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처럼 이어지는 거대한 운명 속에서
사랑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주인공들
영국문학의 전통을 따르는 작가만의 고유한 스타일로
몇백 년의 시간을 관통하는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선택에 따라 갈 길을 결정할 수 있는 미로(maze)가 있고, 한 갈래의 길로 이루어진 미로(labyrinth)가 있다. 〈레버린스 엄브렐라〉의 이야기는 한 갈래의 커다란 미로 레버린스를 따라 펼쳐지고, 그 안에 길 선택이 가능한 미로들 메이즈를 품고 있다. 레버린스는 인간의 운명을 상징하고, 메이즈는 인간의 선택을 상징한다.
〈레버린스 엄브렐라〉의 주인공들은 각자만의 레버린스와 메이즈를 관통하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레버린스 엄브렐라〉는 로맨스 소설이지만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을 탐구하고, 사랑으로 인한 성장통을 겪으며 어른이 되는 이야기이자, 사랑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질문하며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인간은 자신 스스로 살아 있는 게 아닌 타인에 의해 살려져 있는 것이라는 소설 속 제이의 대사처럼, 주인공 콘스탄스가 자신의 진정한 자리를 찾는 것은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다. 당대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 전형에 부합하지 못하는 샌디, 자신보다 곁의 사랑하는 이들을 먼저 생각하는 로건, 여자로서 지켜야 하는 규범보다 인간과 세상에 대해 가르치는 아버지 케네스 모두 콘스탄스가 자신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적수인 빅터 역시 콘스탄스가 고유한 존재 자리를 사수하도록 그녀를 깨어 있게 한다.
그리고 콘스탄스 곁에 케이가 있다. 콘스탄스의 레버린스는 케이를 사랑하게 된 순간부터 시작하고, 그녀는 케이와의 사랑을 통해 어른으로 거듭나며 자신의 진정한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 언급되듯, 진정한 사랑은 절대 순탄치 못하다. 콘스탄스의 숙명과 이어진 케이와의 사랑을 영위하기 위해 그녀는 절망과 상실, 후회와 아픔을 관통해야 한다.
리셔 성의 문지기는 사랑과 운명 앞에서 두려움에 웅크린 콘스탄스를 일으킨다. 카프카의 단편 〈법 앞에서〉의 문지기와,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첫 대사를 하는 문지기처럼, 서양 문학 전통에서 문지기는 자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햄릿〉에서 문지기의 대사가 “당신은 누구요?”(Who are you?)였던 것처럼, 〈레버린스 엄브렐라〉에서 문지기는 콘스탄스에게 ‘나는 누구인가?’의 물음을 상기시키며 그녀가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이도록 이끈다. 문지기는 콘스탄스의 레버린스, 즉 그녀의 운명의 여정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이며, 문지기의 말을 따라 자신에 대한 결단을 내리는 콘스탄스의 모습에서 그리스 비극의 미노타우르스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신화적 힘까지 느껴진다.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사랑하게 되어 그에게 실뭉치를 주면서 미로를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레버린스 엄브렐라〉에서 아리아드네는 케이이고, 케이는 콘스탄스가 숙명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케이의 속죄가 되고, 케이와 콘스탄스는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서 서로에게 구원자적 존재가 된다.
콘스탄스는 케이와의 사랑과, 그녀 안의 선하고 굳은 의지로 개인의 차원을 넘어 역사의 소명에 응답한다. 그녀의 여정은 레버린스에서 출구를 찾듯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콘스탄스의 레버린스는 이리저리 돌다가 몇 세기가 지난 후에야 귀착지에 이른다. 인간은 신이 만들어 놓은 운명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야 할 뿐, 현재의 내가 어디에 있는지, 맞게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 존재가 짜인 운명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인가. 소설 마지막에서 코니는 미로 같은 리셔 성 안에서 길을 잃고, 여러 갈래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하며 성을 빠져나온다. 무수한 선택의 끝에 출구를 찾아 코니가 진정으로 바라던 재회가 이루어지는 장면은 인간 존재가 운명에만 귀속되는 게 아닌, 선택을 통해 운명을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걸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