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해설
시 비평▕ 성병조
- 참회, 그 인식과 그리움의 미학
정 혜 국
부산문학 편집주간
I.
성병조 님은 시 속에서도 화해를 구하고 용서를 빌 만큼 진실한 감정의 소유자다. 그의 시는 자신이 겪어온 세상인심을 조목조목 생활로 겪은 경험적인 시다. 사람들과의 갈등, 이로 인한 상처, 그리고 화해를 통한 몸부림이다. 하지만 무엇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고,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어긋나는 세상일들로 후회를 한다, 그러다 보니까 자신을 자꾸만 얽어매게 되고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화해의 노력은 물결 속 풍랑이 되기도 하고 찬 바람이 되어 다시 잔잔하게 타오르는 불길로 사랑을 피우기도 한다. 눈꽃이 되고 갑자기 내리는 장맛비가 되어 예기치 않은 곡절을 남긴다. 하여 자아는 온몸이 닳아 욱신거리는 통증으로 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노년이 된 지금, 자신이 남은 인생에서의 해야 할 일을 단단히 다짐하고 있다. 세월의 문턱에 불을 놓으면서 말이다.
시인은 첫 번째 시집을 상재 한다. 시를 잘 쓰기 위해서 시 공부를 하고 있으며, 감수성에 기인한 생각이나 감정을 꾸미지 않은 내면의 순수함을 바탕으한 시는 어느 숙련된 시인의 시보다 더욱 값지고 아름답다. 아픈 몸을 이끌고 시 쓰기에 안간힘을 쏟는 모습에 염려스러운 마음도 든다. 그는 시를 쓸 때는 고통을 잊는다고 했다. 문학이 치료적 역할로써 카타르시스 즉 순화 ⸱ 정화작용을 통하여 마음을 더욱 안정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시학에서의 카타르시스(katharsis)는 시 속의 인물의 감정과 동화되고 현실 속에서 감정이 전이되어 동일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성병조 님의 시들은 대부분 가을, 고통, 기다림, 새해, 겨울, 산, 하늘, 마음, 인내, 노숙자 등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언어적 유희나 기법보다도 반복적인 단어 및 내용을 통한 꾸밈없는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상실과 아픔, 기다림 등을 바탕으로 한 서정적 자아의 애달픈 심경을 구현해 나가는 진솔함에 박수를 보낸다. 해서 시는 그 기대감을 져버리지 않고 다시 회귀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의 모방’을 통해 생명의 소리를 불러온다고 했다. 성병조 님은 ‘연꽃’이나, ‘겨울꽃’, ‘낙엽’ 속에서 자연과 가까이하고 독자들에게는 풍성한 감성을 자극한다. 시를 읽노라면 어느덧 빠져들어 감성과 조우 되어 아픔과 슬픔을 때론 조국애로 번지면서 가슴을 울먹이게 한다. 이런 시에서 우리는 감동을 받는다. 그는 과거의 우울과 절망을 시를 쓰면서 새로운 긍정과 정화에 애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잘 쓴 시라고 하는 아이러니나 시적 기술 등과 같은 표상으로 충돌될 수 없는, 환경은 이미 그의 삶이 존재적 가치를 대변하여 삶을 통한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평형화되었기 때문이다.
II.
‘자화상’에서는 칠십 사 년 써먹은 자신의 육신이 닳아 온몸이 쑤신다고 했다. 허리 디스크 협착 통증은 애달픈 친구로 동고동락하며 병마를 안고 살아왔으니,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들, 건강한 육신으로 베풀며 봉사하며 살아야 할 임무인데도 불구하고 헛되게 세월을 살았다고 실토한다. 몸부림을 치며 어김없이 움직일 때마다 엄습해 오는 통증, 죽어도 같이 살자고, 떨어질 줄 모르는 놈, 허리 갉아 먹는 놈, 지칠 줄 모른다고 하소연을 한다. 머리는 다 빠지고 거울을 보면 추하고 삶의 의욕도 다 잃었다고, 저 자신 때때로 미친 듯이 세월의 문턱에 불을 놓는다고 한다. - 그랬듯이, 후회하는 그 순간으로부터의 진정한 삶이라는 것을, 시인의 뒤늦은 후회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성병조 님의 시를 읽으면서 무엇인가 자신이 행동한 만큼에 대한 다가오는 경고적 메시지를 받는 듯하다. 물론 본인도 미친 듯이 불을 놓는다면서 말이다. 즉 자신에게 반복되는 물음으로 인하여 그 해답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저 넓은 연못가 흰 연꽃이 피었네’ ‘시궁창 같은 더러운 진흙 속에서 참고 견딘 인내의 산고, 그 속에서 마침내 고고한 흰 연꽃을 피웠네’라고, 온갖 그리움 삭이며 참고 견딘 인내와 감내로 마침내 찾아온 가을 한 줌의 바람으로 열매를 맺었다고’, 그리고 그것은 진흙 속에 핀 연꽃이라고 - 그는 ‘연꽃’을 통해 마음을 정화하고 있다. 진흙이라는 올곧지 못한 환경과 그와 결부된 어떤 것들로부터의 격한 상황에서 탈출보다는 인내로 피워낸 열매, 아름다운 꽃을 노래하고 있다. 좀 더 인내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고 있다.
