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열두 시인의 알록달록한 무늬
『나의 작은 거인에게』는 동시마중 레터링 서비스 『블랙』에 작품을 수록한 시인 가운데 12인의 동시 60편을 모아 출간된 동시 선집이다. 현재 동시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열두 시인의 개성이 잘 살아 있는 이 동시집은, 일곱 빛깔 무지개보다 더 다채로운 색으로 알록달록하다. 시인이자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의 발행인인 송선미는 해설에서 “12인이 기룬 동시에는 보살핌의 울타리 속에서 심고, 의심하고, 기다리고, 만나고, 찾아가는 어린이의 마음이 있다”고 평했다. 진심으로 어린이를 고민하는 시인들의 마음이 담긴 동시들은,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준다.
놀이,
아이들이 자라는 성장의 형식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든 놀이를 한다.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장난감으로 삼을 수 있는 아이들답게, 이 동시집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글자를 가지고 놀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글자를 하나씩 가려 보며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는 놀이도 하고(최문영, 「글자 놀이」), 실수로 나오는 오타를 글자들이 서로 자리를 바꾸는 암호놀이로 만들기도 한다(김기은, 「왙」).
사랑을 담아 아이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시인들은 곧 놀이가 가진 힘을 발견한다. 바로 아이들이 놀이를 하면서 점점 세상에 대해 알아 간다는 것이다. 덧붙이던 변명을 하나씩 빼서 진정성 있는 딱 한 마디 사과를 만들어 내고(김성은, 「말 꼬치」), 새로운 기호를 발명하던 중에 사회의 불평등한 장면을 찾아내기도 한다(방지민, 「∅」). 이처럼 놀이는 아이들의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새롭고 즐거운 순간으로 바꾸기도 하지만, 친구에게 사과하는 방법을 배우고 평등에 대해 생각해 보는 성장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상상,
나와 타인을 안아 주는 힘
송선미는 해설에서 “상상과 공상”이 “어린이의 형식”이라고 설명한다. 상상의 세계에서는 안 되는 것이 없기에, 아이들은 상상의 세계에서 사물의 목소리를 듣고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문에서 아이들이 장난을 칠 때, 회전문은 스스로 “아이들의 유쾌한 타임머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김영경, 「회전문」). 가을에 익은 사과가 떨어지는 자연스러운 일도 풀벌레와 사과의 대화가 끼어들면 흥미로운 사건으로 거듭난다(온선영, 「가을이 오면」). 어른들 눈에 당연하게 보이는 사물들도 아이들은 상상력을 돋보기처럼 들이대며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는 공감 능력을 깨치기도 한다. 시끄럽게 우는 매미들 중에서도 그렇지 않은 매미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은(방주현, 「다는 아닐 거야」), 자신과 조금 다른 사람이 있더라도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는 이해심을 길러 준다. 꿀벌이 사라졌다는 기사에 등장하는 양봉업자 아저씨의 기분을 상상하는 일은(조인정, 「꿀벌이 사라졌다」), 상심한 사람의 기분을 헤아리는 능력의 기초가 된다. 겁 많은 노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며 길을 조심히 지나가야 된다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현택훈, 「삼달리 여름 가게」).
상상은 또 아이들이 자신의 상처를 보듬고 용기를 내는 힘이 되기도 한다. 롤빵은 자신의 주름을 “나이테”로 만들며 실패의 흔적을 성장의 증거로 뒤바꾼다(정준호, 「롤빵」). 혼자 눈물을 흘리다가도 “눈을 꼭 감고 나를 안아” 주는 것도 상상력의 힘 덕분이다(윤정미, 「아얏」). 아이들은 “나보고 제일 예쁘다고 말하는” 거울이 있다면 “거기가 어디라도 난 갈 거”라고, “마녀처럼 방에 앉아 화만 내고 있진 않을 거”라고 선언한다(이소현, 「거울」). 실패도 딛고 일어나고,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다짐하는 과정에는 언제나 상상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누구보다 아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쏟는 시인들의 작품이 엮인 『나의 작은 거인에게』는 아이와 어른 누구나 읽기 좋은 동시집이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한 번쯤 해 봤던 상상을 보고 공감을 하거나,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재밌는 놀이에 깔깔대고 웃을 수 있다. 어른들은 어느새 자기가 잃어버린 동심을 떠올려 볼 수도 있고, 멀게만 느껴졌던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