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단어를 익히며 지식과 교양을 쌓는다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미국 정치학자 E. E. 샤츠슈나이더는 “인민을 위해 민주주의가 만들어졌지, 민주주의를 위해 인민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학자연하는 이들이 인민의 자격을 인정하든 말든 상관없이,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고안된 정치체제다”고 말했다. 또 일본계 미국 지식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역사의 종말이다. 다시 말해서 인류의 이념적 진화가 종착점에 이르렀고 인간이 만든 정체 체제의 최종 형태로서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보편화되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1831년 5월부터 9개월에 걸쳐 미국식 민주주의를 연구하기 위해 미국 전역을 돌며 관찰한 프랑스의 젊은 귀족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정치 사회와 프랑스의 귀족정치 사회를 비교하면서 “민주적인 국가는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것보다 삶을 쉽게 하는 기술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나치 치하의 독일인들이 어떻게 수백 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할 수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 1961~1962년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을 했다. 그가 하버드대학 교수 시절이던 1963년에 발표한 실험 결과는 엄청난 충격과 더불어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밀그램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아무리 정의로운 시민들이 만들어졌다 해도 만일 옳지 않은 권위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 그들 또한 인간의 야만성과 비인간적 태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밀그램의 실험은 어떤 것이었는가?
선생님 역할을 맡은 참여자들은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의 강도를 높이라는 지시를 받는다. 학생 역할의 협조자들은 전기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고통스러운 연기를 했으며, 이 소리는 참여자들이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참여자 대부분은 학생의 괴로운 목소리를 듣고 몇 번 전기 충격을 주고 더는 할 수 없다는 의사를 표현했으나, 실험자가 “그 정도의 전기로는 사람이 죽지 않습니다.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고 하자 놀랍게도 참가자 40명 중 26명이 “제발 그만!”이라는 비명이 터져 나오는데도 450볼트에 해당하는 전기 충격에 도달할 때까지 버튼을 계속 눌렀다. 상식적으로 450볼트의 전기라면 거의 모든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데도 책임을 지겠다는 실험자의 권위에 쉽게 굴복한 것이다.
강준만의 『인문학과 손잡은 영어 공부』 시리즈는 영어 단어를 통해 정치ㆍ사회ㆍ문화ㆍ역사ㆍ상식을 배우면서 수많은 사람이 역사 속에서 말한 아포리즘을 소개한다. 또한 영어 단어와 관련된 어원, 역사적 배경, 인문학적 지식, 현대적 사용법 등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한다. 세 번째 책인 『인문학과 손잡은 영어 공부 3』은 ‘지지’에서 ‘정체성’까지 35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1장은 지지·눈·가슴·이별·사랑, 제2장은 유머·우울증·낙관주의·교육·어린이, 제3장은 진실·시간·인생·상실·신뢰, 제4장은 무지·신용·자신감·선택·변화, 제5장은 미국·영어·노예·실리콘밸리·자동차, 제6장은 정보·신문·TV·광고·혁신, 제7장은 리더십·권위·민주주의·정부·정체성 등 영어 단어들을 통해 수많은 명언을 읽고 지식과 교양을 쌓는다.
왜 슬라브족이 노예의 어원이 되었는가?
“1,200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신세계로 납치되어 노예가 되기 전에는 슬라브족이 주요 희생자였다. 노예제도(slavery)라는 말 자체가 그들 슬라브족(the Slavs)한테서 유래했다. 그들은 로마인,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바이킹, 타타르족에게 사로잡혀 전 세계로 수출되었다. 슬라브라는 말은 외국인을 뜻하게 되었다.” 영국 역사학자 테오도르 젤딘이 한 말이다. 러시아, 불가리아, 체코, 폴란드 등을 포함하는 슬라브족은 서기 900년까지 이교도로서 기독교를 믿는 유럽인들의 노예나 다를 바 없는 대접을 받았다. 실제로 수백 년간 시장에서 노예로 매매되기까지 했다. 이런 노예화는 슬라브족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끝났는데, 그 흔적은 slave라는 단어로 살아남았다.
기원전 1세기 시리아 출신의 로마 작가인 푸블릴리우스 시루스는 “다른 사람의 의지에 좌우되는 것이 최고의 불행이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노예의 삶은 불행이었다. “노예는 늘 주인의 눈치를 살피고 주인의 명령을 따라야만 한다. 하기 싫은 일이 있을지라도”라고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미국에서는 1844년까지 범죄자에게 소인을 찍기도 했는데, 소인이 찍힌 마지막 범죄자는 노예 폐지 운동가인 조너선 워커였다. 그의 손바닥에는 SS라는 소인이 찍혔는데, 그것은 ‘slave stealer’의 약자였다. 노예의 탈출을 도와주었다는 죄목이었다.
베를린 장벽은 어떻게 붕괴되었는가?
1989년 11월 9일 역사적인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불과 2개월 전인 1989년 9월 4일 동독 라이프치히의 니콜라이 교회에서 재개된 월요 평화기도회에서 시작되었다. 9월 25일에 5,000명이던 시위대는 10월 23일 32만 명까지 불어났다. 이날 전국적으로는 67만 5,000여 동독인들이 시위에 참여했으며, 10월 30일에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11월 9일 동독공산당 정치국이 여행 자유화 조치를 승인했지만, 서베를린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더 대범한 결정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국경 수비대는 장벽에서 몰려드는 군중에게 굴복하고 말았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바로 ‘information cascade’다. 우리말로는 ‘정보의 폭포 현상’ 또는 ‘정보 연쇄 파급 효과’라고 한다.
미국 뉴욕대학 클레이 서키 교수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3단계 과정, 즉 1단계는 모두가 무엇인가를 아는 단계, 2단계는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아는 단계, 3단계는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 단계로 설명했다. 1단계는 많은 동독인은 정부가 부패했고, 그런 정부 아래에서의 삶이 고단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단계는 그들 중 상당수는 친구, 이웃, 동료들 대부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3단계는 라이프치히 시민들이 동독이 부패한 나라라는 사실을 알고 행동에 나서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밥 딜런과 비틀스는 혁신가였다
“혁신을 꾀하려면 언제나 끊임없이 밀어붙어야 한다. 밥 딜런은 그저 저항 가요나 계속 불러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는 발전을 꾀해야 했고, 그리하여 1965년에 일렉트로닉으로 변화를 시도해 발전을 꾀했다.” 스티브 잡스가 죽기 얼마 전에 쓴 글에서 한 말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한번은 그가 ‘라이크 어 롤링 스톤’을 부르려고 하는데 청중석에서 누군가가 ‘유다 같은 배신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딜런은 말했다. ‘열라 크게 연주해!’ 그들은 그렇게 했다. 비틀스도 똑같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나아가면서 그들의 예술을 갈고닦았다. 진화, 바로 그것이 언제나 내가 노력하며 시도한 것이다.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딜런이 말했듯이 바쁘지 않으면 죽느라 바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독일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은 “혁신은 새로운 시도가 아닌 과거와의 작별에서 시작한다”고 말했고,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업체 오라클의 창업자 래리 엘리슨은 “당신이 혁신을 할 때는 모든 사람이 미쳤다고 말할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위대한 기업들조차 실패하는가? 미국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선두기업 자리에 오르게 해준 경영 관행이 바로 그들로 하여금 궁극적으로 그들의 시장을 빼앗아갈 진보된 신기술, 즉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을 개발하는 것을 극도로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