‘오늘 웃음꽃이 핀다 사랑의 열매 후손에게 물려주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못 사는 것도 불행할 것도 모두 제 탓인 것을 “ 「삶」 전문으로 원인과 결과의 주체는 모두 자신이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강조한다.
“간밤에 핀 겨울꽃/ 이름 모를 나무 위에 핀/ 하얀 눈꽃/ 지난밤 뚝, 눈보라 속/ 따뜻한 볕 애타게 기다린다// 따뜻한 손길 뜨거운 사람/ 하루 가고 한달 가고/ 기다림에 지친/ 겨울꽃 서럽게도/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 겨울이여 /빨리 지나가라” 「겨울에 피는 꽃」 전문이다 - 시인은 노년인 지금 자신을 겨울꽃의 이미저리로 자신 곁에 있어 줄 누군지 모르는 하얀 눈꽃을 그리워하고 있다. 세상의 어지러운 인심, 인간관계 치열한 생존 등 모든 것들을 함축하여 눈보라로 표상한다. 오직 자신을 구제해 줄 가슴 따뜻하고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나타지 않는 현실을 원망하면서도 한편 자신을 다독거리며 홀로서기를 강조한다. ’힘든 시간‘ 즉 ‘겨울’을 빨리 지나가라고 부르짖고 있다. 동시성을 가진 또 다른 시를 보자
”온 산야 꽃이 피니 /바람은 신이 나고 / 꽃잎, 휘어져 날리고 / 살포시 꽃비/ 손잡는다// 고운 잎새 하나/ 눈웃음치는/ 그날이 오늘이구나/ 천지가 푸르름 더해/ 꽃이 떠난 자리/ 매화는 잉태하여/ 청매실 되어/ 우리 곁을 지키고 있네“ - 「꽃비 내리는 봄날」 전문은 인내 끝에 달콤함을 선사한다. 왜냐하면, 꽃잎이 휘어져 날린다는 것은 상대의 자세의 낮춤이며 그리고 다가오는 꽃잎은 살포시 손을 잡는다고 했다. 이 시에서는 그동안 자신의 굴욕스럽던 마음을 ‘겨울에 피는 꽃’의 상징화로 상대를 굴복시키고 있다. 그것도 눈웃음치면서 기다리던 날이 바로 오늘 현재라고, 화창한 봄날의 또 다른 사람과의 인연의 기다림이 주는 미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성 병조님의 자아는 실제적 자아와 시적 자아의 거리가 좁다. 어떤 날은 흐리고 어떤 날은 개이고 비가 오다가 햇살이 내려앉다가 많은 날들을 되풀이하면서 70세를 살아왔다는 것을 시 속의 다양한 대상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인생여정」이란 시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오늘도 정처 없이 하염없이 광야를 걷는다 이념도 신념도 잊은 채 발걸음 닿는 대로 내 마음 가는 대로 그리움 찾아가자 서로 사랑하며 도움 주고 상부상조의 마음 실천하며 내 욕심 다 내려놓고 마음을 낮추며 다가설 때 그 역시 마음 낮추고 화합의 길이 열리겠지 - 중략 -
삶이란 ‘높음도 낮음도 아니고 수평⸱ 수직도 없다’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서로를 낮추며 사랑하고 양보하자는 교훈적 메시지로 들린다.
