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지 시인이 새 시집 『내 안의 풍경』을 도서출판 모아드림 기획시선으로 출간하였다.
저자 김신지 시인은 1945년 대전에서 출생하여 1968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 《문학마을》을 통해 등단하고 2011년 첫 시집 『화려한 우울』을 2015년 두 번째 시집 『부서진 시간들』을 2020년 세 번째 시집 『따뜻한 고독』을 펴냈다.
. 세상을 바라보는 유장(悠長)한 시선과 삶의 체험에 바탕을 둔 경륜의 숙성을 느낄 수 있는 시들이 그 세계의 중심을 이룬다. 그는 이제까지 모두 세 권의 시집을 상재(上梓)했다. 세 번째 시집 『따뜻한 고독』을 공들여 읽은 필자는, 그의 시를 읽는 일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작고 소박하고 조촐하지만 값있고 품격 있는 사유(思惟)들이 숨어 있었고, 이를 통해 공감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 『내 안의 풍경』 또한 그와 같은 의미망의 범주 안에 있으며, 한결 더 세상사의 문리(文理)에 유연해지고 한 걸음 더 온전한 삶의 문법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음을 감각할 수 있었다.
이 시집의 1부 「시절은 스스로 온다」에 수록된 시들은 봄에서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다시 봄으로 계절이 순환하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그 다채로운 감상을 표현한 작품들이다. 그가 주목하는 계절의 여러 양상은 그냥 하릴없는 시간 경과의 모습이 아니다. 그 속에 ‘숨겨진 보화’처럼 잠복해 있는 정신과 영혼의 소재를 발굴하는 것이 그의 몫이다. 일찍이 A. 랭보가 “계절이여 마을이여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는가”라고 쓰지 않았던가. 「봄날 저쪽」에서 ‘환장하게 웃고 있는’ 꽃들, 「가을 여의다」에서 ‘풀 섶 벌레들의 절창’이나 ‘선물만 같던 단풍’, 「눈꽃 화엄」에서 ‘눈맞춤하며 반짝거리는’ 눈꽃들 모두 그 나름의 가치와 보람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이를 포착하는 시인의 눈이다.
햇살에 취한 창 너머
가로로 세로로 선 집들
세모난 지붕 아래
네모난 하얀 창문들
이른 눈을 뜬 목련들
꽃집이 두리기둥으로 오른다
성글던 까치둥지도 동글어 가며
들락날락 신혼살림 바쁘다
네모난 창틀에 얼굴 비벼대며
봄바람은 저 홀로 춤을 추고
살 오르는 나뭇가지 끝
불꽃 햇살이 나비춤으로 너울거린다
움츠렸던 겨울 가슴팍에
기하학 바람이 아다지오로 안겨 온다
꽃들 가뿐 숨소리가 속살대며
마당 끝 봄물을 퍼내고 있다
- 「봄날 기하학」 전문
봄날이면 집들도 창문들도 뭔가 기맥이 다르다. 항차 ‘이른 눈을 뜬 목련들’이나 ‘성글던 까치둥지’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봄은 새로운 기운이 생동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그 별칭을 청양(淸陽)이나 목왕(木旺)이라 하지 않던가. P. B. 셀리가 「서풍부」에서 노래한 말, “계절의 나팔 소리 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으리”처럼, ‘움츠렸던 겨울 가슴팍’에 ‘기하학의 바람이 아다지오로 안겨’ 오기에 정녕 봄이다. 시인은 꽃들이 가쁜 숨소리 속살대며, 마당 끝 봄물을 퍼내는 정경(情景)을 보고 있다. 이렇게 봄의 정령들을 흔연한 마음으로 맞고 있지만, 시인은 그 꽃다운 계절 한 철이 참으로 속절없음을 익히 알고 있다. 다음 처서(處暑) 시기의 시가 이를 잘 말해준다.
김종회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김신지의 시를 정성껏 살펴보면서, 강조하여 주목하지 않은 대목이 있다. 그것은 시의 내부에 또는 배면에 잔잔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깔려 있는 신앙심의 형상이다. 기실 이 잘 보이지 않는 영혼의 힘이야말로 김신지의 시를 부축하고 지탱하는 근원적인 부력(浮力)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이를 전면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문학적 정제(精製)라는 휘장 뒤에 감추어 두었다. 그런데도 그 기능과 역할이 훨씬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느낌이다. 마치 윌리엄 와일러의 영화 〈벤허〉에서, 예수의 얼굴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서도 그 신성한 능력을 더 잘 표현했듯이. 바라기로는 앞으로도 이 마르지 않는 힘이 시인 그리고 신앙인 김신지의 문학과 삶 양면에 걸쳐, 크고 복된 은혜로 함께 하길 바라 마지않는다”라고 평했다.
김신지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함께 하며, 계절과 시간의 흐름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을 만끽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