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움의 햇볕을 쬐고 있으면
나무가 불러다 주는
어린 날의 새 한 마리
- 「내가 살던 빈집에 앉아」 일부
양혜순 시인은 오랜만에 고향의 집을 찾았던가 봅니다. 가족은 모두 떠났지만 옛집은 남아 있습니다. 무너지다 만 헛간에 아직도 걸려있는 괭이, 호미, 쇠스랑을 보며 아련한 추억에 젖습니다. 주인이 돌보지 않아 풀이 우거진 마당가, 그곳에 있는 돌절구를 바라보는데, 아버님의 기침 소리가 환청(幻聽)으로 들립니다.
옛집에는 하루 종일 새들이 날아들며 우짖습니다. 여러 마리의 새들이 찾아오는데, 시인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새 한 마리에 집중합니다. 낡은 마루에 앉아 뜨락으로 쏟아지는 햇빛을 쬐고 있을 때, 뜨락의 나무가 추억 속의 작은 새 한 마리를 불러다 줍니다. 이 새의 원관념은 어린 시절의 시인 자신일 터입니다. 특히 〈서산에 해가 기울 때까지/ 내 마음에 색동옷을 입히고 있었다.〉에서 소환한 동심은 ‘세월’을 통해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또한 시인은 시간적 감각과 공간적 감각을 융합하여 미려한 시를 짓습니다.
#2
나무들 잠 속에서
귀 열어놓고
분홍빛 함성을 준비하다
- 「대롱을 박아 놓았다」 일부
양혜순 시인은 나무들이 ‘시간이 흐르는 소리’를 듣기 위하여 잠속에서도 귀를 열어놓고 있다가, 봄이 되면 분홍빛 꽃으로 피운다는 착상에 이릅니다. 동심 그 자체이며, 내면의 순수입니다. 봄을 기다리는 나무들이 준비한 함성은 봄의 노크에 응답합니다. 봄에 꽃이 피는 나무의 대유(代喩)로 등장한 매화나무 가지마다에서 피는 꽃을 ‘신명나는 웃음’으로 비유합니다.
매화나무의 웃음에서 매화꽃 향기가 너울너울 일어난다는 발상은 그만의 개성적인 표현입니다. 이에 더하여 봄바람이 불어오면 아지랑이처럼 몽롱한 ‘봄날의 달콤함’을 찾아내는데, ‘바람의 살갗’이라는 비유는 작품의 격조를 높입니다. 특히 〈나도 나비가 되어/ 피어나는 봄의 살 내음에/ 대롱을 박아놓았다.〉는 결미(結尾)는 비유와 상징의 정점이라 할 터입니다.
#3
나도 헌 옷을 버리듯
욕심을 버린다/
산사의 목탁 소리가
더 잘 들리는 저녁
- 「11월은」 일부
11월에 〈산은/ 모두 비워내고 있다〉고 시인은 인식합니다. 실제로 모두를 비워내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뭇잎이 지는 상황을 이렇게 생각하고 느낀 듯합니다. 나무들, 나뭇가지, 여기에 푸른 잎들로 인해 숲은 울울창창(鬱鬱蒼蒼)하였을 터이지만, 11월에는 잎이 지면서 〈말끔히 씻어낸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인의 감수성은 새로운 역설(逆說)을 찾아냅니다. 〈텅 비어 가득 찬/ 산〉은 가히 역설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나무의 잎이 지고, 파릇하던 풀들이 시든 산이 텅 비어 있지만, 텅 비어 있어서 오히려 가득 차 보인다는 역설은 시적 성취를 이룹니다. 이러한 역설은 〈나도 헌 옷을 버리듯/ 욕심〉을 버리게 되고, 욕심을 버리니 산사의 목탁소리가 더 잘 들리더라는 진술입니다. 산에 있는 나무의 잎이 지면서 푸른 하늘이 보이듯이, 자신의 욕심을 버리자 산사의 목탁소리를 경청하게 되는 이치와 절묘하게 결합합니다.
#4
양혜순 시인은 이미 첫 시집 『당신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를 발간하여 곱고 정갈한 시심을 독자들과 나눈 바 있습니다. 둘째 시집 역시 동일한 감동을 나누리라 유추합니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 그는 〈책상에 앉아/ 시집〉을 열어 평정(平定)을 구하는 것으로 보아 천생 시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책은 이 세상보다 더 시끄러울 터이지만 그의 생각은 다릅니다.
시가 사는 책 속은 큰 바다여서 푸른 물결이 세상의 시끄러움을 정화한다고 믿습니다. 그리하여 〈내 책 속에는/ 늘 평화가 살고 있다〉는 믿음으로 시 창작에 전념하는 분이 양혜순 시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