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그리고 만남
『반도여 안녕 유로파』는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후에 유럽으로 떠나 십 년 가까운 시간을 그곳에서 보낸 시인의 사유와 감정의 이력이 잘 드러나 있다. 무도한 군부 독재 정권 아래 있는 조국을 떠나야 한다는 미안함과 비장함, 새롭게 살아가게 된 유럽에서 마주한 다양한 삶의 모습과 그곳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을 통해 느끼는 국가와 권력, 체제에 대한 사유. 그리고 떠나온 자에게 주어진 그리움의 무게와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조국에 대한 복잡한 여러 감정들. 이 시집은 이별과 만남을 통해서 빚어진, 이 땅과 이 땅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동시대의 세계에 대한 시인의 서정적 사유가 담겨 있다.
한 시대를 읽다
『반도여 안녕 유로파』에 수록된 시편들에는 많은 서사들이 담겨 있다. 그곳에서 만난 입양아 출신, 국가의 폭력을 피해 도피해 온 남미의 시인, 그리고 그곳에서 떠올린 윤이상과 이미륵, 그리고 아나키스트 바쿠닌과 총알이 빗발치는 사라예보 거리에서 첼로를 연주한 베드란 스마일로비치 등과 결합된 에피소드들이 제시된다. 시인은 다양한 서사적 요소와 서정성을 결합해 그 시대에 대한 여러 초상을 그리고 있다.
우리의 삶과 역사를 보듬고...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정서적 특징으로 ‘한’을 말하기도 한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정서이겠지만, 나라를 빼앗기고, 전쟁을 겪고, 독재와 국가의 폭력을 겪으며 근대화와 민주화를 이루어 내기까지 이 땅의 민중들이 겪어 온 세월을 ‘한’이란 말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 같다. 『반도여 안녕 유로파』에 수록된 「아린 아리랑」은 익숙한 민요 〈아리랑〉을 변주해 우리의 역사의 아픈 생채기인 일본군 위안부의 일생을 통해 우리 민족의 ‘한’의 역사를 잘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픔과 ‘한’을 간직하고 살아갈지라도, 우리는 우리에 대한 어떤 믿음 속에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해 나가고 있다. 이 시집은 시인이 이별과 만남, 그리고 돌아옴의 과정에서 빚어낸 작품들을 통해 우리에게 그러한 길을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