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미리벌’ 1부에서 시인은 ‘삼종지도(三從之道)’로 표출되는 유교적 도덕 관념의 살아있던 미리벌(밀양)에서의 어린 날을 회고하면서 “따듯하고 넉넉한 숨결” 같은 “연민”의 정서를 담아 그때의 모든 시간을 위로한다.
“몸보다 마음이 더 가난했던/ 아득한 그 길 끝 한 자락/ 하얀 보자기 여전히 흔드는/ 흑백 사진으로 남은 모정…”(「도시락을 생각한다」)의 어머니부터 “마른 칡넝쿨로 골목길에 남아/ 굶주림과 벗하며 전쟁터를 누비던/ 포탄 속의 그날처럼 위태롭게 서 있”(「골목길」)는 아버지, “순아, 니는 이 못사는 집에서/ 뭘 먹고 그리 통통하노?”(「말다, 박재금」) 친정 조카 질녀 챙기느라 애를 쓰던, 다정했던 고모, “비명에 간 이 땅의/ 모든 영령”(나비)까지. 또, “사내의 발도 아낙의 발도/ 멋 부리지 않고/ 고집부리지 않고/ 뾰족한 발 두터운 발 원하는 대로/ 입 벌려 받아주고 다시 감싸 오므리는/ 無차별 無코”였던 「그냥 고무신」부터 “쪼글쪼글 지우개/ 몽당몽당 연필/ 한 통 속 부푼 꿈”(「필통」) 차오르던 가족, “결코 뜨거워지지 않는 빙점에서/ 하중을 견딘 채 절명”하는 고드름까지 “나무가 종이 되는 시간을 가늠”하듯 “종이가 책 되는 시간을 헤아”(「나무의 시간」)리듯 “아픔이 박제된” 그때의 모든 것을 온기의 구절로 찬찬히 녹여낸다.
”내가 아는 나무는 결코 가볍지 않아서/ 더 가벼울 수 있는 영혼이 쉬어가는/ 쉼터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나의 자작나무」). 자연스럽고 담백하게, 특별한 시적 기교 없이 진솔한 시인의 시편들은 2부 ‘사랑한다, 서라벌’에서 남산, 무열왕릉, 괘릉, 알영정, 도리천, 용산서원 등 신라의 고도 서라벌(경주)의 곳곳을 모티프로 한, “슬픔과 적막”뿐인 생사윤회를 벗어날 지혜로운 자아 되기와 꿈꾸기에 관한 생명력 넘치는 사유이다.
“봄을 보낸다는 건/ 목련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본다는 것”(「봄을 보내다」), “신공사뇌가(身空詞腦歌)/ 숲이 된 노래 하나 허공(虛空)에 떴다”(「괘릉에서 향가를 만나다」), “눈부신 햇살이 수직 하강한다 머리통이 몸통인 문어처럼, 수면 위로 머리만 내민 대왕암. 실핏줄로 연결된 꼬리들로 환태평양을 팽팽하게 조이고 푼다”(「감포 바다」), “서악에 와서/ 천년이 넘도록 꿈꾸는 이들을 본다”(「무열왕릉」), “즈믄 해 돌아 낭산 오르면 … 다시 올 즈믄 해 맑은 눈으로/ 고즈넉이 기다리는 여왕을 만나지”(「도리천, 그곳에 가면」), “이파리 하나조차 중력으로 버티며/ 뼈마디를 에이는 아픔까지 인내한/ 절제된 춤 출 수 있었다”(「대나무가 춤출 때」) 등, 까마득한 시간을 넘나드는 맑고 싱싱한 자유의 감성이 담긴 시편들이다.
임고서원, 노계, 충효재, 금강산성, 조양각, 광릉, 한천 승첩지, 영지사, 금호강, 북안 도천리, 사룡산 등, 영천의 유적지를 시로 다룬 3부 ‘고맙다, 골벌’의 시편들은 선인들이 중히 여겼던 학문의 길, 청빈, 충효, 의로움, 높은 문장 같은 유교적 도리와 덕목을 숭상한다. “청산에 집 지으니/ 청빈이 벗이 되고/ 부귀영화 떠난 자리/ 도가 흘러넘치네”(「노계」), “꽃이라 부르고 싶은 나뭇잎들이/ 천운을 알고 온 듯 충효재 마당에 내려 … 한 백 년 전 그날처럼 두 주먹을 쥐었다 편다”(「가을, 충효재」), “어떻게 살아야 비신 하나 남길까/ 목숨을 내놓고 다시 찾은 이 땅에”(「비 내리는 날, 조양각에는」), “어느 가문의 묻어 둔 이야긴가/ 실핏줄로 전해오는 노오란 그 빛/ 우의도 효성도 동색이라 일러준다”(「광릉을 지나며」), “어느 날 나는 문득 영천 한천승첩지에 가서/ 보현과 팔공을 붕새의 날개로 삼고/ 긴 언덕 위에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낼 것이다”(「적멸」), “도잠서원 지나서/ 까마득히 높은 그곳/ 내 마음 걸어 둘/ 천정 하나 보았네”(「영지사 대웅전」) 등 역사 속 서사와 마음속 서정이 조화로운 시편들이다.
“우리도 시간을 먹으며/ 시나브로 죽음과 마주하는 것은 아닐까”(「삶」), 4부 ‘작약 있는 곳에 제가 있습니다’의 시편들은 삶에 대한 득도와도 같은 깨우침과 달관의 마음을 담고 있다. 그 마음은 “알고 보면 사람들은 다 온막리 가는 길 아닌가”처럼 따뜻하고 환한 구절들로 그려진다.
“댓잎 솔잎 사이로/ 바람 한 줄기/ 나 또한 바람으로/ 언젠가 오리라”(「석남사 승탑」), “말 타고 가는 길 아니어도/ 흙먼지 날리면서 가지 않아도/ 숲길 어딘가에 작은 석비 하나/ 접시꽃 물고 물끄러미 쳐다본다”(「내가 아는 접시꽃」), “고산은 홀연히/ 이 세상에 왔다가 그렇게 갔다”(「고산은 험산이 아니었다」), “돌과 함께 있어도/ 뼈는 외롭다/ 돌만 남기고/ 흙이 되는 뼈/ 외로움 끝에 꿈을 이룬다”(「고인돌, 뼈의 꿈」), “오늘, 온막리 갑니까?/ 이름만으로도 즐겁고/ 빈손으로 가도 귀천이 없는/ 세상은 그야말로/ 온막 같은 가을이다”(「온막리, 그 이름으로」) 등.
박잠 시인은 「詩」에서 자신의 시와 시 쓰기에 관하여 “굳어가는 몸속의 세포를 살려내고/ 콘크리트 담장 속 갇힌 종족의 오래된 언어를 불러내는 일”, “깊은 잠 속의 언어들이 눈을 뜨고/ 갇힌 새의 날갯짓으로 오는 여명”이라고 말했다. 그 말 그대로 우리는 『호박은 처음부터 갑각류가 아니었다』에서 “깊은 삶의 사유가 차오른 신성(信誠)을 마주한 뒤에라야/ 노란 속살과 단단한 씨를 품은/ 갑각류의 따뜻하고 넉넉한 숨결을 느끼게”(「호박은 처음부터 갑각류가 아니었다)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