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이 주목하는 7명의 시인들에게 듣는 시 쓰는 마음
그리고 창작과 일상의 경계에 대하여
“시집을 읽으면 그 모든 것이 시인의 이야기이고 살아낸 삶 같다.”
박참새는 책에서 스스로 ‘시 애호가’를 자처하고 있다. 시는 언제나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로도 부족하고 ‘좋아한다’는 말로도 부족한 대상이었다.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말을 모두 담고 있는 ‘애호한다’는 표현만이 박참새가 시를 향해 느끼는 정확한 감정일 것이다. “시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이번 대담집을 준비하는 마음을 담은 프롤로그(들어가며)로 이 책은 시작된다. 시인들이 시 그 자체로 보이기도 하고, 시를 읽으면 시를 넘어 인간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집을 읽으면 그 모든 것이 시인의 이야기고 살아낸 삶 같다.”고 박참새는 말한다. 모든 시는 박참새라는 세계 안에서 이리저리 상상되어지고 새롭게 다시 읽힌다.
시인들에게 사전에 제공한 공통 질문도 있지만 각 시인만의 고유한 영역을 깊이 이해하고 애정과 존경의 마음으로 피워낸 박참새의 수많은 물음표들은 그의 시에 대한 ‘애호’의 마음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게 한다. 이미 언론이나 기타 매체를 통해 인터뷰가 다수 노출된 시인들인만큼 중복 질문은 피하고 박참새만이 할 수 있는 날카로우면서도 애정이 깃든 질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이를 통해 시인들 각각의 심오한 작품세계는 물론 개인의 인생관과 일상의 면면까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모든 작품을 한 줄 한 줄 꼭꼭 씹어 소화하듯 반복해 읽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예리한 질문은 대담자가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섬세하게 행간을 찌른다.
더불어 질문 곳곳에서 박참새가 시를 애호하고 또 습작하면서 오랜 시간 품어온 고민과 치열함을 엿볼 수 있다. 시가 착하다거나 어렵다거나 하는 편견, 시를 가르치거나 배우는 일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심, 시를 쓰게 하는 영감 혹은 동력, 신춘문예나 신인문학상에 국한되어 있는 등단 제도, 소설과 시의 내용적 형식적 차이, 나아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러 부조리와 편견, 사랑의 다양한 모습 등 시와 시를 둘러싼 시인들의 여러 ‘생각’이 폭넓게 담겼다. 수상 소감이 워낙 큰 화제가 되었던 만큼 박참새의 ‘글’이 아닌 ‘말’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갖는 의미는 크다.
텍스트만으로는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대담 당시의 표정, 손짓 등 보다 디테일한 현장의 분위기는 지문(地文)의 형태로 괄호 안에 넣었다. 실제 극본에서도 지문은 대사만큼이나 중요하고 연기자의 세세한 표현력을 높이는 만큼, 이런 장치로 인해 생생한 현장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활자에 묻어난다. 박참새 특유의 재기발랄하면서도 상대방을 편안하게 배려하는 화법으로 심도 깊은 대화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스스로 포착했다.
중간중간 고딕 서체로 처리된 부분은 대담이 완료된 이후 녹취록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추가한 것이다. 대화를 나누며 중간중간 속으로만 삼켰던 속엣말을 원고 형태로 전환한 것인데, 이는 대화를 활자로 옮기는 데서 오는 한계를 극복하고 읽는 재미를 보다 높였다. 마치 이중의 대화처럼 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박참새가 사려 깊게 고안한 장치이자 그 어떤 대담집에서도 볼 수 없는 박참새만의 유머감각이다.
시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사랑
그리하여 모두가 계속 쓰기를
아무쪼록 이 책은 박참새 특유의 성실함과 애정의 집합체다. “어떻게 해야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는지는 아직까지 나의 영원한 과제로 남아 있다.”(224쪽)라고 적고 있지만 박참새는 그 누구보다 사랑을 잘 알고 사랑을 행동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품은 사랑을 아끼지 않고 궁금해하며 마음을 다해 환대한다. ‘선에서 시작하는, 정재율’ ‘그들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눈물을 닦아주는, 김선오’ ‘흩뜨리는 방식으로 또렷이 쌓이는, 성다영’ ‘문을 열면 비로소 있는, 김리윤’ ‘우리 됨을 잊지 말자며 농담하는, 조해주’ ‘마음의 시간을 생각하는, 김연덕’ ‘저마다의 이상한 구석을 사랑하는, 김복희’ 대담에 참여한 시인들의 이름 앞에 고심해서 써넣은 문장들만 보아도 박참새의 고유한 사랑을 가늠할 수 있다. 특히 대담마다 시작과 끝을 갈무리하는 박참새의 글은 해당 시인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을 가감 없이 담아낸 ‘인물론’인 동시에 짧지만 응축된 언어로 풀어낸 ‘작품론’으로 읽힌다.
이번 대담은 각각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이루어졌으나 박참새 시인과 여기 모인 일곱 시인이 함께 동시대를 공유하고 있다는 감각을 선명하게 갖는다. 더불어 시에 대한 애정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연대하는, 그야말로 책 한 권 이상의 든든한 무게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 대담집을 끝까지 다 읽고 난 후에는 수록된 시인들의 시집과 대화 중 언급된 작품들을 늘어놓고 행복한 병렬독서의 재미를 누려보는 것도 좋겠다.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감상 포인트. 인터뷰에 참여한 정재율, 김선오, 성다영, 김리윤, 조해주, 김연덕, 김복희, 일곱 명의 시인이 그동안 어디에서도 발표하지 않은 신작시를 각각 한 편씩 수록했다. 새롭게 발표하는 일곱 편의 시를 문예지가 아닌 지면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이번 대담집이 주는 선물 같은 매력이다.
대담 이후 전개된 각자의 근황은 주석을 통해 꼼꼼히 보완했다. 박참새는 일곱 번의 대담을 모두 마치고 출간을 준비하던 중에 김수영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그야말로 “이 책을 만들다” 시인이 된 것이다. 앞으로 이들이 계속해서 걸어나갈 행보가 더욱 궁금해지는 까닭이다. 이제 박참새는 시인으로서 다시 출발선에 섰다. 그가 내딛는 발자국마다 또 어떤 시들이 궤적을 남길지, 그 시작에 이토록 든든한 동료들이 있으니 초조함은 조금 거둬도 좋겠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집에서 가져온 한 문장을 박참새와 이 책에 참여한 모든 시인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당신들 읽고 나는 조금 울게요
- 박참새, 「사랑의 신」 부분, 『정신머리』, 민음사,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