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중국까지: 고대문명 연구의 다양한 궤적』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이스라엘 및 팔레스틴, 인도, 중국 등 5개 지역의 고대 문명의 연구사를 해당 지역의 전문 연구자들이 정리 집필한 내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장 ‘나일강을 따라 천 마일: 이집트학의 발전과 과제’는 시카고대학의 근동언어문명학과에서 구약성서를 중심으로 고대 근동학을 공부하고, 문헌학과 역사학 분야에서 활발한 학술연구를 수행한 고대문명연구소 김구원 연구교수가 집필했습니다. 1898년 나폴레옹의 원정에서 비롯한 본격적인 서구 이집트학의 형성과정을, 순수학문을 중시하는 ‘발전 모델’과 식민지 지배적 맥락을 강조하는 ‘후기식민주의 모델’로 구분하는 경향을 소개하고, 발전모델에 입장에 따라 이집트학 형성 과정을 추적합니다. 19세기 이전 서구인의 ‘신비주의’ 및 ‘호고주의’의 대상이던 이집트가 나폴레옹 침공을 계기로 학문으로서 태동하여 유럽 대학의 분과 학문으로 자리 잡고 20세기 전반 고고학과 문헌학의 두 줄기로 발전한 과정에서 현재 이집트학의 최신 연구 경향까지 총괄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집트학을 ‘인류 문명사의 보편적 발전 과정의 일부’로 인식할 것을 결론에서 제안합니다.
프랑스 파리1대학 역사학과에서 신바빌론 시대의 법률을 중심으로 고대 근동학을 공부한 김아리 고대문명연구소 연구교수가 집필한 2장 ‘200년 고대 근동 연구사, 세 번의 거대한 변화’는 200년간 진행되어 온 메소포타미아 문명 연구사를 소개합니다. 저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연구의 중요한 전환점을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첫 시기는 쐐기문자 해독과 더불어 구약성서 구성 내용이 근동 지역의 신화에서 기인한다는 내용을 밝혀내는 과정입니다. 두 번째 시기는 고대 근동의 역사 문화를 고유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시기로서 시카고대학의 아카드어 사전 프로젝트의 내용이 소개되기도 합니다. 세 번째 변화는 1970-80년대에 시작되었는데 연구의 초점이 정치사, 문화사에서 고대 근동 사회의 생활사로 전환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대 근동 연구의 자료를 제공하는 온라인 서비스에 대한 내용도 함께 소개됩니다.
3장 ‘이스라엘/팔레스틴 고고학 역사: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논쟁들’은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고고학에서 성서고고학을 공부하고, 이스라엘의 여러 지역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 작업을 수행한 바 있는 강후구 서울 장신대학교 교수가 집필했습니다. 이스라엘/팔레스틴 지역이 가지는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쟁점이 중첩된 이 지역의 다양한 쟁점을 고고학 연구의 관점에서 소개합니다. 이 지역 고고학사의 발전단계를 일곱 시기로 나누어 소개한 이후 인류의 정착, 농경 생활과 토기, 도시 생활과 요새화, 문자 생활 등 보편적 문명사의 전개 양상을 200년간 고고학 연구 성과를 통해 소개하며 이에 따른 논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도 델리대학에서 인도 고대사를 중심으로 문화사를 연구한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 교수가 집필한 4장 ‘인더스문명과 갠지스 문명의 정체에 관한 논쟁: 힌두뜨와 역사 서술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는 인도 고대문명사에서 극단적으로 발현되고 있는 힌두민족주의 기반 역사서술에 대한 강력한 반론입니다. 기원전 500년경 인도로 이주한 아리아인이 인더스문명 건설의 주인공임을 주장하는 힌두뜨와 역사관은 무슬림을 비롯한 외래 세력 배척의 역사적 근거로서 1980년대 이후 인도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저자는 다양한 각도에서 이 주장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5장 ‘중국 고대문명 연구 100년: 전통과 현대 학문의 충돌 및 재편’은 시카고대학 동아시아언어문명학과에서 중국고대사를 공부하고, 고대문명연구소장을 역임하고 있는 심재훈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집필했습니다. 중국 고대문명 연구를 ‘전통과 현대학문의 충돌 및 재편’으로 맥락화했으며, 중국 호고주의 전통, 고문자 및 출토 문헌 연구, 고고학 발전의 순서로 개관했고, 1900년대 이래 중국고대문명 연구를 ‘지역주의’ 및 ‘의고/신고’ 논쟁이라는 키워드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쟁점은 강력한 호고주의 및 장기 지속적인 학술전통과 서양 학술의 충격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나는 중국의 특수한 역사적 조건에 기인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근동 및 인도 지역의 고대문명 연구가 근대적인 현상임에 비해 중국의 경우는 고대 이래의 학문적 전통과 함께 방대한 출토자료의 규모를 바탕으로 ‘중국 대 구미’의 학술 논쟁 구조가 형성되어 전개되고 있음을 소개합니다.
인류의 핵심 고대문명 연구 과정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소개한 『이집트에서 중국까지: 고대문명 연구의 다양한 궤적』은 각각의 고대문명이 처한 환경이나 발전 양상만큼이나 연구 주체가 연구 시점에서 부여받은 관점이 연구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임을 알려 줍니다.
한국 인문학 발전의 새로운 지평이 세계적 보편학문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는 과정에 『이집트에서 중국까지: 고대문명 연구의 다양한 궤적』이 작은 기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