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도讀道 시리즈 세 번째 비판정본
독도도서관친구들은 앞서 독도(讀道: 길을 읽다) 시리즈의 첫 시작으로 2019년 안중근 의사의 평화 구상이 담긴 책 《동양평화론》을, 2020년 안중근 의사의 옥중 자서전 《안응칠 역사》을 출간했다. 두 책 모두 서양고전문헌학의 원칙에 입각하여 엄밀한 문헌 판독과 대조의 과정을 거쳐서 탄생한 비판정본critical edition이다.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을 고민하던 중 《안응칠 역사》에서 안중근 의사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에 대해 언급한 대목을 주목하게 되었다.
“지난날 미국 독립의 주역인 워싱턴은 7, 8년의 풍진 기간에 수많은 곤란과 고초를 어찌 참고 견뎌낼 수 있었던가? 진실로 만고에 둘도 없는 영웅호걸이다. 내가 만약 훗날에 일을 이룬다면 반드시 미국으로 달려가서 특별히 워싱턴을 위해 추억하고 숭배하며 마음이 같았음을 기념하리라. ㆍ 「안응칠 역사」
하편 6” 조지 워싱턴은 안중근 의사가 자서전에서 유일하게 신원을 밝히고 칭찬을 남긴 인물이다. 이 대목을 토대로 안중근이 읽었을만한 워싱턴 전기를 추적한 결과 이해조가 번역한 《화성돈전》의 존재와, 그 저본이 되는 중국 정금의 《화성돈》, 정금의 저본인 일본 후쿠야마 요시하루의《화성돈》을 확인하게 되었다. 20세기 동아시아 삼국에서 워싱턴 전기는 각기 고유한 방식으로 자국민을 계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특히 안중근의 항일 독립운동에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로부터 독도도서관친구들은 근대 정신을 담은 도서 발굴 여정의 새걸음으로서 정금의 《화성돈》과 이해조의 《화성돈전》을 선택했고, 미국 건립사에 담겨있는 독립 정신과 워싱턴의 지도자적 모습을 오늘날 독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새로운 비판정본 《화성돈전》을 출간하게 되었다.
■ 애국계몽기 전기문학의 정수
1894년부터 1910년까지의 시기를 일컫는 애국계몽기 동안 문학의 무대에서는 불안정한 대내외정세에 대응하여 개화, 애국, 독립 등의 시대적 요구를 주제로 내세우는 역사전기소설이 유행했다. 프랑스 수호성인 잔 다르크의 전기인 『애국부인전』, 스위스 독립영웅 빌헬름 텔의 전기인 『서사건국지』, 고구려 구국영웅 을지문덕의 전기인 『을지문덕전』 등의 작품들이 이 시기에 쓰여졌다. 그 중에서도 미국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의 아버지인 조지 워싱턴의 일생은 서양 문화를 수용하여 자국민을 계몽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단연 가장 많은 작가들의 손을 거쳐 소개되었다. 1895년 유길준의 『서유견문』과 1899년 현은의 『미국독립사』에 단편적인 소개가처음 실렸고, 1907년 최남선이 유학생 잡지에 『화성돈전』 첫 회를 연재했고, 다음해인 1908 년 이해조가 마침내 워싱턴의 일생을 한 권의 책에 담는 과업을 완수했다. 『화성돈전』은 조지 워싱턴이라는 한 인간의 삶과 철학을 진솔하게 담은 전기문학의 정수다. 워싱턴의 일생을 서언과 6장으로 구성된 목차안에 꼼꼼히 새겨넣었다. 제1장 ‘학생 생도와 측량 기사’는 워싱턴의 가문의 미국 이주 역사를 설명하고, 워싱턴의 성장 과정과 학생 시절의 일화들을 소개한다. 제2장 ‘영국과 프랑스 식민지 전쟁 및 육군 대좌’는 워싱턴이 영국군의 신분으로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이야기다. 제3장 ‘영국왕의 압제와 주의회 의원’은 워싱턴이 버지니아주 의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영국의 압제에 대항하여 어떤 투쟁을 벌였는지를 보여준다. 제4장 ‘독립전쟁과 미군 총독’은 워싱턴이 식민지 미국의 총독으로 선임되어 독립전쟁에서 활약하는 과정을 다룬다. 제5장 ‘워싱턴의 은거와 인물’은 마침내 미국이 영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독립을 얻고 초대 대통령직을 맡은 워싱턴의 말년과 인물론을 다룬다.
■ 조지워싱턴의 리더쉽과 오늘날의 정치 지도자
조지 워싱턴의 리더쉽을 살펴보는 일은 곧 ‘오늘날 우리 사회가 바라는 정치 지도자의 모습은 어떠한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일이다. 워싱턴이 보여준 도덕군자, 독립투사, 민주주의의 화신, 도덕적 지도자로서의 모습 모두가 1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가치로서 유효하기 때문이다. 《화성돈전》 속 조지 워싱턴이 보여주는 지도자의 모습은 민주 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분산하는 지도자, 새로운 역사와 문명으로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는 지도자, 국민과 스스로에게 정직을 최우선의 덕목으로 여긴 지도자, 목적을 위해 수단을 희생시키는 마키아벨리즘이 아닌 정도(正道)를 따르는 지도자다. 무엇보다도 워싱턴은 나폴레옹과 같이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개인적인 영웅이 아니라 민주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공동체의 지도자로 그려진다. 이같은 지도자 워싱턴의 모습은 오늘날 정치 지도자의 구성 요건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 1908년 조선에 상륙한 미국 안내서 《화성돈전》은 워싱턴의 일생을 따라가며 미국 건립사의 중요한 두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첫 번째는 1754년부터 1763년까지 북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영토를 둘러싸고 일어난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쟁탈 전쟁(프렌치-인디언 전쟁, French and Indian Wars)이고, 두 번째는 1775년 시작되어 1778년 파리 조약에서 공식적으로 독립을 인정받으며 끝 맺은 미국의 독립전쟁이다. 《화성돈전》은 이 두 사건 속에서 워싱턴의 활약상을 조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안에 담긴 역사적 배경과 신생 독립국가 미국의 탄생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영국의 압제에 대항하여 저항의 막을 여는 1773년 보스턴 차 사건, 식민지 미국의 독립을 주도한 1774년 대륙회의의 결성, 1775년 독립선언서 작성과 대륙군 창설과 같은 주요 사건들, 그리고 사건마다 등장하는 지명과 인명, 각종 전투와 전함 이름까지 기록하여 당시 조선 지식인들과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미국이라는 국가의 전모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출판되는 책의 부록에서 《화성돈전》에 등장하는 인명과 지명이 20세기 동아시아 삼국에서 어떻게 표기되었는지 확인하고 현대어 명칭과 비교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