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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동포를 구하라 - 대한매일신보 사장 배설의 열정적 생애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동포를 구하라 - 대한매일신보 사장 배설의 열정적 생애

  • 정진석
  • |
  • 기파랑
  • |
  • 2013-04-08 출간
  • |
  • 496페이지
  • |
  • ISBN 9788965239123
★★★★★ 평점(10/10) |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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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장 항일 언론투사의 죽음

제 Ⅱ장 배설의 어린 시절과 일본 생활
1. 집안 내력과 학력 _30
2. 일본에서의 생활_40
3. 사업의 성공과 실패 _50

제 Ⅲ장 신보의 운영 자금
1. 배설 한국에 오다 _64
2. 신보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 창간_71
3. 자금문제에 대한 세 갈래 추측_80
4. 고종의 비밀 보조금 지급 _90

제 Ⅳ장 우국 항일 언론인들
1. 총무 양기탁 _106
2. 투옥 후 한성전기회사와 궁내부 근무 _113
3. 배설 사후의 양기탁과 후임 사장 만함 _123
4. 다섯 부류의 종사자들_132
5. 논객과 행동파_138

제 Ⅴ장 항일 민족진영의 편에서
1.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_148
2. 한국문제에 냉담했던 영국_159
3. 배설과 하기와라의 불화_167
4. 주한 영국 공사의 일본 편향 외교_174
5. 배설 처리 방침에 고심한 영국_182
6. 주한 영국공사관 철수_191

제 Ⅵ장 반일 언론과 일본의 대응홍보
1. 탄압의 치외법권 서양 언론 _204
2. 영국 기자 스토리의 고종밀서 사건_215
3. 영어 신문 발간의 중요성 인식 _230
4. 서울 프레스와 일본의 침략홍보_238
5. 외국 여론을 중요시했던 이등박문 _248

제 Ⅶ장 일본과 영국의 줄다리기
1. 외교안건으로 부상한 배설 처리_260
2. 신보의 발행부수와 영향력_267
3. 영국과 일본의 대응_275
4. 영국 총영사 코번의 정세판단_281

제 Ⅷ장 배설처리 법 적용 논란
1. 일본, 우리가 배설 추방하겠다 _290
2. 일본ㆍ태국ㆍ중국에서 일어난 선례 _294
3. 영국의 선택, 1904년 추밀원령 적용_304

제 Ⅸ장 영국 총영사의 영사재판
1. 런던ㆍ서울ㆍ동경의 견해차이_314
2. 절박한 사태에 치안판사 자임_321
3. 재판 결과에 대한 반응_328
4. 논조가 더욱 날카로워진 신보_340

제 Ⅹ장 상해고등법원의 배설 재판
1. 런던ㆍ서울ㆍ동경의 견해 조율_354
2. 세 나라가 관련된 국제재판 _370
3. 한국은 독립국인가, 일본의 속국인가_376
4. 영국의 극동정책과 치외법권의 한계_385

제 XI장 양기탁 구속과 영ㆍ일 간의 대립
1. 상해에서 배설이 돌아오기 전에 _398
2. 정반대 입장에 선 영국과 일본_406
3. 코번과 미우라의 갈등 _418
4. 실수로 내보낸 양기탁 신병 인도_426
5. 코번과 맥도날드의 불화_435
6. 일본 언론의 선동과 명예훼손_442
7. 네 나라가 관련된 양기탁 재판 _452

제 XII장 통감부의 대한매일신보 매수
1. N-C 데일리 뉴스를 고소한 배설_462
2. 항일 언론투사의 사망_466
3. 통감부의 손에 들어간 항일 민족지 _474

참고문헌
1. 영국 소재 자료 소장처 _486
2. 일본자료 _490
3. 신문ㆍ잡지 정기간행물 _492
4. 외교문서, 기타자료 _493
5. 연표, 기타자료 _495

도서소개

이 책은 이 같은 여러 사건을 영국, 일본, 한국의 자료를 섭렵하여 흥미 있게 엮어나간다. 대한매일신보와 관련된 인물들은 일제의 강점 이후에 일제가 민족진영 인물을 대규모로 구속 투옥하고 기소한 105인 사건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신보는 고종의 밀서를 사진판으로 보도하고, 전국에서 봉기한 의병들의 무장투쟁을 널리 알렸다.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자신의 백 마디 말보다 신문 기사 한 줄이 더 힘이 있다고 탄식했을 정도였다. 의병 항쟁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나오는 것은 신보가 폭동을 선동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친일 영어신문 「저팬 메일」은 신보의 논설은 의병대의 창의문(倡義文: 의병 봉기를 널리 호소하는 글)으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선동적이라고 비난했을 정도로 신보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 민족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이 땅에서 요절한
벽안(碧眼)의 영국인 배설, 그는 누구인가?