존재성과 실재성 - 시에 나타나는 자아의 의미
얼마 전에 성병조 시인의 신인상에 대한 평을 한 적이 있다. 당시의 몇 편의 시에서 느껴진 감성 또한 자신의 삶에 대한 수행인 듯, 아름다움 ⸱ 참다움으로 승화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 쓰기에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한 부분으로 시 정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아는 바이다. 사람들은 왜 시를 쓰고 읽고 연구하고 배울까? 라는 것에 대한 의문 또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 쓰기를 통해서 참된 자아를 발견하고 정신적인 위기를 극복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구원하는 길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병조 님은 생활의 이야기가 시적 자아로 나타나기 때문에 남은 일생을 시를 위해 살고 지금도 시 공부를 하는 것이다. 자신의 무의식 속에 숨은 자아와 시 속에 나타나는 자아가 변곡없이 그대로 표현된다고 볼 수 있다.
“무에서 유를 찾아 오직 한 길을 간다/ 시를 짓는 관문/ 멀어서 아득하기만 하구나/ 내 남은 생애/ 인생살이 살아온 것을 보고/ 당한 것 체험한 것 한 편의 시/ 짧은 글로 표현하네/ 펜을 들면 바람같이 지나간다/ 주옥같은 시에 목말라하면서/ 게으름과 나태 이겨내려고/ 몸부림치는 나/ 아름다운 시 한 편에 목말라하는 나// 모자라는 지혜로/ 어두움도 걷어내고/ 봄날의 진달래같이/ 빠알갛게 타오르는 철쭉/ 개나리 꽃잎까지도 읽어 낸다” 「시를 짓는 마음」 전문이다 - 그는 시 쓰기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한다. 해서 그의 일상 모두는 시가 되고 시를 통해서 게으름, 나태 등을 이겨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시의 완성은 빨갛게 타오르는 철쭉 같은 빛깔을 가진 꽃이며 나아가서 노란색의 개나리까지 읽어 낸다고 한다. 시를 통해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다. 얼마나 시인이기를 간절히 바라는지 다음 시에서 다시 살펴보자
“부풀어 오른 숨결은/ 가득하여도/ 나는 쓸쓸하더라/ 밤, 또 기다려도/ 잠이 오지 않더라/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몸살이 날 때마다/ 나는 뛰어오른다/ 안개 같은 당신의 핏속으로/ 피를 머금은 안개 속으로 뛰어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보았다/ 나의 시집이 어두운 지붕과/ 어둠의 지붕을 지난/ 저 숲의 홀로 있음을/ 등불을 켜고 있음을 보았다/ 나는 그대를 잃어버리는/ 슬픔에 울었다/ 가난한 시인/ 눈가에 이슬이 맺히다“ -「시인의 꿈」 전문에서는 시를 통해서만이 자신이 설 수 있고 마음을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가 시를 써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이미 계획을 실천과 행동으로 옮긴 셈이다. 시집을 한 권이라도 상재 해야만 시인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그리움을 시로 표현하고 시집을 출간하려고 하는 것이다. 시집의 완성은 그에게 있어서 인생의 결실로 이어진다. 해서 결실의 가을을 어떻게 다듬어 내고 있을까 궁금하다.
‘장대비 내리던 밤을 멀리하고 봄 냄새를 맡는다. 솔내음 시원한 바람결 불어오니 답답한 가슴 활짝 펴고 쉼호흡을 하며 저 푸른 하늘 두둥실 춤을 춘다며 하얀 뭉개구름, 그것은 참을 수 없는 기쁨이요, 암울한 이 시대의 재앙과 근심 걱정 다 날려보리라고 다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오곡이 익어가는 수확의 계절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가을을 기다리며 전문).
- 그 결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세상의 그 어떤 변화의 물질이나 환경으로 인하여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삶을 살아갈 수 있기에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동경의 세계이다. 통시적 ⸱ 공시적인 과거와 현재의 공존으로 시를 통하여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것이다. 서정적 자아는 떠날 수 밖에 없는 존재를 기억하며 기다려야 했고 다시 그리워하면서 홀로서기를 한다. 원망과 분별없는 사고의 틀을 벗어던지는 간절함, 그 속에는 반드시 그 응답이 주어진다는 신념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는 과거에 대한 참회의 용서이며, 그것은 또 다른 자신의 인식으로 현재가 슬픈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그려낸다.
또 다른 마지막 잎새‘라는 시에서는 왠지 슬픔을 느끼게 된다. 외롭게 남아있는 마지막 한 잎을 기어코 바람은 몰고 가는데, 아무리 바람길 막아서도 낙엽은 떨어지고 만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없는 것이 애달프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듯이 가고 오고 하지만 결실을 맺는 가을을 잡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비유법과 대조법을 사용하여 강자와 약자의 비교 우위적인 양상을 그려낸다. 하지만 현실에 순응해야만 하는 힘든 자아의 모습을 알 수 있는데, 자신을 원망하면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떠난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한 어머님과 누이, 남동생을 떠나보낸 까닭에 혼자 남은 마지막 잎새의 외로움이 짙다.
