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학평론가의 해설에서 가려뽑음)
#1. 어둠 속의 밝음, 당위를 노래하다
여러 병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지만 시에 나타난 시인의 일상은 매우 건전하고 성실하다. 건실한 나날의 삶은 스스로 정한 규칙과 합리적인 시간 운용 그리고 게을러짐을 멀리하는 몸에 밴 부지런함으로 구체화된다.
#2. 혼자의 삶, 삶에 대한 외경
김밥으로 아침을 열고 동태찌개와 막걸리로 점심을 해결하고 어스름 저녁, 식당 문을 밀치고 들어서니 공복의 아픔보다 사람이 그립다는 1~3연의 독백은 울림을 준다. 시인은 독거노인이다. 시집을 펴내는 독거노인, 일반인의 고정관념과는 다소 편차가 있을지도 모를 상황이지만 삶에 대한 의지와 외경, 노력은 엄숙해 보인다. 아침에 양성산 약수 한 사발로 하루를 지낼 힘을 얻었다면 이제 저녁에는 더운밥 한 공기로 새로운 날을 맞이할 힘을 얻는다.
#3. 비움과 거리두기의 미덕
짧은 아포리즘, 평범한 풍광 묘사로 읽히지만, 이 세 연은 나름 웅숭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자연과 시인 사이에는 가까운 듯 먼 듯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고 있다. 적절한 거리에서 바라보고 호흡하고 소통하는 자연은 알맞은 간격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속내 이야기를 내비치며 은밀한 비의며 오래 간직해 온 지혜를 털어놓는다. 낭만주의 이전의 자연은 인간에게 단순한 배경, 휴식의 공간이었을 따름이었는데 낭만주의에 이르러 비로소 자연은 인간의 동반자, 공모자, 은밀한 감성 교류가 가능한 새로운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4. 향수와 가족의 힘
그리 평탄하지 않았던 삶의 도정, 곡절 많았던 가족사의 연보를 통하여 시인이 고향, 가족, 그리고 생존이라는 개념에 대한 의식은 강화되고 넓이와 깊이를 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삶을 향한 의지와 긍정의 자세를 북돋아 준 것은 고향의 힘, 가족의 존재였음을 「절구통」에서 노래한다. 1, 2연의 고향집 외관 묘사에 이어 3~5연에서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토로하고 있다.
#5 이국 취향, 시간 여행
한 정민 시인은 파월 장병, 지금의 표현으로 베트남전쟁 참전용사로 근 60년 전 머나먼 베트남에 파병되어 생시를 넘나드는 여러 전투에 참전하고 귀환한 유공자다. 젊은 세대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터이지만 당시 1960~70년대 베트남 파병에 관련한 여러 사안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대목을 이룬다. 베트남전쟁 참전의 기억을 담아 펴낸 시집에서 추려낸 작품들은 반세기 전 아득한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으로 우리를 이끈다. 당시 명칭이었던 ‘월남’으로 떠나는 육군, 해병대 용사들이 시가행진을 하는 서울 대로변에 동원되어 몇 시간 전부터 태극기를 손에 들고 불볕 아래 기다렸던 중고등학생 시절 기억이 새롭다.
#6. 성찰과 긍정, 당위의 시
특히 이 시선집에서는 삶과 죽음, 여러 관심사에 대한 성찰, 젊음의 노화, 마땅히 긍정하고 당위로 받아들일 대상에 대한 겸허한 수용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고 최대한 긍정과 화해의 시선으로 마주보는 시인의 열린 심성과 눈길의 시편들이 다채롭다. 삶을 시종하여 성실한 직장인으로, 가장으로서 뜻밖에 조우하는 운명의 시련에 굴하지 않고 낙관적 인식으로 임하는 긍정의 자세, 거기서 비롯되어 조탁 되는 여러 화두를 대승적 화해의 시선으로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