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쓴 21세기 ‘섬 대동여지도’, 여섯 번째 여정
울릉에서 부산, 거제, 고성, 사천, 남해, 창원, 하동까지
치열한 생존과 일상을 기록한 섬들의 연대기
한국에는 유인도 460여 개를 비롯해 3,300여 개의 섬이 있다. 바다에 뿌려놓은 듯 점점이 서 있는 섬들에는 사람이 살았고, 사람들의 자취가 섬들을 더욱 섬답게 만들었다. 고독과 고립의 공간에서 거역할 수 없는 사나운 바다와 거친 바람이라는 숙명적인 제약에 온몸으로 맞서며 사람들은 치열하게 생존하고 그들의 일상을 섬에 새겨 넣었다. 20여 년에 걸쳐 섬들을 누비면서 가슴으로 섬을 기록해온 저자 김준에게 섬은 오래된 미래이자 생명의 보고였다.
《섬문화 답사기 : 울릉 부산 거제 사천 남해 편》은 총 8권으로 기획한 ‘한국 섬총서’ 프로젝트의 장중한 서막을 열어젖힌 첫 번째 권 〈여수, 고흥편〉과 〈신안편〉 〈완도편〉 〈진도 제주편〉 〈통영편〉에 이은 여섯 번째 권이다. 섬의 모든 것을 수집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추적해온 김준의 섬문화 답사기가 어느덧 10년의 세월을 거쳐온 것이다. 이번에는 통영을 제외한 울릉도, 부산, 거제, 고성, 사천, 하동 지역을 포함한 경상권 섬에 알알이 박힌 삶을 채취해 기록했다.
울릉도, 부산, 거제, 고성, 사천, 하동 지역
파도에 맞서면서 묵묵히 역사를 견뎌온 그들의 거친 숨이 섬의 미래를 만들어내다
통영을 제외한 경상권에 속하는 섬들은 그 어느 곳보다 다이내믹하다. 울릉권은 본섬인 울릉도 외에 죽도와 독도까지 포함한다. 유인도는 2개밖에 없지만, 역사로나 영토의 가치로 보나 전혀 작지 않다. 거대 도시 부산에 섬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이 많겠지만, 부산은 해양도시를 지향한다. 영도가 부산의 섬이고, 거제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가덕도와 눌차도가 있다.
아름다운 풍광으로 많은 도시민의 발걸음을 유혹하는 거제는 우리 근대사에서 그 어느 곳보다 아팠던 곳이다. 일제의 수산자원 수탈을 위한 전진기지였으며, 일본인 이주어촌이 자리를 잡았던 곳이다. 한때는 왕실의 바다에서 침략자의 바다가 되었던 진해만의 많은 섬은 광복 후에도 온전히 섬 주민의 바다가 되지 못했다. 굳은 세월을 지나 이제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해양관광의 거점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하지만, 불행히도 여전히 갈등이 남아 있다.
고성은 먼 옛날 공룡의 발자취가 선명하게 남아 있으며, 과거 삼천포로 불렸던 사천에는 바다의 전통이 살아 있다. 창선도와 남해도와 바다가 연결된 이곳에는 오래된 전통어법인 죽방렴이 여전히 유용하다. 하동과 남해 사이에 있는 노량바다는 전라도로 가는 길목이자 일본에 맞서 이순신 장군이 전투를 펼쳤던 곳이다. 남해 곳곳에서 이순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울릉에서 남해까지 지역이 넓게 펼쳐져 있어 이번 여정 또한 쉽지 않았다. 많은 섬이 육지와 연결된 연륙도이며, 섬과 섬이 연결된 연도이지만 뱃길이 없는 섬 또한 제법 많다. 점점 많은 사람이 섬에 관심을 보이면서 섬을 오가는 사람은 늘었지만, 정작 섬에 상주하는 사람은 줄었다. 섬을 이루는 바다와 마을과 숲에 사람들이 많이 오가지만 사람의 숨결이 오래 머물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여행객이 편하게 쉴 수 있는 시설이 많아지면서 섬의 땅값은 올랐지만 섬 주민의 섬살이는 편치 않다. 주인은 줄고 나그네만 늘어나니 섬은 정책의 대상이자 투자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섬의 특성인 공동체나 공유자원이 개인화, 개별화되면서 법과 제도를 앞세운 의사결정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이래서는 섬살이가 위태롭다는 것이 저자 김준의 생각이다. 섬사람들의 건강하고 밝은 내일이 곧 우리의 자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여러 섬의 풍광과 문화, 그곳에 깃든 삶의 면면을 기록하는 중에 저자는 섬에 관한 단상을 함께 적어두었다. 기록해야 잊지 않고, 잊지 않아야 잃어버리지 않으며, 잃어버리지 않아야 미래가 있다. 저자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섬을 찾아다니며 기록을 멈추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