’비가 내린다 더러워진 나무를 씻는다 미세 먼지로 가득한 온 세상을 지운다. 내 마음 같은‘ 「겨울비」 전문이다. ‘의인법으로 사용된 ’더러워진 나무‘란 주변의 사람들을 말하며, 은유로 이미 제목을 ’내 마음 같은’ ...으로 다듬어 놓았다.
“밤새운 기도 소리/ 돌계단을 쌓는다/ 야곱의 기도 소리/ 사랑으로 감싸 주소서/ 금정산에 울려 퍼지는/ 간절한 기도 소리/ 악한자를 무찌르고/ 여린자를 품어 안는다“ 「기도」 일부 - ‘밤 새운 기도 소리가 돌 계단을 쌓는다’고 했다. 끝없이 오르는 돌 계단에서 자신의 간절한 마지막 소원을 종교적 차원에서 호소하고 있다.
”저 산 저 바다 너머/ 하늘까지/ 언젠가 그 언젠가/ 빛과 어둠 너머/ 잘못을/ 사랑 미움 모두 너머/ 머언 먼 곳에서/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우리 다시 만날 것을/ 살아있는 세상이/ 매 순간 불꽃처럼 피어나는/ 노년의 고독/ 그 찬란한 기쁨 되어“ 「밤하늘에 쏜다」 전문에서 보면 - 그의 시는 대부분이 같은 주제로 같은 내용 등 비슷한 소재이다. 하지만 그 강약의 차이로 다른 느낌을 받는 듯하다. 그 이유는 공시성 ⸱ 통시성이 주는 소쉬르의 수평 ⸱ 수직 관계의 차이일까, 자신의 일생을 낱낱이 상황에 따라 그려낸 한 편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노래한 시들은 아픔과 고통 속에서 시련을 겪으면서 한 세상을 지내왔기에 시를 읽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뭉클거렸다. 교회의 사람들과, 시를 쓰는 사람들과 봉사하면서 그나마 웃음을 되찾고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살아생전 자신의 이름으로 시집 한 권을 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듯이, 만남과 이별, 갈등을 거치면서 성숙 되고 다시 마음을 다스리면서 웃음을 되찾게 되었다.
그 과정의 진솔한 언어들은 독자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아픔이 있다. 6.25를 겪은 세대들은 시대적 역사적 상황 속에서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겪어왔다. 시 속에는 따뜻한 온기가 있다. 사랑, 동정, 그리움이 여백을 메우는 이런 감성이야말로 독자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감정이입 되어 아픔을 느끼고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시 속에서 느껴지는 생활의 양태가 승화된 자아로 탈바꿈을 하여. ‘노년의 고독 그 찬란한 기쁨 되어’라고 이미 육신이 망가진 현재를 슬퍼하지는 않는 고독이야말로 마치 고독을 즐기는 사람처럼 잔잔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층 가벼운 마음이 든다.
그는 사람과의 ‘인연’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참된 인연은 어떤 물욕이나 재산보다도 더 값지며, 헛된 욕망을 나무라기도 한다. 「나의 하늘」 「꽃이 아름답기로」 「만추」 「진흙 속에 핀 연꽃」 등을 차례대로 살펴보자
”사랑하지 못함이/ 죄악이라서/ 날마다 떠는 내 하늘/ 부끄러워/ 바람에 밀리고/ 구름에 밀리어/ 섬같이 떠간다// 먼 산 그림자/ 뉘엿거리는 황혼길/ 여자들만의 눈물/ 하얀 박꽃/ 지붕 위를 내려다본다“.- 「나의 하늘」, ”사랑이여/ 비바람에 낙화 되고/ 시들어버리고/ 내뿜는 아름다운 향기도/ 수려한 자태도/ 보름을 견디지 못하고/ 때가 되면 사라지나 보다/ 우리 인생도 그와 같아/ 권력에 취하고/ 명예에 취하고/ 재산에 부를 누리고...“, - 「꽃이 아름답기로」, 마침내 찾아올 봄날은 ”우수수 떨어지는 내 마음/ 빨간 잎사귀 위에 편지를 쓴다/ 내 마음의 붉은 우체통/ 어느새 다가올// 봄을 눈물겹게 기다리고 있는 나/ 추운 겨울 엄동설한 지나서/ 찾아올 푸른 봄날을“ 하여 「만추」에서는 ’더러운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인 봄날을 그리워하게 된다.
