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철군으로 종식된 임진왜란. 그러나 전쟁이 조선에 남긴 상처는 크고 깊었다. 사회경제적 기반이 초토화됐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납치됐다. 《임진록》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여에 걸쳐 조선에 큰 상처를 남긴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역사소설이다. 일반적인 고전소설처럼 특정 인물의 생애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임진왜란의 전개를 기본 뼈대로 하면서 당시 활약했던 수많은 인물들의 행적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낸다.
《임진록》은 전쟁의 쓰라린 상처보다는 명장, 의병장들의 활약을 그린다. 패배한 전투를 승리한 것으로 서술하는가 하면, 인물들의 행적에 크고 작은 허구를 가미해 역사적 사실을 변형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모든 이본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명당의 활약이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이 다시 기병할 기미를 탐지한 사명당은 일본으로 건너가 왜왕의 굴욕적인 항복을 받아 내고, 매년 사람 가죽 3백 장 등의 공물을 바치게 하고 귀국한다. 《임진록》은 전쟁의 상대자였던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표출하는 장이자, 금이 갔던 민족적 자존심을 치유하는 기능을 해 온 것이다. 이런 연유로 일제 치하에서는 금서로 지목되어 불태워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가치가 더욱 상승해 은밀히 전파됐고 현전하는 이본이 백여 종이 넘는다.
이본의 수도 많지만, 각 이본마다 내용의 편차가 크다는 것이 특징이다. 각 이본마다 등장하는 인물도 다르고, 주요 사건과 결말도 상이하다. 이런 까닭에 《임진록》은 소설의 이본을 분류하는 일반적인 방법과 달리, 비슷한 내용의 이본들을 묶어 ‘이본군’으로 분류한다.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역사 계열’, 역사적 사실보다 설화적 성격이 강한 ‘최일영 계열’, 중국 삼국 시대의 명장인 관우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관운장 계열’, 이순신의 탄생과 활약, 그리고 그의 사후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이순신 계열’이 그것이다. 각 계열의 작품은 거의 별개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내용 차이가 크다. 이번 책에는 각 계열의 대표 이본인 경판본 《임진녹》, 국립중앙도서관본 《님진녹》, 권영철본 《임진록》, 한국학중앙연구원본 《임진녹》을 현대어로 번역해 수록했다. 각 계열의 이본을 비교해 읽음으로써 《임진록》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주제와 함께 이본별로 나타나는 독창적인 주제를 음미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