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독특한 형식 속에 담아낸 시인, 에밀리 디킨슨
디킨슨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고통에 대한 감각이 남달리 예민했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디킨슨은 감각적 경험의 진정성을 추구한 시인이었고, 그래서 감각적 경험을 더욱 첨예하게 강화시키는 고뇌와 고통을 사랑했다. 시행의 중간에 대문자를 쓰고 대시(-)를 빈번하게 사용하는 등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그녀만의 독특한 시 형식 속에 고통에 천착함으로써 삶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인의 시선이 드러난다. 죽음의 필연성과 동시에 죽음 너머의 불확실성에 대한 호기심도 디킨슨 시의 특징 중 하나다. 종종 기독교적 관념에 도전하는 전복적인 상상력은 죽음의 신비를 초월적 영역이 아닌 인간의 감각적 경험의 세계인 이 땅의 것으로 풀어내는 독특한 시각을 제시한다.
산다는 건 고통인가
애를 써야 살아지는가
선택이란 걸 할 수 있다 해도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는 것일까
오랜 세월 고통을 인내하고
이내 미소를 되찾은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
그 미소는 기름이 다한
등잔불처럼 희미해
세월이란
일찍이 저들을 아프게 한 상처에
수천 겹 상처를 덧쌓는 것일진대
그 세월이 흐른들 치유의 향유가 될 수 있을까
- 「마주치는 모든 슬픔을 가늠해 본다네」 중에서
풍부한 상상력과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에밀리 디킨슨의 대표 시를 만나다
디킨슨은 간결하고 수수께끼 같은 언어로 복잡한 감정과 개념의 가장 본질적인 진수를 증류해 낸다. 디킨슨은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언어와 형식, 그리고 전복적 상상력으로 19세기 시의 전통적인 관념에 저항하고 창의성의 문을 열어 현대시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나를 산문 안에 가두어 버렸어요,
어린아이였던 나를
조용히 시키려
벽장에 가두었듯이
조용히라니! 분주히 돌아가던 내 머릿속을
그들이 들여다보았더라면
차라리 반역의 죄를 물어
새를 새장에 가둬놓는 것이 더 나았을 거야
의지만 있으면 새는
하늘의 별처럼 수월하게
지상의 속박을 벗어나
웃겠지, 나도 그쯤은 할 수 있어
- 「그들은 나를 산문 안에 가두어 버렸어요」 전문
시간을 뛰어넘어 언제까지나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시
한울세계시인선은 국내의 유수한 번역자들과 함께 뛰어난 시인들의 대표 시들을 번역·소개하고자 기획되었다. 2024년 6월 1차 출간으로 여덟 권의 시선집을 세상에 내놓는다. 시에는 저마다의 목소리가 있다. 한울세계시인선은 시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쉬운 언어로 담아내기 위해 번역에 힘썼다. 책의 말미에 옮긴이가 쓴 해설은 이해를 풍부하게 할 것이다. 이번 1차 출간에 이어서 2025년에도 10여 권의 시집이 발간될 예정이다. 윌리엄 블레이크, 샤를 보들레르 등 대중성 있는 시인들의 시선집에 이어 2차 출간 역시 헤르만 헤세, 괴테 등 시간을 뛰어넘어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 시 세계가 담긴 시선집을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