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상상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독자의 상상 속에서 끝나는 최고의 소설!
이 책을 쥐는 순간, 당신에게도 그녀와 그가 찾아올 것입니다.
-박동희(스포츠 칼럼리스트, 스포츠춘추 대표이사)
“그러니까 너희 할머니가 그때 영산상고에 가서 저 야구공을 가지고 왔다는 말이니?”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놀랍도록 흡인력 있는 이야기
작가 전리오 신작 장편소설
스포츠춘추 박동희 대표 강력 추천!
할머니의 유품상자에서 야구공이 나왔다. 손녀 윤경은 할머니의 야구공에 씌어 있는 ‘石丼正義’라는 한자가 ‘이시이 마사요시’라는 일본인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것이 1940년대 일본 여름 고시엔(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의 공인구라는 것을 알아낸다. 다큐 채널 PD인 윤경은 야구공에 숨은 사연을 쫓기 위해 〈식민지 조선의 야구 소년들〉이라는 프로그램 기획안을 작성하여 통과시킨 뒤 촬영감독 석현과 함께 부산, 오사카, 도쿄를 훑는 현지 로케이션 촬영을 떠난다. 1940년대 도일을 위해 ‘히라누마 토오쥬’라 창씨를 해야 했던 ‘윤동주’처럼 ‘서영웅’이 ‘오우치 히데오’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창씨를 한 까닭도, 일제가 도항증명서를 일본식 이름이어야만 발급해주었다는 것이었다. 윤경 PD와 석현은 부산항에서 일본의 시모노세키행 부관연락선을 타고 식민지 시절의 조선의 야구 소년들이 숨죽여 건너간 항로를 따라간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틀어달라고 할머니가 유언처럼 부탁한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의미를 되새기다 보면 일본과 한국 사이에 그리 오래되지 않은 역사의 겹침이 있었다는 것을 회상하게 된다.
1940년, 여름 고시엔 대회에 참가한 서영웅, 즉 오우치 히데오는 천황이 직접 참관하는 개막전에서 잘 이해되지 않는 실투로 조기 강판, 7회 재등판하여 완벽한 투구를 보여준다. 이때 맞붙은 카이소중학은 일본의 대표적인 야구 명문이었다. 여기서 서영웅은 카이소중학의 거물급 투수 나카타 준페이 선수를 만나게 되었고, 이후 친구가 된다.
여름 고시엔 대회가 끝나고, 그해 12월에 일본이 진주만 기습 공격하여 미국이 참전하게 되었는데, 이때 일본은 미국의 스포츠인 야구를 일절 금지하도록 하였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무렵이라 일본은 식민지의 젊은이들까지 동원하여 가용 병력을 늘려야만 했고, 그런 상황에서 서영웅은 일본군에 입대한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 천황이 옥음방송을 통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다. 이 무렵 서영웅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소설은 이 무렵부터 급박하게 돌아간다. 서영웅의 일본군 탈영과 수감생활, 출소 후 일본 프로야구 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 노히트노런의 기록들, 한국계 프로야구 선수인 가네다 세이이치를 윤경 PD가 인터뷰하는 동안 가네다 세이이치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서영웅의 스토리까지 읽는 사람의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인 오우치 히데오, 즉 서영웅의 이야기에는 아직도 숨겨진 사연들이 남아 있다.
서영웅과 윤경의 할머니인 김순영은 대체 어떤 사이였을까? 그리고 왜 서영웅은 해방된 조국에서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을 할머니에게 돌아가지 않았을까? 아니 돌아가지 못했을까? 실제로 한일 간 외교가 단절되어 회복되지 못한 시대에 두 나라를 오가는 데 필요한 서류를 꾸미기 위한 노력들이 자꾸 수포로 돌아갈 때마다 독자들은 현대사의 자잘한 금지 조건들이 그런 게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면서 실로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역사의 씨줄과 리얼리티의 날줄로 직조한 소설의 세계는 스토리의 힘을 잃지 않으면서도 역사의 시공간이 가진 제약을 폭주하지 않는다. 이 소설, 《할머니의 야구공》의 미덕은 역사적 조건의 한계를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로 얼버무리지 않고, 그것의 필연성이 리얼리티의 합리적인 이유를 만날 때까지 기어이 기다린다는 점이다. 이 소설적 태도의 ‘기다림’이야말로 섣부른 재회를 지연시켜 가장 깊은 슬픔의 음역에서 출발하는 맑고 아름다운 감정의 이야기를 남기게 한다. 김순영과 서영웅의 인생 이야기가 먹먹하게 마음을 물들이는 동안 어쩌면 그 슬픔의 이유가 ‘피카의 독화살’이라 불렀다는 그것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니 전쟁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일제 식민지 시대를 정면으로 살아온 그들의 인생 이야기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처절하다는 힘없는 자각 때문은 아니었을까?
오래된 야구공, 결혼식 사진, 터널 개통 보도, 맛집 탐방 기사, 정부의 관보, 야구 기록지, 분홍색 수첩, 과거의 날씨, 야구장 관련 규정, 출입국 기록, 길거리를 찍은 사진 등 관심 없이 방치되어 있던 기록들이 누군가의 미스터리를 풀어내기 위한 핵심적인 단서가 된다.
어쩌면 무심결에 지나칠 수도 있었던 사실들이 주인공의 통찰력에 의해 하나로 꿰어지는 순간, 그것은 뒷골이 서늘해질 정도의 섬뜩한 단서들이 된다.
이것은 서사적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거둔 소설적 태도의 승리이다!
나는 글을 쓸 때 물성(物性, physicality)이라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직접 보고 만지고 느껴봐야만 비로소 좋은 글이 써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 단편소설을 쓸 때도 나는 인터넷으로 메이저 리그 공인구와 일본 프로야구 공인구를 사서 컴퓨터 모니터 옆에 놓아두고 직접 손으로 만져보면서 작품을 썼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나는 이번 작품을 쓸 때 투구 연습용 그물망을 구매해 비좁은 집안에 놓아두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사용하는 실전용 공인구도 한 다스 샀다. 글러브와 투구 교본도 구입했다. 그렇게 교본을 보면서 나는 포심, 투심, 커브, 체인지업 그립을 잡고 저녁마다 나 홀로 정해둔 시간에 집안의 그물망으로 열심히 야구공을 던졌다. 하루에 100개 이상의 투구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보름 정도를 지속했더니 커브의 투구 매커니즘을 나 자신의 몸으로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