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하나, 문단 하나를 두고 홍차를 마시며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음미하듯이 천천히 즐겨야 하는 소설
황주리의 연작소설 주인공 대부분은 유산 상속자이다. 이게 한국 소설에서는 처음 나타나는 매우 독특한 황주리만의 특징이다. 이 상속이 매우 특이한 심리적 기제를 동반한 상속이라는 점에서 황주리 소설의 한 특질을 규명할 수 있다. 유산의 상속이란 속물적으로 본다면 금전을 상속받는 것이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랴. 하지만 반대로 상속은 부재, 상실, 아픔을 동반한다. 삼촌 부부가 사고로 죽어 유산을 받거나, 아버지 혹은 누나가 자살하고 상속을 받으니 상속받는 만큼 그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새김질해야 한다.
황주리 연작이 사랑의 에피소드를 섬세하게 붓질하되, 그 기저에 깊숙하게 도사리고 있는 상실과 죽음이, 상속이라는 사회적·경제적 기제와 결합하는 현상은 앞으로의 연구 대상이다. 새로운 경향의 출발일 수도 있다.
황주리는 이 소설 속에서 시간의 집을 지었다. 아득한 과거의 기억을 붙잡아 활자로 정착시키는 일, 그게 프루스트가 하고자 했던 일이고 황주리가 하고 싶은 일이다. 그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일이다.
아래와 같은 황주리의 소설 문장을 주목하기 바란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홍차에 적신 과자 마들렌의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은 내게 마치 나 자신의 일처럼 각인되었다. 과거에 맡았던 특정한 냄새에 자극받아 무언가를 기억하는 일을 ‘프루스트 현상’이라 부른다. 내게 프루스트 현상은 일종의 기억술, 혹은 살아있다는 걸 문득 깨닫게 하는 삶의 연금술이었다.”(p.49)
“소설을 쓰는 일은 수를 놓는 일과 닮았다. 내게 좋은 소설은 촘촘히 놓아진 수를 천천히 감정이입을 하며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의 집이다.”(p.186)
황주리에게 중요한 건 스토리의 숨 가쁜 전개나 소설 주인공의 눈부신 활약이 아니다. 그런 건 덜 우아한 작가들이 할 일이다. 문학사적으로 말하자면 황주리의 소설은 리얼리즘의 독법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문장 하나, 문단 하나를 두고 홍차를 마시며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음미하듯이 천천히 즐겨야 하는 소설이다. 급하게 해야 할 것은 고급한 예술이 아니다. 감성적인 예술가는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서 사물의 본질을 탐구한다.
그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다. 그는 섬세한 감각으로 상실의 아픔 덩어리에 기억의 촉수를 갖다 대어 세상을 자신만의 시간 질서 속에 편입시킨다. 그게 프루스트가 소설을 쓴 이유다.
『마이 러브 프루스트』를 쓴 황주리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