영국인 배설(裴說, Ernest Thomas Bethell)은 원래 한국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던 사람이다.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한국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그는 곧 서울에서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했고 항일 투쟁의 선봉에 섰다. 군대해산 때에는 일본군에 저항하다가 총검에 찔려죽고 부상한 구한국 군인을 병영까지 들어가서 치료했던 일도 있었다고 재판정에서 진술했다. 헤이그 밀사사건, 고종이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던 사건은 호외를 발행하여 긴박한 사태를 알렸다.

배설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는 한반도의 하늘에 망국의 먹구름이 드리웠던 민족 수난기를 밝힌 횃불이었다. 배설이 소유주였던 이 신문은 일제 침략에 최대 걸림돌이었다. 배설은 한국 언론사상 처음으로 3개의 신문을 발행하면서 최대의 발행부수를 기록했다. 국한문판, 한글 전용판, 영문판(코리아 데일리 뉴스)의 3개 신문을 발행하면서 일제의 침략을 국내외에 널리 폭로하자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외교력과 무력을 총동원하여 배설의 추방과 신보의 폐간을 영국에 강력히 요구했다. 배설은 파란만장한 37년의 짧은 생을 마치고 서울 양화진에 묻힌 열혈 항일 언론투사였다.
신보를 둘러싸고 배설, 양기탁이 관련된 사건은 언론의 역사인 동시에 한국 근대사의 핵심 테마이자 외교사, 국제 사법사의 사례가 되는 희귀한 주제이다. 한국, 영국, 일본, 중국을 비롯하여 멀리 태국, 미국과도 관련이 있는 사건들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 문화재청은 2011년에 배설과 대한매일신보사의 유품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신문사에 걸었던 영국기와 태극기, 배설의 죽음을 애도하여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만사집이 그것이다. 저자가 영국의 유족을 만나 한국으로 가지고 왔던 유품이었다. 작년에는 대한매일신보 지면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이 책은 37세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치고 한강변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잠들어 있는 배설을 저자가 책을 통해서 다시 살려낸 것이다.

§ 직필(直筆)로 일제에 대항하다

러일전쟁 후 일본 헌병대는 한국인이 발행하는 모든 신문과 잡지를 사전검열하여 항일적인 기사는 모조리 삭제를 명하였다. ‘벽돌신문’이 검열에 깎인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던 시기였다. 삭제한 기사가 실렸던 자리가 검은 벽돌을 쌓아둔 것 같다 하여 붙인 이름이었다.

그러나 영국인 배설이 발행하는 대한매일신보(신보로 약칭)와 영어 자매지 「코리아 데일리 뉴스」는 일본 헌병대의 검열을 피할 수 있었다. 영국인 발행 신문은 한국에서 치외법권(治外法權)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신보는 민족진영 항일투쟁의 총본산이 되었다.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와 같은 우국의 논객들이 침략에 붓으로 맞서 싸우는 한편으로 항일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의 비밀 본부 역할을 맡았다. 또한, 국채보상운동의 성금을 모으는 ‘국채보상의연금총합소’도 신보사에 설치되었다.

배설 처리 문제를 둘러싼 외교교섭은 서울, 동경, 런던에서 신중하게 논의ㆍ검토되고 때로는 긴박하게 전개되었다. 언론인 한 사람을 처리하기 위해 영국과 일본이 이처럼 복잡한 교섭을 벌인 적은 없었다. 일본의 끈질긴 요구로 배설은 두 차례나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첫 번째 재판(1907년)은 서울 주재 영국 총영사가 진행한 영사재판이었고, 두 번째 재판(1908년)에는 상해 주재 영국 고등법원 판사와 검사, 통감부 소속 일본인 서기관과 증인들, 고베에서 온 영국인 변호사, 피고 배설과 한국인 증인들이 참여했다. 우리 사법사상 처음 보는 국제재판이었다. 배설은 3주일간의 금고형(禁錮刑)을 받았다. 배설이 상해에서 복역하는 동안 통감부는 신보사의 총무 양기탁을 구속했다. 양기탁 구속은 영일 두 나라의 심각한 외교분쟁을 불러일으켰다. 재판에는 일본인과 한국인 판사가 재판을 맡았고, 피고는 한국인 양기탁이었다. 증인으로는 영국인 배설과 미국인, 프랑스인이 등장했다.

§ 이 책의 특징

이 책은 이 같은 여러 사건을 영국, 일본, 한국의 자료를 섭렵하여 흥미 있게 엮어나간다. 대한매일신보와 관련된 인물들은 일제의 강점 이후에 일제가 민족진영 인물을 대규모로 구속 투옥하고 기소한 105인 사건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신보는 고종의 밀서를 사진판으로 보도하고, 전국에서 봉기한 의병들의 무장투쟁을 널리 알렸다.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자신의 백 마디 말보다 신문 기사 한 줄이 더 힘이 있다고 탄식했을 정도였다. 의병 항쟁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나오는 것은 신보가 폭동을 선동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친일 영어신문 「저팬 메일」은 신보의 논설은 의병대의 창의문(倡義文: 의병 봉기를 널리 호소하는 글)으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선동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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