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진상을 파헤칠수록 어둠 속으로 침몰하는 진실
복수의 칼끝은 과연 올바른 방향을 겨누고 있는가?
홍진은 이지하가 범인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매순간 그에 대한 증오심을 유감없이 불태우며 “시체를 갈가리 찢어버릴 것”이라 마음먹는다. 이처럼 『달콤한 살인 계획』은 처음부터 범인을 특정하고, 그를 몰래 뒤쫓거나 조우하는 동안 일어나는 일련의 에피소드를 통해 끊임없이 불안감을 조성하는 서스펜스 기법을 차용한다.
그러나 이지하의 납치에 성공한 뒤 그를 고문하고 자백을 들으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홍진의 강력하고도 유일한 확신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신뢰할 수 있는 화자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홍진이 벼려온 칼날은 방향성을 상실한 채 잠시 동안 주춤한다. 홍진뿐 아니라 누구의 말도, 누구의 기억도 믿을 수 없게 된다. 이를 기점으로 소설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아무도 없는 상가의 정육점 지하실에 이지하를 감금하고 홍진이 그를 심문하는 장면은 가히 이 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극장에서 영화표를 산다거나 휴대폰을 조작하는 등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모든 일상적인 일을 처리하는 데조차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던 홍진이 이지하의 납치에 성공하는 순간, 실패를 거듭한 시간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카타르시스는 배가된다. 그러나 짜릿한 성공의 순간도 잠시, 고통에 찬 이지하가 내뱉는 말들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홍진이 가진 신념에 생채기를 낸다. 작가는 소설을 읽는 이로 하여금 의심과 긴장의 끈을 끝까지 놓을 수 없도록 진실과 오해 사이를 넘나들며 탁월한 줄타기를 보여준다.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진실은 어둠 속에 잠기고, 독자들은 이들의 최후를 목격하고자 하는 불가항력적인 열망에 이끌려 희미한 빛을 붙잡은 채 “짙은 어둠”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너무 환한 빛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적당한 어둠뿐이다. 그 어둠에 의지해 우리는 어딘가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곳이 어디를 향해 있든. 설령 더 짙은 어둠뿐일지라도. (331쪽)
지우고 싶은 기억에 몸부림치는 이들이 만나 일으키는 소용돌이
누구의 기억도 믿지 말 것!
『달콤한 살인 계획』은 장이 바뀔 때마다 두 인물의 시점이 번갈아 교차되는데, 이들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 저마다의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이다. 트라우마는 각각 ‘악몽’과 ‘환시’로 발현되어 이들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인물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을 강구한 끝에 스스로에게 완수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의 달성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소설에서 또 다른 절반 분량의 서술을 담당하고 있는 인물 화인은 과학수사계, 즉 감식반에서 일하는 경찰로, 평범한 사람이 그러하듯 “명분이나 이념보다는 습관과 필요에 의해 사는 사람”이다. 그는 계속해서 붉게 칠한 손톱의 소녀가 나오는 똑같은 악몽에 시달린다. 그 소녀는 다름 아닌 그가 18년 전 감식에 동참한 첫 사건에서 살해당한 여중생 ‘이정아’다. 이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되어 감옥에서 자살한 ‘윤장호’는 결정적으로 화인이 난로에서 채취한 재에서 나온 손톱으로 혐의가 확실시되는데, 그가 자살한 후에도 동일한 수법의 범행이 또다시 일어난다. 화인이 꾸는 생생한 악몽은, 진범은 따로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과 증거가 조작된 것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혼재되어 가시화된 현상이다. 그는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사한 케이스를 수집하는 데 병적으로 매달린다.
한편 홍진은 소명이 살해된 저수지에 처음 간 날부터 환시를 보기 시작한다. 소명의 허깨비는 홍진이 가는 곳마다 늘 따라다니며 친근하게 말을 걸기도 하고, 때로는 그녀를 놀리기도 하며, 또 어떨 때는 강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이지하에게 자백을 듣고 그를 죽여야겠다는 홍진의 결심은 이 환시의 힘을 얻어 더욱 강건해진다.
이처럼 발현 양상은 다르지만 유사한 목적성을 품은 홍진과 화인은 만남을 거듭할수록 짧은 몇 마디의 대화 속에서 공감과 이해를 형성해나간다. 서로 다른 둘의 열망이 하나로 결속되는 순간 일어난 고요한 소용돌이는 장차 일어날 거대한 파국을 예고한다.
“……고통이죠. 할 수만 있다면 아주 고통스럽게 해서…….”
“해서?”
“말하게 만들고 싶어요. 자기가 했다고……. 자기가 잘못했다고.”
아아.
그 말을 들을 수만 있다면.
내가 죽였다는 실토를 들을 수만 있다면.
그 말이 나오도록 고통을 줄 수만 있다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다른 건 정말이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것이다. (133쪽)
김서진 작가는 추리소설의 플롯과 서사에 이와 같은 초현실적인 서정성을 부여하며 대중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확보한 작품을 또 한 번 탄생시켰다. 작가는 사건의 세부와 인물의 심리를 마치 날실과 씨실처럼 촘촘하게 직조하여 읽는 동안에는 재미를, 읽은 후에는 여운을 오래도록 느낄 수 있게끔 독자들에게 빛나는 문장들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