’백련화 홍련화 온실 속 꽃보다
더러운 진흙에 물들지 않는
너를 본받아야겠구나
고고한 자태로 피워낸 모습
뿌리부터 꽃송이 씨앗 이파리까지
무엇하나 버릴 것 없는 꽃 중의 꽃
모두 다 퍼주고 있구나‘
「진흙 속에 핀 연꽃」 일부
4편의 시들에서 성병조 님은 ‘자신의 잘못을 죄악이라고, 부끄럽기도 하여 섬같이 떠밀리기도 하여 누군가를 하얀 박꽃 지붕 위를 내려다보고 있다’라고 서술한다. 이는 동시성으로 자신이 떠밀리는 순간, 누군가가 지켜봄으로써 즉시 자신의 행동의 술회와 동시에 만회해야 하는 것으로써. 즉 죄를 지으면 벌을 받기에 죄를 짓지 말아야 함을 강조한다. 그러다가 꽃이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어느새 시들어버리고 권력도 명예도 실추되면서 우수수 떨어지는 잎사귀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어 편지로 담고 있다. 붉은 우체통에 넣는 순간 ‘수신인’이 없어도 보내는 사람의 노력으로 이미 ‘합일치’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인생 무상함을 청각적으로 시각적으로 환기되어 의인법으로 나타난다. 또한 청유형의 메시지를 통한 ‘진흙 속의 연꽃’을 모델링으로 삼는 것이다.
III.
성병조 님의 시의 정서는 허무와 고독, 외로움이다. 그가 강조하는 삶의 고향은 자연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화엄의 세계, 해탈의 세계를 가르킨다.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무의식(욕망)은 승화되어 부처가 되는 해탈의 세계이다. 그의 언어적 ’잠언‘의 차용은 돌을 던지는 사람에게는 교훈을 주고, 돌을 맞는 사람에게는 인내를 주며, 그래도 아프면 기다리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종교적인 관념의 세계로 자신을 붙들고 있다. 불교적인 관점이 아닌 기독교적 관점의 시도 더러 있다. 시는 그냥 생활 속에서 터져 나오는 부르짖음이다. 그가 말하고 있는 꽃들의 세계나 잎들의 세계에서 발현되는 ‘생명’은 사물 존재의 의미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동자꽃을 아시나요」란 시는 불교적 선의 세계를 ‘선시’의 이야기로 옮겨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깨우침을 주는 교훈적 메시지다. 결국 그의 시는 사랑이며, 벗과 가족 그 대상은 점점 확대되어 마침내 종교적 세계로 잠입하는 것이다.
아득히 이어진 길
아스라이 펼쳐지는 고향의 산골 오솔길
갓난아이 때 어머니 아버지 손 잡고
고향 두메산골 가던 길이 눈에 선하네
어릴 적 고향 가던 길이 자꾸 떠오르네
인생길이 아득하구나
자동차가 목적지까지 가는 것도
네비게이션을 보고 인도하는 대로 달려가네
지도조차 없는 인생길은 참으로 고달프네
어느 길로 가야 할 지 성공의 길이 열릴지
아무도 모른다네
아득한 고향길 희미하게 떠오르네
널찍하고 아스팔트 깔린 길
자동차는 마음껏 속력을 내어 가지만
어릴 적 고향길은
내 마음에 살아 있네
-「촌길」전문
‘촌길’은 고향에 대한 사랑이다.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한 두메산골이 그리운 것이다. 그때의 고향길은 눈을 감아도 찾을 수 있지만, 지금은 네비게이션으로 길을 찾을 시대이니, 빠른 시대에 살고 있지만, 과거를 회상하니 텅 빈 가슴엔 남은 것이 없고 부모에 대한 회한만 가득할 뿐이다.
“아버지 어머니/ 저의 독백을 들어주소서!/ 불효자식 용서를 빕니다/ 제 한평생 살아있는 순간까지/ 참회하며 살겠습니다/ 후사도 없는 저 자신/ 벌초할 힘도 기력도 없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시여,/ 훌훌 털고/ 자유로이 극락왕생하옵소서/ 영원히 모든 시름 다 잊으시고 영면하시옵소서” - 「부모님 유택을 정리하며」 전문이다. - 부모님의 마지막 유골을 정리하면서 절절한 고백이며, 참회이고 용서를 구하고 있다.
