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시대의 징비록,
참여정부 주요 정책들의 막전막후를 그리다
노무현 후보와의 첫 만남 이후 이정우 교수는 경제1분과 간사로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다. 그리고 인수위가 끝나 가던 2003년 2월, 노무현 당선자는 불쑥 “정책실장을 맡아 주지 않겠습니까?”라고 제안한다. 정책실장은 새 정권의 방향타와 같은 상징성이 있는데 대선 기간 동안 딱 세 번 만난 사람에게 이런 중책을 맡긴 까닭은 무엇일까? 이정우 교수는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내내 궁금했지만 대통령 본인에게 물어볼 기회가 마땅치 않았다. 그리고 결국 이 궁금증은 영구 미제가 되고 말았다.(51쪽)
정책실장은 외교·국방·통일을 제외한 모든 정부 부처의 정책을 총괄·조정하고, 대통령 국정과제 추진을 담당하는 자리다. 그런 만큼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들이 어떤 취지를 가지고 구상되었는지, 어떻게 입안·실행되고 그 성과와 의의는 무엇인지 이정우 교수는 누구보다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저자는 정책이라는 무대 안팎에서 어떤 인물과 설왕설래가 등장하고 퇴장했는지, 그 막전막후를 적나라하게 서술한다. 대표적인 일화로 신행정수도를 둘러싼 이슈를 살펴보자. 2024년 4월에 치러진 제22대 총선에서 세종시로의 국회 이전은 또 다시 주요 공약으로 등장했다. 왜 세종시는 행정부만 품은 반쪽짜리 행정수도가 되었을까? 제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균형발전을 위해 수도 이전이라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놓았고 특유의 뚝심으로 이를 실천에 옮겼다. 하지만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는 신행정수도가 "관습헌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날 오후 노 대통령은 문재인 민정수석에게 관습헌법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머리가 좋다(영리하다)는 민정수석의 대답에 “나도 처음 든 생각이 "머리가 참 좋구나"였어요”라며 맞장구를 쳤다. 이정우 교수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결정이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헌재에 의한 쿠데타”라는 평가를 덧붙였다고 한다.(287쪽) 신행정수도라는 미완의 과제를 두고 대통령과 참모들이 얼마나 큰 아쉬움을 삼켰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외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언론의 횡포에 맞선 가판 신문 폐지, 교육 행정 전산 시스템인 나이스(NEIS) 도입, 철도 구조개혁, 양여금·특별교부세·특활비 등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정부 예산 축소 및 폐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분산 배치, 스크린 쿼터 문제 해결, 점진적 재벌개혁을 위한 "시장개혁 3개년 계획", 경로별 입시제도 도입 무산, 10·29 대책 이후 일관되지 못하고 흔들려 버린 부동산 정책 등 수많은 정책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과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예를 들면 노무현 대통령의 시그니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검사와의 대화"에 이어, 나이스 시스템 도입을 놓고 "교사와의 대화"가, 조흥은행 매각 문제를 두고 대통령 주재 관련 토론회가 열릴 뻔하기도 했다. 모두 청와대 참모들의 만류로 성사되지 않았지만, 문제 해결 방법으로 대화·소통·타협을 가장 우선했던 노무현 스타일이 돋보이는 일화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모든 비전과 결정에 확신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2003년 8월의 어느 일요일, 이정우 교수는 대통령과 저녁 식사 자리를 가졌다. 반년 동안 정책실장 업무를 해 보니 어떠냐는 대통령의 물음에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이대로 가면 괜찮겠고, 과거 여러 정부보다 잘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식사를 마친 후 노무현 대통령은 문밖까지 배웅해 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일요일에 쉬는데 나오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정책 쪽은 꽉 장악해서 잘해 주십시오.” 이때 이정우 교수는 개혁에 대한 노 대통령의 강한 의지와 열망을 느낌과 동시에 처음 가는 길에 대한 일말의 불안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국가의 수장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418쪽)
이정우 교수는 참여정부가 사면초가,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힘겹게 싸웠다고 기술한다. "비전이 없다, 개혁 후퇴다,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 왼쪽 깜빡이 넣고 우회전한다" 등 원색적인 비난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대통령 노무현과 청와대 참모들은 궁극적으로 개혁 정부를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들의 고투를 기록한 이정우 교수의 회고는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시대의 징비록"이라 할 만하다. 참여정부가 시도했던 정책들은 그것이 공이든 과든 오늘날 전방위적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우리 사회에 묵직한 메시지를 선사한다.
