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평양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개성공단 철수라는 대사건 속에 숨은 드라마를 찾아
2016년 2월 10일 오후 5시, 정부는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남측 인원 184명은 그야말로 군사작전처럼 다음날 일제히 개성공단에서 철수해야만 했다. 박종성의 장편소설 《평양을 세일합니다》는 개성공단 철수 과정에서 공단에 입주했던 어느 기업의 직원 한 명이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엉뚱한 상상에서 출발한 소설이다.
주인공 김철현 대리는 그리 뛰어나지 못한 ‘스펙’에 백수 생활과 잡일을 하다 ‘개성시대’라는 패션 회사에 취업한 삼십대 초반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개성공단에서 업무 중에 평양으로 출장을 간 철현은, 회식 중 동료 직원들에게 무시당하고 과음을 한 후 평양 거리에서 쓰러져 잤다가 다음날 아침에서야 호텔로 돌아간다. 그리고 TV에서 그야말로 끔찍한 뉴스를 보게 된다.
“개성공단은 김정일 장군님께서 7천만 겨레에게 베풀어주신 민족 사랑의 고귀한 결정체였다. 개성공업 지구가 6·15 공동선언의 열매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남조선은 개성공단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능멸했다. 또한 어제 새벽 남한은 일방적인 개성공단 철수를 통보하며….”
가진 것이라고는 스마트폰과 노트북, 그리고 도무지 쓸모가 없어 보이는 잡동사니들만 가득한 트렁크 하나. 패닉에 빠진 것도 잠시, 어렵사리 본사와 통화도 하고 국정원과도 연결되어 최대한 빨리 귀국을 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나 철현은 남북한 양쪽 정부에서 간첩으로 몰리게 된다. 철현이 무사히 귀국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평양에서 만난 동업자들(?)에게 경제적 성공을 가져다주는 방법뿐이다.
처음에는 평양의 한류를 이용한 소품 판매, 교복 디자이너 출신답게 서울 스타일의 인민복 런칭, 대동강 맥주파티에서 북한 걸그룹 육성 등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개인기는 다 쓰지만 유명세가 붙을수록 그의 신변은 위협에 빠지기만 한다. 과연 그는 북한에서 무사히 귀국할 수 있을까?
농담 같은 이야기 속에 담긴 만만치 않은 메시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낄낄대며 읽을 수 있는 코미디 톤인 이 소설은 의외로 묵직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통일지상주의나 정치 풍자만이 아닌, 남북의 민중들에게 현실감 있는 남북관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우리 세대가 통일을 정치논리나 이념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남북의 구성원 개인 개인이 보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교류하고 협상하고 왕래하다 보면 통일은 다음 세대가 알아서 편익의 관점에서 이뤄낼 것이라는 낙관주의다. 정권의 성향에 따라 남북관계가 급격히 달라지는 한반도 정치 지형도에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반공과 통일이라는 이념 사이에서 어떤 지점에 방점을 찍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소설이다.
한편, 《평양을 세일합니다》는 출간 이전에 영화와 드라마화가 결정돼, 출판계뿐 아니라 영화계나 방송계까지 모두 주목하고 있는 기대작이 되었다. 저자의 술자리 농담 같은 엉뚱한 상상이 과연 어디까지 갈지 호기심이 드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