천지 만물 지으신 여호와가
갈릴리 바닷가에 임하셨네
천군 천사 나팔소리 지축을 울리는데
십계명 친히 써서 우리 위해 주셨도다
이웃 섬기고 사랑하라 가르친
천국 소망 가르치신
생명의 길 행하면 축복의 길
우리 주님 이웃사랑 구원하러 오셨네
온 인류 구원하시려고
속죄 재물 되셨네
우리 모두 욕심 버리고
주님 말씀 받들어 천국 소망 이루세
말씀이 육신 되어 보듬으며 쓰다듬고
사랑으로 섬긴 정성
기쁨으로 섬기리라”
- 「생명 그 축복」 전문
‘생명 그 축복’ 은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생명을 주신 자도 거두는 자도 모두 인간이 할 수 없듯이 절대자에게 순종한 자신의 마음을 보여 주어 따르겠다는 자신의 의지이다. 마음의 평화를 얻고 그것이 구원의 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병조 님은 애국자다. ‘독도’에 관한 시 외에도 ‘육이오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을 노래하며, ‘육이오 칠십 년’이란 시에서도 한국 전쟁 당시 참전하여 전사한 사병들을 위로하며 젊음을 바친 용사들에 대한 애도를 아낌없이 전하고 있다. ‘유월이 오면’에서의 백마고지 다부동전투에서 일어난 일을 서술하고 있는 시적 화자는 온 몸을 던진 이름 모를 산골짜기에서 산화하신 유엔군 병사님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경제대국이 된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다.
성병조 님의 자아는 결론적으로는 안정과 평안함, 희망의 통로를 원하고 있다. 선상에 선 시간은 결국 자신의 성숙된 모습들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길을 가다 - 삶, “길을 가다 - 인내”로 나타난다. 삶은 인과응보이며 죄를 짓지 말고 진실되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업으로 나타나고 인내하는 자만이 아름다운 지상이 기다린다고 한다. - ‘풍성한 인생살이/ 모든 게 아름다워/ 우리 인생살이/ 오늘 웃음꽃이 핀다/ 사랑의 열매/ 후손에게 물려주자 「길을 가다 - 삶」일부, 그리고 어려운 일 궂은일도 받아들이고/ 나의 업이라 여기고 인내심으로 이겨내고/ 그래도 감당 못하겠으면/ 이를 악물고 받아들여야/ 사는 길이 열린다네 「길을 가다 - 인내」 일부
“삼시세끼 챙겨 먹는 밥
때가 되면 음식 들어오라고
배고픈 소식 전한다
살기 위해 먹던 음식
지금은 고단백 시대라
급하게 씹다 혀를 깨물었다
아픔이 온몸을 덮쳤다
아 입을 잘 못 놀리면
구설수가 터져 망신을 당한다고,
쉴 새 없이 바람을 타고
순환한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듯이
비수가 되어 상대방을 찌르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다
말 많은 세상
우리 정치인들 감정에 치우쳐
함부로 하다 구설수에 오르니
아는 지식 다 버리고
침묵을 지키자
- 「입조심 말조심」 전문
‘침묵’ 속에서 새해는 밝았으니, 청룡의 해로 우렁찬 소리와 그 기상을 엿볼 수 있다. 소외 받는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상부상조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하며, 이는 나를 깨닫는 데서, 나를 버리는 데서 비롯된다고 한다. 더불어 함께 성숙하기를 바라며 시집 출간을 축하드린다. 또한 몸과 마음이 안정되고 더욱 시에 매진하기를 당부한다.
‘사람들이 왜 글쓰기를 할까’에 대해서는 이미 서술하였다. 카타르시를 경험하고 교훈이나 흥미 등 감동을 받기 위해서는 압축과 내포, 외연 등 시의 운율적 기능 및 어떤 대상을 담아내기 위한 심상(image)과 표상으로 연결되고 시의 내용에 알맞은 주제선택과 이를 뒷받침하는 제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해서 성병조 님의 시는 교훈, 해방감 등을 통한 카타르시스의 발산이라 볼 수 있겠다. 우리는 그 속에서 그리움을 느끼게 되며 구체적이고 체험적인 소재의 생명력에서 그의 내면적인 독백을 듣는다. 그는 진정성과 역사에 대한 조국애, 반성적 사고를 통한 진의로 감정을 잘 살리고 있다. 특히 모호성을 벗어난 참신성의 목소리로 울리고 있어 독자 또한 감동과 탈곡의 기회를 함께 엿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