소박한 여유와 유머가 함께했던 청와대의 일상
노무현과 함께한 이정우 교수의 1000일이 진중하고 비장한 나날로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소탈하고 유머와 장난기가 많았다. 이정우 교수 또한 노무현 대통령이 시골 할머니들의 그것처럼 꾸밈없는 화법을 좋아했고 주위에는 항상 웃음꽃이 피었으며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즐거운 사람이었다고 소개한다. 하지만 재치와 여유와 인간미가 넘치는 노무현 스타일은 그의 참모들 덕분에 더욱 빛을 발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정우 교수는 독자들을 청와대의 소소한 일상 속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참모들 사이에 있었던 유쾌한 티키타카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2003년 9월 4일, 노 대통령의 눈에 다래끼가 났다. 그는 수석회의에서 “세종대왕은 눈병이 자주 났다는데 나도 세종대왕처럼 되려는가 봐요”라며 농담을 했다. 나종일 안보실장이 다래끼에는 눈썹을 두세 개 뽑고 데운 수건으로 찜질하는 게 특효라 일러 주었더니 실제로 노 대통령이 눈썹을 뽑았다고 한다.(323쪽) 또 한 번은 청와대 비서실 업무 연계 회의 자리에서 조윤제 보좌관이 “제 임무가 무엇인지 대통령이 좀 말씀해 주세요”라며 엉뚱한 질문을 했다. 다른 이라면 1년 이상 일하고도 이런 질문을 던지는 참모에게 화를 낼 텐데 노 대통령은 그러지 않고 오히려 “좋은 문제 제기”라며 설명을 이어 갔다. 이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상대방의 이견도 귀담아듣는 태도를 항상 견지했다고 한다.(421쪽)
2004년 11월, 남미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그곳에서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한국 언론들은 룰라 대통령에 대해 칭찬 일색이었고 비교 대상이었던 노 대통령의 기분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런데 룰라 대통령을 직접 만난 후 그에게 큰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룰라 대통령이)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하는 바람에 나 말고도 그런 사람이 있구나 싶어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러자 김병준 정책실장이 “앞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해외에 나갈 때는 그런 대통령을 꼭 한 명씩 넣어야겠다”며 장단을 맞추었다.(454쪽) 하지만 이후에도 이정우 교수와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직을 그만두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폭탄 발언을 종종 들어야 했고, 대통령을 하기 싫어하던 룰라는 2006년과 2022년 대선에 도전해 브라질 최초 3선 대통령이 되었다.
한번은 노무현 대통령이 수석, 보좌관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정찬용 보좌관에게 총선 출마를 권했다. 이미 여러 번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출마를 권한 모양이었다. 정 보좌관이 참다못해 노 대통령에게 대들었다. “왜 저기 있는 이정우, 문재인한테는 한 번도 출마하라는 소리를 안 하고 저한테만 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노 대통령이 씩 웃으며 답했다. “저 사람들은 정치할 사람이 못 돼.” 참석자들이 모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413쪽)
책임감과 사명감, 부담과 긴장을 안고 지내는 청와대 생활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참모들은 소박한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다. 대통령의 품격은 이처럼 힘과 권위가 아닌, 사람에 대한 애정과 존중에서 비롯되는 것일 테다. 오늘날 노무현과 참여정부가 절절히 그리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