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한 권의 탈레스 우화를 통해 서양철학사를 읽어보자.
이 책의 주제는 단순하다. 탈레스가 밤하늘의 별을 보다 우물에 빠지자 하녀가 웃었다는 이야기가 전부다.
하이데거는 1920년에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신참 교수로 당시 18세 여대생 한나 아렌트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탈레스 일화의 원 상황을 직접 실존철학 현장에 몸소 실습하였다. 그가 1927년 『존재와 시간』을 출간하였을 때 그는 그때까지 철학계에서 잘 들어보지 못한 존재, 존재자, 현 존재, 심연 등의 철학적 어휘들을 사용한다. 블루멘베르크는 철학사의 시초에서 탈레스를 원 철학자, 하녀 사이에 일어났던 세계 내 존재 등, 우물가의 설정을 원 장면이라고 부르고 이 대화의 무대에 해석학과 현상학을 대비시킨다. 이 시기에 마르부르크 대학 세미나에서 떠도는 이야기로, 가다머는 다빈치의 「천지창조」에 고개를 쳐드는 첫 인물이 신학에 속하는지 철학에 속하는지를 궁금해하였다. 원 철학자가 자빠져 곤두박질한 우물가에는 구경꾼이 있었다고 한다. 이 구경꾼은 신적인 대상을 ‘보는 자’, ‘관찰하는 자’라는 ‘테오도로스’로 각본의 플롯이나 무대 설정에 개입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본문은 이 구경꾼을 단지 트라키아 하녀에 국한하지만, 하이데거는 구경꾼을 하녀라는 단수에서 ‘하녀들’이라는 복수로 전용한다. 그는 철학자와 하녀 사이에 가까이 있음과 멀리 떨어져 있음의 존재론적 거리 간격을 현상학적으로 주목한다. 하이데거는 한나와의 사랑에서 그들 사이에서 일어난 원 사건으로부터의 은유적 개념의 전이로서 존재로부터 존재자의 교부라는 개념을 각인하였다. 그녀가 철학을 공부하였던 다른 동료들보다 훨씬 일찍 23살에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그녀의 재능 탓이기도 하지만 하이데거의 숨어있는 후광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차 세계대전에 미국으로 망명한 다음 전후에 미국 시민권자와 대학교수로 다시 독일에 돌아와 그녀 자신을 트라키아 하녀로 자처하면서 하이데거의 철학에 도전하여 심연에 빠진 철학자의 사유를 궤적을 무 이해로 조명하였다. 하이데거는 철학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과 때에 하녀들이라는 복수명사를 통하여 철학자의 곤두박질을 존재론적으로 방어하였다.
헬레니즘 시대의 키케로는 소크라테스가 철학을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 내려, 도시로 날랐고, 삶으로 살아가게 하였다고 평가하였다. 노예철학자 비온은 하녀의 편에서 하늘의 물고기자리를 관측하는 일보다 발밑의 생선을 인식하는 일에 치중해야 한다고 천문학자를 조롱했다. 교부 철학자 테르툴리아누스는 우리는 ‘발만 보아도 충분하고’, ‘위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강조한다.
중세는 천문학과 점성술로 공간적 거리의 대상을 지상적 근접의 대상으로 옮겼다. 따라서 먼 하늘에 있는 것과 발 가까이에 있는 것의 장소와 위치에서 철학자의 곤두박질을 왜곡하였다.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이 등장하자 탈레스와 하녀의 입장이 전도되었다. 베이컨은 우물에 자빠진 탈레스도 다 생각이 있었다면서, 지식의 증진에 테오도로스, 곧 구경꾼의 이론을 지적한다. 아마도 철학자는 캄캄한 우물 벽을 망원경 경관으로 놓고 우물물을 활용하여 천체를 관측하는 광학의 원리를 활용하였을 것이다. 베이컨은 트라키아 하녀를 신적인 계보를 지닌 판과 에코의 딸인 이암보로 보았다. 그녀의 어머니 에코가 우주의 진정한 소리를 대변하였다면, 그녀의 딸 역시 철학의 소리를 대변하였다. 칸트는 무지한 자는 무지의 개념을 가질 수 없으므로 트라키아 하녀와 같은 무지는 세계창조와 세계상실을 맞교환하는 형이상학을 제안했다. 포이에르바하는 탈레스와 하녀 사이의 천문학적 자리에 혼줄 놓음을 도입하고 두 사람이 한 몸이 되는 관념연합을 주선했다.
서양철학사에서 철학자의 우물 추락에 따른 곤두박질에 대한 역대급 경구가 나왔다.
데모크리토스: 진리는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물 바닥에 있다.
비온: 발 앞에 생선을 보지 못하는 천문학자들보다 하늘에 있는 것들을 인식한다고 주장하는 너희들이 가장 웃긴다.
타티아누스: 너희는 입을 멍하니 벌리고 하늘을 바라보고 구멍으로 처박아 들어갔다.
몽테뉴: 탈레스를 관찰한 밀레투스 하녀의 입장에 서고자 합니다.
칸트: 우리는 우리 발밑에 원인을 갖고 있다.
포이에르바하: 한 늙은 할멈이 그를 보고 웃었다.
간스: 그녀는 오직 눈먼 철학자의 죽음의 천사다.
니체: 그는 밤에 절벽으로 추락하였다.
하이데거: 철학은 거기에 대해 식모가 필연적으로 웃게 되는 학문이다.
니체는 피타고라스와 그의 짧은 일대기가 덧붙여진 아낙시메네스 사이의 신비적 서신 교환에 근거하여 탈레스를 해석하였다. 곧 밀레투스 학파의 창시자에 대한 그들의 독실한 믿음의 증거에 따르라는 탈레스의 죽음에 대한 전설을 따랐다는 것이다. “이 노인은 일생 동안 그의 습관만을 따랐고, 밤에 별들을 관찰하기 위해 하녀와 같이 집을 나섰다. 그는 천체를 관찰하다가 자빠져서 비탈로 굴러떨어졌다.”. 니체는 우물가에서 벌어진 사건보다는 페르시아 제국과 맞선 그리스 도시국가의 존망을 둘러싼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희랍 철학의 비극을
찾았다. 그는 신화와 결별을 선언한 탈레스는 첫 철학자임이 틀림없지만, 도시국가의 정치연맹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자문이 실패하자 장기전에 돌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철학으로 도피하였다가 ‘밤에 절벽에서 떨어졌다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천문개혁으로 하늘의 태양과 땅 사이의 위상변경으로 우물로 곤두박질한 원 철학자와 하녀의 위상은 더욱 바빠졌다. 철학자는 하녀 대신 오합지졸들의 웃음과 마주하며 먼 곳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트라키아 여자는 추방당한 지구의 신들이 땅에 있다는 심오한 의미를 지시하므로 코페르니쿠스의 권리로서 그녀의 승리가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