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헌석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발췌한 일부
#1
사랑한다는 백 마디보다
보고 싶다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진다
-「보고 싶은 날에」 일부
이점태 시인은 외로움을 많이 타는가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랑하는 부군을 먼저 보낸 후 그리움만으로 살아가기 때문일 터입니다. 보고 싶다던 평범한 말 한마디에 힘을 얻어 하루, 열흘, 1년, 이렇게 살아낸다고 밝힙니다.
시인은 달빛이 마당 가득한 날에, 자신의 선잠을 깰까 염려하는 그대가 발자국소리를 죽여 꿈길에 한 번이라도 오시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부군에 대한 그리움일 터이지만, 이와 같은 그리움이 깊어지면 정서적 상승 작용에 의하여 부모님, 시부모님, 가족들, 친구들로 확장되게 마련입니다. 그 중에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통하여 외할머니에서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에서 자신으로 이어지는 삶의 양상을 시로 빚어 정서적 공감대를 이룹니다.
#2
나에겐
네가 있어 행복이고
너에게도
내가 있어 행복하다 했으면 좋겠어
-「존재의 이유」 일부
시인의 작은 소망은 〈딱 하루만이라도/ 너에게 기쁨이었으면 좋겠고/ 딱 한 번이라도/ 너에게 위로였으면〉 좋겠다면서, 이로 인하여 시작된 행복이라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고 노래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존재 이유가 서로에게 기쁨이고 행복이기를 바라고 있음입니다.
어쩌면 시인은, 이처럼 작은 소망으로 세상을 살아내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시인은, 숙명적 외로움으로 살아내야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외로움에 대하여 몇 가지 단서를 제공합니다. 말이 많은 참새도 외로워서 심하게 우짖는다는 시각에서, 〈그 옛날 우리 아버지/ 곰방대 재떨이에 두드리는 소리/ 외롭다고 보내는 신호인 줄/ 몰랐지 몰랐지요 정말 몰랐지요〉라며 아버지 시대의 제재(題材)를 새롭게 찾아냅니다.
#3
저녁답 앞산에 길게 무지개 걸리면
두루마리 길게 쓴 내 편지
걸어두었다 여겨주오
-「칠월 어느 지겨운 날 있거든」 일부
이점태 시인은 〈달 밝으면 그대 생각납니다.〉라고 노래합니다. 시인의 가슴에는 〈늘 지지 않는 달이 떠 있어서/ 밤새도록 들이마신 달빛〉이 있어서, 늘 그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이런 상황이 「칠월 어느 지겨운 날 있거든」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친구에게 어느 지겨운 날이 있거든 자신을 찾아달라고 부탁합니다. 벼락같이 쏟아지는 소나기같이 찾아오면 좋겠다고 덧붙입니다. 빨랫줄에 마른 옷을 걷을 사이도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찾아온다면, 뒷날에 흠뻑 젖게 소나기가 내릴 때, 그대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겠다고 덧붙입니다. 앞의 인용처럼 저녁 무렵 앞산에 무지개가 길게 걸리면, 내가 친구를 초대하는 두루마리 편지를 길게 걸어놓은 줄 알고 찾아오라는 의중(意中)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4
「지장사 암자에서의 하루」는 서술과 묘사의 놀라운 조합으로 아름다운 그림이 연상되는 작품입니다. 연상되는 그림 속에서 오롯한 시심을 찾아 감동을 공유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만한 서정시를 창작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점태 시인의 시 창작 수준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하였음을 의미합니다. 기승전결의 4단 구성에 어느 한 단어 한 구절도 넘치거나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대로 한 편의 아름다운 예술일 뿐입니다. 1연의 묘사, 2연의 묘사와 비유, 3연의 묘사와 상징, 4연의 서술과 비유 등으로 이루어진 절창(絶唱)이라 하겠습니다.
시골집 같은 암자 경내에 남아 있는 낙엽 몇 장을 비구니 스님이 비질을 합니다. 그 스님과 마주치고 서로 눈인사를 나누는데, 스님의 순정한 미소가 가을하늘처럼 맑습니다. 이미 떨어진 낙엽은 스님이 비로 쓸어 담았고, 가을이 깊어 떨어질 잎도 남아있지 않아서, 스님의 대나무 빗자루에는 나뭇잎 대신 상상의 연꽃이 핀다는 발상, 이러한 시상(詩想)의 전개(展開)는 참으로 놀라운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