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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얼굴

너의 얼굴

  • 이충걸
  • |
  • 은행나무
  • |
  • 2024-04-15 출간
  • |
  • 420페이지
  • |
  • 130 X 205mm
  • |
  • ISBN 979116737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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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평면에 머물러 있는 나의 얼굴
사방에 입체적으로 퍼져나가는 너의 얼굴

소설은 교통사고로 시작된다. 뜻하지 않게 결정적 순간들이 운명을 순식간에 바꾸기도 한다. 그날이 그랬다. 4월인데도 스웨터를 걸쳐야 될 만큼 추운 보통의 날.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도로에서 매번 그러하듯. 오래된 차를 몰았고 비슷한 풍경에 익숙한 주행 길일 뿐이었다. 단지, 찰나의 순간에 마주 오는 트레일러가 중앙선을 넘어버렸다는 것. 마주 오는 차를 피해 핸들을 돌렸고 뒤따라오던 수많은 차들과의 충돌. 몸은 튀어올랐다가 급히 추락했다. “지옥의 하강.” 삶이 종료되어간다는 신호.

“얼굴이 지워졌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지만, 빈틈없는 사실이었다. 내 이마부터 오른쪽 눈꺼풀과 코, 턱과 입천장을 포함한 얼굴 하부 골격이 완전히 으깨졌다. 머리카락으로 숨기던 왼쪽 귀의 절반도 사라졌다.(……) 내 얼굴에서 온전한 것은 눈과 혀뿐이었다.”(p.18)

전신 깁스에 반 코마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가늠되지 않았다. 낮과 밤이 수없이 자리를 뒤바꾸었다. 진정제와 진통제들이 앞 다투어 ‘나’의 몸과 뇌를 점령한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하루를 자고 이틀을 깨 있었나? 병원 안에서의 드문드문 들리는 기계음들과 환자와 의사들이 내는 소리들만이 내가 살아 있다는 자각을 감각할 수 있게 해줄 뿐이었다. 보호자처럼 서 있는 실루엣. 딸의 남자친구인 모하. 모하가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 되었다니. 그애의 잿빛 표정. 나를 내려다보는 투명하고 앳된 열일곱 살의 표정. 모하가 거즈로 덮인 내 얼굴을 내려다본다.

“네가 보고 있는 건 내가 아니야. 내가 맞지만 나의 전부는 아니야. 내 얼굴은 아직 다 없어지지 않았어.”(p.21)

딸의 이름은 파라. 파라와 함께 앰뷸런스에 실려 갔더라면, 손이라도 맞잡을 수 있었을 텐데. 병원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줄곧 그 생각뿐이었다. 나의 몸은 조금씩 회복되어갔지만 파라의 상태는 처음과 그대로. 나아지지 않았다. 서서히 몸에서 조금씩 풀려나가는 깁스들. 이제는 팔도 움직이고 다리도 움직였다. 모하가 준 이어폰으로 음악도 들을 수 있었다. 내 몸에서 부러진 것들이 붙었고 파괴되었던 것들이 조금씩 재생되었다. 이 뻔한 섭리를 파라만 받아들지 않는 걸까. 모하의 표정으로 내 딸의 안위를 전달받는다. 아직 파라는 죽음의 문턱에 앉아 있는 걸까.

“나는 파라 손에 이마를 묻고 아이의 숨이 드나드는 소리를 들었다.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애와 같은 속도로 숨을 쉬었다. 결국 내 딸이 잠에서 깨기를 기다렸다. 내 무릎의 뿌리가 깊어서 그 자리에 붙박여 이백 살이 되도록 파라 꿈을 꾸고 싶었다.” (p.156-157)

옆구리 근육을 가져와 턱에 붙인다. 허벅지 살로 오른쪽 뺨을 만든다. 장딴지와 팔 근육도. 내 몸의 모든 부분들을 떼어와 나의 얼굴에 붙여본다. 이식한 살들은 반죽처럼 붙어 있었다. 얼굴이었지만 얼굴이 아니었다. 몸에 남은 살로 얼마나 얼굴에 이어 붙일 수 있을까. 종국엔 더 이상 떼어낼 조직이 없는 날이 올 것이다. 모하는 굳건한 보호자처럼 이 병원의 의사인 자신의 고모부를 만나보라고 권했다. 안면 이식에 대해. 성공 확률이 적은 복잡하고 어려운 수술. 영원히 얼굴 없이 살 수 있을까? 모하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없애주기 위해서라도 안면 이식이란 것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내 얼굴의 수여자가 파라라는 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저는 파라를 살리고 싶어요. 파라를 다시 보고 싶어요.”
모하의 눈이 타오르는 성냥처럼 새파래졌다.
“어머니가 파라 얼굴로 바뀐다면 저도 살아 있는 친구를 계속 볼 수 있는 거잖아요. 둘 다 사는 거잖아요.””(p.316)

젊음이, 아름다움이 노골적인 권력이 되다

딸의 얼굴을 이식받은 엄마라니. 나는 누구를 위해 이렇게 되어야만 했을까. 누굴 만족시키려고? 거울 안 얼굴은, 파라도 아닌 내가 아닌. 내 밖의 무엇일 뿐이었다. 얼굴이 사람의 전부일까. 얼굴이 바뀐다면 마음이 바뀌는 걸까. 아니 바뀔 수 있을까. 나는 파라일까 아니면 나일까? 파라가 살지 못했던, 누리지 못했던 시간과 공간을 내가 제대로 살 수는 있을까. 그렇다면 나의 삶, 나의 미래는 어찌 되는 걸까.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있는, 곧 내 어깨에 기대어 누울 것 같은 모하는? 그애는 나를 누구로 생각할까?

“우리는 더 깊이 움직였다. 나는 우리 사이의 나이차가 상쇄되었다고 상상했다. 떼지어 다니는 낯선 이들에게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감정은 나를 겨냥해 상처를 입힐 것이다.”(p.370)

목차

너의 얼굴 * 7

작가의 말 *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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