 등 네 편의 작품이 실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까지 발표된 작품들은 대체로 젊은 시절의 자신의 고뇌와 우수 그리고 방황을 감성의 언어를 사용하여 서정적으로 그려낸 낭만주의 성향을 띤다. 여기 수록된 작품 또한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주인공들의 성장 이야기로 교양 소설의 면모를 보인다.
*청춘은 순진하고 열정적이며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
청춘은 순진한 모험가로 거친 도전을 즐긴다. 또래와 우정을 나누고 첫사랑의 설렘과 아픔을 경험한다. 어린 시절의 고향에 대한 향수와 가족에 대한 추억과 사랑을 느끼면서도 유년 시절과 결별하고, 집과 학교 울타리 밖 낯선 세계를 엿보고, 삶의 의미를 찾아 고향을 떠나 새로운 출발을 꿈꾸고 다시 돌아온다. 아직은 어린 시절의 관심이 여전하고 그때의 놀이를 즐기지만 이내 흥미를 잃고 어른들의 세계를 동경한다. 「칠월」의 파울은 의로운 도적이 주인공인 『군도』를 즐겨 읽는다. 「칠월」의 파울과 「라틴어 학교 학생」의 카를은 처음으로 이성에 눈을 뜨고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라틴어 학교 학생」의 카를은 하녀들의 세계를 엿보며 그들에게서 지고한 우아함과 성스러움을 발견한다. 「회오리바람」의 ‘나’는 알을 깨고 나오는 새처럼 유년 시절과 고통스럽게 결별하며 고향을 떠난다. 「청춘은 아름다워라」의 ‘나’ 헤르만은 부모와 함께하는 생활을 노예 생활이라고 생각하며 반항심을 가지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모험을 감행하곤 한다. 그런 그가 오랜 방랑기를 거치며 장성하여 다시 고향에 돌아오고 그곳에서의 생활에 편안함을 느낀다. 시간이 흘러서는 부모님께 감사와 존경심마저 갖게 된다. 이처럼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성장기 청춘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청춘은 ‘체험’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며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어른이 되어 간다.
사춘기나 젊은 시절은 인간의 성장에서 꼭 거치는 발달 단계다. 우리는 청춘의 시기를 지나 어른이 된다. 그러나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몸집만 커졌지 인생 경험이 거의 없어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 모르는 채 나이만 먹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춘기나 청춘의 시기에는 새로운 상황에 많이 직면한다. 그때는 처음이라 누구나 서툴다. 그래서 그 행동이 지나치게 대담하거나 소심하다. 하지만 실수투성일지라도 직접 부딪혀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립심이 생기고,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며, 삶의 기술과 지혜를 배우게 된다. 「칠월」의 등장인물 중 파울, 베르타, 홈부르거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그러하다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파울은 예쁜 여자에 대해, 베르타는 라틴어 학교 학생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홈부르거는 타인의 권위에 복종하여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자기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소극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직접 체험을 통해 자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칠월」의 홈부르거 선생은 어른이지만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이다. 때로는 파울의 아버지보다 더 연장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파울보다 주체적이지 못하며 외부의 권위에 의지하며 쉽게 위축되어 그 상황을 회피하는 소극적인 인물이다. 반면에 「라틴어 학교 학생」의 하녀 티네나 「청춘은 아름다워라」의 안나는 실연과 짝사랑의 경험을 통해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현명하게 대처한다. 「회오리바람」의 ‘나’는 여자와 사랑을 꿈꾸면서도 아름다운 베르타가 가슴 떨리는 사랑의 폭풍처럼 깊숙하게 자신을 엄습해 왔을 때, ‘나’는 의지에 역행해서 격정에 휘말려 있는 자신을 건져 내기 위해 절망적으로 안간힘을 쓴다.
*믿음과 사랑은 이성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헤세는 청춘의 사랑뿐 아니라 믿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청춘은 아름다워라」에서 ‘나’의 어머니는 신앙 없이는 인생을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한다. 지식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며 지식과 확신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고 한다. 믿음은 이성의 범주가 아니라서 언젠가는 이성이 모든 걸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걸 깨닫는 날이 올 거라고 ‘나’에게 말한다. 헤르만의 어머니는 사랑 또한 이성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칠월」의 파울은 오만한 조소의 눈빛을 지닌 여자에게 끌리고, 「라틴어 학교 학생」의 카를은 하녀인 티네에게 사로잡히며, 「청춘은 아름다워라」의 ‘나’는 고통과 기쁨을 동반하고 피상적인 대화할 수 있는 헬레네를 사랑한다. 「칠월」에서 친절하고 세심한 그레테 고모는 어린 시절 사랑의 정원에서 별로 수확한 것도 없이 쓰라린 기억만 갖고 있다. 나쁜 여자나 남자에게 끌리고, 밤잠을 설치는 이유가 사랑이 이성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일까?
끝없는 자기 탐구와 자기실현의 길을 모색하며 성장에 대한 대담한 묘사를 통해 ‘청춘’을 대변하는 작가 헤르만 헤세. 헤세의 젊은 시절은 경건한 기독교적 분위기 속에서도 고집 세고 권위에 반항하고 불안했다. 이 작품들이 발표될 때는 헤세가 신혼으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했다. 그런 까닭인지 이 작품에서는 젊음의 고뇌와 방황과 우울을 넘어 건강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듯, 한 차례 뇌우가 쏟아지고 난 뒤처럼 밝다. 자연에 대한 사랑과 친밀감, 한 발짝 떨어져 젊은 그들을 지켜보는 어른들, 독서와 낚시와 음악이 낭만적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는 이 작품의 분위기는 그래서 따뜻하다. 그러나 헤세는 신혼의 안락함 속에서도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우유와 장작이 충분하고 좋은 포도주가 있는 풍족한 생활 속에서 ‘더 이상 고독한 방랑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분노에 떨었다고 한다. 이 책에 실린 작품 중 가장 늦게 쓰인 소설이 「회오리바람」인데 ‘나’는 소박한 일상이 반복되는 고향에서의 삶에 답답함을 느낀다. 언제까지난 안일하게 만족하며 갇혀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모든 걸 다 말하지 않으며 또한 다 보여 주지 않는다.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알지 못하면 깨닫지 못한다. 헤세의 경험과 인식이 독서 행위를 통해 독자의 경험과 만날 때 이 작품의 함의는 더욱 넓어지고 풍성해진다. 이제 막 어른의 세계로 발을 내딛거나 그 길을 빠져나온 누군가의 청춘이 이 작품을 만난다면, 윤곽 흐릿한 청춘이 희뿌연 안개 속을 걸어 나와 선명하고 당당하게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때 보이는 청춘의 모습은 용감하며 사랑스러울 것이다. 지나고 보면, 청춘은 짧다! 돌아보면, 모든 게 아름답고 완벽하다. 청춘 또한 그처럼 거룩하고 빛나 보일 것이다. 헤세의 작품도, 우리들의 청춘도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