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뛰어넘는 정치셈법
지은이가 주목한 것은 미시적 사실만이 아니다. 정조와 그 측근인 채제공이 기득권층인 노론 견제를 위해 새로운 지지 세력이 필요했다든가, 영남 사림에 힘을 부여하기 위한 도산별과가 영남 사림을 정치적 동반자로 삼겠다는 의미였다는 등 만인소 운동의 굵직한 배경을 짚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자기 입으로 공론화하기에는 문제가 있지만 공론의 장으로 올라오면 이 문제를 다루겠다는 정조의 노회한 속셈을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영남 사림에 정국 주도권이 넘어갈 것을 우려한 노론의 노심초사도 당시 권력다툼이 현대 정치판의 정치공학을 뺨칠 정도였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노론인 이조참판 김희의 주도로, 상소운동을 주도한 소두疏頭 이우나 성언집에게 관직을 주어 만인소 운동의 순수성을 훼손하려 한 시도가 그것이다. 또한 몇몇 중신들은 만인소 운동의 지도부에 부조를 보내는가 하면 근실 권한을 지닌 성균관 유생 대표들이 집권층의 눈치를 보느라 거부했다가 처벌받는 대목 또한 마찬가지다.
무릎을 치게 하는 의미 부여
책은 만인소 운동의 배경, 영남 유림의 상경 과정, 소두의 임명이나 상소문 마련, 처리 과정, 비용 등을 세밀하고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1만 57명이 연명했다는 사실이 단순한 물리적 숫자가 아니라 ‘만백성의 이름’에서 보듯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 ‘모든 백성의 뜻’을 ‘하늘의 뜻’을 받드는 유교 정치 이념이라는 의미를 들려준다. 또한 만인소 운동이 1823년 서얼 9,996명이 참여한 서얼 차별 철폐 상소나 1881년 1만 3,000여 명의 유생들이 청원하는 ‘척사 만인소’ 등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만인소 운동은 유학적 권위를 빌려 구체적인 정책 변화를 촉구했던 시민운동으로 언로 자체가 의미 없는 시기가 되었을 때는 강한 무력운동의 철학적 기반으로 작용했다며 의병운동과 독립운동의 뿌리로 지적하는 대목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사극을 웃도는 읽는 재미
그렇다고 책이 딱딱하거나 고리타분하지는 않다. 지은이의 유려한 글솜씨에 힘입어 어지간한 사극 드라마를 능가하는 재미가 도드라진다. 그 정점은 우여곡절 끝에 창덕궁 희정당 앞에서 정조에게 1차 상소를 전하는 장면이다. “이우의 목소리가 끝이 나자,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그믐이 얼마 남지 않아 달빛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희정당 주위를 눌렀지만, 이마저도 진신과 장보들의 긴장감을 가리지는 못했다. …… 촛불 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의 고요함이 희정당을 감싸고 돌았다. …… 정조는 상소를 듣던 그 자세 그대로 미동도 없었다. …… 류이좌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곁눈질로 그 답답한 상황의 이유를 알아보려 했다. …… ‘눈물’이었다. 용안 위로 촛농을 닮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처럼 드라마틱한 장면을 쉽게 만날 수 있을까.
책은 《1751년, 안음현 살인사건》에 이은 ‘조선사의 현장으로’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한데 전작이 그랬듯이 단순한 ‘현장답사기’를 넘어선 진지한 역사서이다. 주석이 본문의 4분의 1에 이를 정도인 것이 이를 웅변한다. 충실한 역사적 사실 소개, 이에 관한 설득력 있는 해석과 더불어 재미를 놓치지 않은 수작秀作이기에 지은이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