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렘의 시간
누군가는 여기를 떠나고 누군가는 되돌아온다.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의 질량은 다르겠지만 공간과 시간은 존재의 있음으로 비로소 발생하는지도 모른다. 권달표라는 이름이 미스터 건에서 건달프로 변한 한국인 건달프는 아내를 잃고 할렘에서 고물상을 하고 있다. 건달프도 한때는 늘 단정한 정장 슈트를 입고 다니던 뉴요커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도 어느 순간 좌초하고, 인생이 뒤집히는 바람에 할렘에서 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방인들 대부분의 삶이 그렇듯 떠도는 자들은 쉽게 자리를 잡지 못한다. 윤서의 남자친구인 호세도 그의 어머니가 그를 길 위에서 낳았다. 숙명처럼 길 위를 떠돌던 호세는 어머니의 유골을 뿌리던 브루클린교 위에서 고향을 그리워한다.
우리가 우리를 버리는 방식
그해 봄, 남쪽 지방에서는 사람에 의한 대량 학살이 있었고, 그해 봄 또 다른 남쪽 지방에서는 바이러스에 의한 학살이 시작되었다. 사람에 의한 학살은 어둠에 묻혀서 마치 독가스처럼 조금씩 새어 나올 뿐이었지만 바이러스에 의한 학살은 바람보다도 더 빨리 다른 도시로 퍼졌다. 국가권력에 의한 학살과 바이러스의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가 우리를 버리는 방식을 다룬다. 판타지로 그려진 영화와 운동권으로 살던 형의 죽음이라는 현실, 주인공 윤이 군대에서 겪었던 추악한 사건, 군대에서 죽어가는 학생을 살리지 못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서 영화에 자본을 댄 임 대표가 겪었던 바이러스라는 괴물, 그런 현실과 판타지의 사이를 소설은 바쁘게 오가면서 시간과 공간의 경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마저 허물지만…….
나는 왜 목련꽃을 떠올렸을까
친딸이 아니라서 두고 나온 ‘나’를 친어머니인 줄 알고 찾아갔던 ‘나’는 비로소 완벽하게 버려진 자신을 확인한다. 이파리가 하얗게 떨어지는 목련은 더러는 송이째 툭 떨어지기도 하는데 그렇게 떨어진 꽃을 보고 ‘나’는 비로소 온전한 나, 나무에 기대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자꾸만 그 여자를 찾아가고 여자가 만드는 꽈배기를 사는 것은 그 여자로부터 ‘떠날 용기’를 가지기 위해서였음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사는 일은 어떨 때는 송이째 툭 떨어지는 목련꽃처럼 그렇게 툭 떨어져야 하는 일이 있다. 자꾸만 자잘한 꽃잎처럼 마음을 두다가는 상처만 더 깊어질 터, 자신이 그렇게 송이째 툭 떨어지는 목련꽃이 되어야 함을 ‘나’는 비로소 알았던 것이다.
시점과 관점
유투브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다. 유투브라는 괴물은 마치 해결사처럼 도도하게 이 시대의 중심에 서 있다. 생산이 곧 미덕인 줄 알던 시대를 지나왔다. 생산이 없는 소비가 존재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지한 사람들의 등골을 빼먹는 일이라고 어디 쉽겠는가. 속아주는 사람이 스스로 찾아오지 않는다면 찾아 나서야 한다. YD ‘그’는 자신의 연인 은영과 함께 운영하던 유투브가 은영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면서 더 강하고 자극적인 것을 찾아 우크라이나의 전쟁터로 간다. 제대한 지 4년이나 지난 특전사 출신의 유투버일 뿐인 그가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로 간 것은 무지한 자들을 더 강하게 기망할 소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