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불교사상에 대한 지식사회학적知識社會學的 접근
통일신라는 삼국을 통합함으로써 민족문화가 처음으로 정립되는 시기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사회사상을 파악하려면 통일신라사에 대한 바른 인식이 중요한데, 신라 중대와 하대의 사회 구조를 너무 다르게 파악하려는 연구 경향이 있다. 물론 두 시기의 차이가 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신라중대 사회 속에 하대 사회의 요인이 태동하고 있었음을 간과하면 안 된다.
신라중대에는 전제주의만 행해졌던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항하는 진골귀족 세력이 온존했고, 전제주의에 유리하면서도 서로 대립할 수 있는 사상들이 함께 유행했다. 이 시기에는 교종 불교가 성행했는데, 교종은 화엄종華嚴宗과 법상종法相宗으로 대표된다. 성기취입적性起趣入的인 화엄사상은 전제왕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지배 체제를 구축하는 데 유용했다. 법상종은 신라중대 말 중간 계층에 주로 수용되었고 엄격한 계율을 강조했다. 신라 왕실은 법상종사상을 포용함으로써 엄격한 계율적 통치에 도움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주요 신앙층인 중간 귀족의 협조를 얻음으로써 왕실에 제약을 가할 수 있는 정통 진골귀족 세력을 견제했다.
유교는 신라중대 전제주의가 성립되어 가는 분위기 속에서 왕권과 결탁한 관료층, 주로 육두품귀족을 중심으로 수용되어 성행했다. 처음에 불교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던 유교는 신라하대가 되면서 육두품 출신 유학자들의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사상적 기반이 되었고, 유학자들은 유교와 불교는 각각 세상 안과 세상 밖의 가르침이라고 구별하면서 불교(특히 교종) 및 그것과 친밀한 진골귀족 세력을 비판했다. 이처럼 신라하대의 유교는 반진골적反眞骨的 성향을 지니고 있었지만, 신라국가 또는 왕권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신라하대에는 지방호족 세력의 등장과 함께 선종이 유행했다. 교종과 달리 선종은 불립문자不立文字·견성오도見性悟道를 내세워 누구나 자기에게 내재한 불성을 깨닫는 것을 중시한다. 선종사상은 중앙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독자 세력을 구축하려는 지방호족의 구미에 맞았다. 그러나 선종사상은 진성여왕대를 전후하여 변했다. 진성여왕대 이전의 선승들은 지방호족뿐만 아니라 중앙 왕실과도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었으나, 진성여왕대 이후의 선승들은 개인주의적 사상 경향을 강하게 지니면서 대부분 왕실과 결별하고 지방호족과 연결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후삼국이 쟁패를 겨루는 시기에 그들의 사상은 또 변하여 교종사상을 융합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아울러 유불선儒佛仙 삼교융합사상 경향의 유행과 함께 신비신앙이나 풍수지리설이 등장했다.
통일신라는 삼국을 통합해 비로소 민족문화를 성립시켰으며, 그 총체적 문화 역량이 원융圓融한 이론불교를 정립하면서 융섭적 민족문화를 창달했다. 신라말 문화 역량의 확대로 인한 신이한 융합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내포함으로써 고려 이후 교선융합사상 경향이 정착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선종을 중심으로 법상종이나 화엄종 사상을 융합하려는 가지산문이나 굴산문의 교선교섭사상은 조선시대에까지 영향력을 지니면서 유학은 물론 다른 종교사상까지 통합하려는 문화 전통을 이루었다. 문화 전통 연구에는 추체험적追體驗的 접근이 필요하다. 이 책은 문제가 된 역사적 사실을 오늘날 사회로 가져와 이해하기보다 해당 사회의 문화 풍토 속에서 해석했다.
저자는 역사학이 계감주의戒鑑主義에서 벗어나 문화 창조나 민족문화 창달이라는 목적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총체적 문화 역량 속에 배태한 역사적 사실은 창조된 민족문화이며, 문화 역량이 이어져 민족문화가 창달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학을 구조기능적構造機能的 방법으로 연구하여 개별 사실이 당대의 총체적 문화 역량 속에서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전후 사정을 제시하려 했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서론, 결론과 세 부로 구성되었다. 제2부 「신라중대 전제정치와 원융적 이론불교의 성립」에서는 중앙집권적 전제정치가 행해지던 신라중대에 보편적 이론체계를 갖추면서 성립한 교학불교의 원융사상을 밝혔다. 『삼국유사』의 도화녀비형랑조나 정공설화 및 현유가해화엄조 등 관념적 설화 자료의 분석을 통해 신라중대 전제정치의 구체적 모습이나 불교사상 전개의 대세를 지적했다. 전제정치를 지향한 한화漢化정책은 보편주의에 바탕을 둔 때문인지, 신라중대 화엄종은 물론 법상종이나 밀교가 방계보다 정통 교리의 원융사상을 수용했다. 제3부 「신라하대 지방호족과 융섭적 선종사상」과 제4부 「후삼국 사회의 신이적 융합사상 전개」에서는 신라하대 지방호족의 등장과 선종 산문의 성립, 후삼국시대의 융합 불교사상, 풍수지리설 등을 다루었다. 『삼국유사』 원성대왕조의 해몽 기사나 후백제 견훤조 등을 통해 지방호족의 등장이나 후삼국 사회의 구체적 모습을 끌어냈다. 이 시기에는 교종과 선종의 각 교파가 논리체계를 완성하고 상호 통합을 모색하면서 교선교섭사상을 성립시켰는가 하면, 투박한 토착문화의 영향을 받아 미륵신앙이나 운문종사상 또는 풍수지리설 등이 신이한 융합사상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