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이나 박물관에서 만나는 위인 ‘세종’,
과연 세종 이도가 원하는 것일까
태종의 뒤를 이은 조선의 왕 ‘이도’가 세상을 떠난 뒤에, 조선은 그를 세종이라 불렀다. 오늘날에는 ‘성군 세종 대왕’이라고까지 더욱 높여졌다. 그렇게 세종은 넘을 수 없는 한국사람이 됐고, 역사책이나 박물관에서 만나는 위인으로 남겨졌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에, ‘과연 세종 이도가 원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 삼성전자의 수석디자이너였던 저자는 ‘공감한 것을 상품으로 바꾸는 일에 훈련된 사람’으로서, 세종 이도가 왕으로 살았던 삶 전체를 온전히 담아 그가 우리와 함께 살아가게 하고자 하는 바램을 갖는다. 나아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세종의 생각과 행동을 따라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성찰하게 하고 싶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그래서 저자가 선택한 것이 ‘다이어리’ 식으로 이도의 내면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특히 젊은이들을 위해 현대식 용어와 관직, 도량형, 풀어쓰는 한자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세종 33 간의 정치경제, 사회문화를 모두 담은 〈이도 다이어리〉
세종실록은 총 163권이다. 이도가 조선의 왕으로 살았던 33년(1418년~1450년) 동안의 정치경제, 사회문화, 기술, 기후 등이 시간의 순서에 따라 총망라되어 있다. 어떤 주제는 33년 전체를 관통해서 이어지기도 하는데, 역사의 사실과 사람의 감정, 두 개를 연결하지 못하면 이해가 쉽지 않은 구조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기록들을 이도 한 사람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저자는 33편의 글로 엮어냈다.
저자가 만난 세종 이도는 ‘소민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는 휼恤의 정치’를 했다. 그렇지만 신하에게는 요구하는 것이 분명했고, 대를 이을 자식에게는 냉정했던 두 얼굴의 왕이었다. 그는 들판에서 굶주린 채로 일하는 농부에게 따스운 밥을 지어 먹였고, 처지가 불쌍한 사람이 저지른 사건을 판결할 때면 형벌을 깎아주려고 고민을 거듭했다.
이도가 소민을 사랑하는 왕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아버지 태종이 일러준 것들이 큰 몫을 차지했다. 세종실록에는 태종이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과정과 그때의 감정이 쓰여 있다. 하루는 왕에서 물러난 아버지와 왕이 된 아들이 한강 강변에서 씨름을 구경했다. 그날 아버지는 해질녘 붉게 물든 강물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는 왕으로 사는 동안 유련流連을 경계하며 살았다”라고 한 마디를 던진다. 중심을 잃지 않고 살려고 노력했다는 이 말은, 아들 이도의 가슴에 유훈처럼 새겨졌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삶을 바꾸는, ‘숨쉬는 세종 이도의 말과 삶’
또한 이도는 마음이 바른 사람을 중용했다. 신하가 다른 의견을 말하면, 자신이 다르게 여기는 이유를 꼭 말해주고 대화를 이어갔다. 반대 의견이 타당하면 자신의 생각을 바꿨다. 사람 사이의 ‘다름’을 차별하지 않는 말이 통하는 왕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세종 이도의 ‘대화법’은 저자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까지 말한다. 사람들은 세종의 리더십에 집중하지만, 저자가 만난 그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 리더’였다. 대화 상대의 신분과 격을 문제삼지 않고 늘 가까이 불러서 대화했다. 사소한 문제에서 시작해서 큰 문제를 해결하고, 대화를 확장할 때는 선문답 같은 직관적인 대화를 했다. 또한 대안을 수립할 때는 근거를 제시하는 분석적인 대화를 했다.
이것은 디자이너의 창의적 사고법을 통칭해서 부르는 ‘디자인씽킹’의 원리와 다르지 않은데, 디자이너인 저자가 이도의 대화법에 착안하게 된 이유라고 저자는 밝힌다. 그리하여 저자는 세종 이도의 대화법을 넘어, 이도의 온전한 삶이 담긴 이 책을 통하여 같은 한국인의 DNA를 가진 우리들이 그의 삶을 누구나 따라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