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한 디자인과 고객을 섬세하게 고려한 질 좋은 상품으로 기분 좋은 생활을 제안하는 브랜드 무인양품. 이제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기준으로 자리매김했지만, 모기업인 유통 업체 세이유의 PB 브랜드에서 독립한 지 10년이 되던 해인 2001년, 무려 38억 엔 적자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았다.
‘이제 이 회사도 끝인가?’라는 분위기가 만연했을 즈음, 사장으로 취임한 마쓰이 타다미쓰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조직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었다.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한국어판 출간 10주년을 기념해 리커버 에디션으로 펴낸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는 무인양품의 본사인 양품계획 전 회장 마쓰이 타다미쓰가 무인양품의 경영 비밀을 직접 밝힌 최초의 책으로, 그가 사장에 취임한 2001년부터 회장으로 재직한 시기까지 조직의 구조와 풍토를 바꾸면서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소개한다.
이 책은 출간 당시 일본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하며 오랜 경제 불황 가운데 돌파구를 찾던 기업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단순히 매출 1위 기업, CEO 성공기를 내세우는 게 아니라 겸허한 태도로 위기 극복의 핵심인 사내 매뉴얼 〈무지그램〉과 〈업무기준서〉를 낱낱이 공개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
실행력이 강화된다!
저자가 밝힌 무인양품의 성공 요인은 바로 ‘구조’였다. 그는 구조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사람을 바꿔도 부진의 근본 원인이 해결되지 않아 기업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저자가 무인양품에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 사례가 있었다.
무인양품 사업부장 시절, 개점 전날 신규 매장을 방문했을 때였다. 저녁 시간이 되어 대충 매장 정리가 끝날 때쯤 다른 매장 점장이 응원차 들렀다. 그는 매장을 보더니 “무인양품답지 않다”며 진열을 다시 바꿨다. 얼마 후 또 다른 지점의 점장이 들러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매장을 정리했다. 결국 밤 12시가 지나서야 매장 진열 작업이 끝났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저자는 ‘이렇게 가면 무인양품의 미래는 없어’라는 불안감과 함께 매뉴얼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점장 개개인의 센스와 감각에 따라 매장 분위기가 들쑥날쑥한 편보다는, 어느 매장을 가더라도 고객이 ‘무인양품답다’고 느낄 만한 일관된 분위기를 구축해야 장기적으로 봤을 때 훨씬 낫다고 판단한 것. 단적으로 말해, “백 점짜리 점포 몇 곳을 만들기보다는 모든 점포가 고르게 합격점을 받는 80∼90점짜리 점포로 만드는 편”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지금 우리가 ‘무인양품’ 하면 떠오르는 매장 분위기부터 태그 카피까지 ‘무인양품다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제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나 아르바이트생도 무인양품의 이미지를 이으며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건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구조를 만든다”, “우수한 인재는 저절로 모이지 않는다, 그러니 키우는 구조를 만든다”라는 마쓰이 전 회장의 철학으로 완성된 매뉴얼 덕분이다.
“이런 것까지 매뉴얼로 만듭니까?”
무인양품을 만든 2천 페이지 매뉴얼의 비밀
어느 기업이나 ‘직원의 아이디어’, ‘고객의 클레임’에 귀 기울이는 일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무인양품에서 이것이 묻히지 않고 현실화될 수 있었던 건 마쓰이 전 회장과 무인양품 사원들이 지속적으로 구축해온 구조화의 결과다. 무인양품에는 매장에서 쓰는 2천 페이지 매뉴얼 〈무지그램〉과 본사에서 쓰는 6천 페이지 매뉴얼 〈업무기준서〉 두 가지가 있다. 이 책에서는 ‘무인양품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무지그램〉의 일부와 〈업무기준서〉의 바탕이 되는 기업 철학이 담겨 있다.
가령 우리가 익히 아는 무인양품의 상품 태그에는 ‘상품명’과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무인양품의 상품명은 “무엇보다 고객이 이해하기 쉽게 지을 것”, “화려한 문구는 사용하지 않는다. 정직한 상품을 말하는 데는 정직한 언어로”, “유행어 혹은 지나치게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표현은 피한다” 등 작은 태그 하나만으로 읽는 사람이 무인양품의 이념을 알 수 있도록 구성한다. 이외에도 개인의 센스와 경험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마네킹 코디네이터도 누구나 해볼 수 있게, 어느 매장이나 통일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도록 연출 매뉴얼과 예시 사진을 한 페이지에 담았다. 외부인들이 보기에 “이런 것까지 적습니까?”라며 놀랄 만큼 세부 사항을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매장 내의 구조, 상품 진열 방식, 스태프의 태도, 청소 방법 등의 통일되고, 이것이 무인양품의 어떤 점포를 가더라도 고객들이 같은 분위기, 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매뉴얼은 그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명확히 드러나게 작성되어야 한다.
저자는 “어떤 일이든 잘할 수 있는 법칙이 있다”며 이를 발견해 표준화한 것이 바로 매뉴얼이라고 역설한다.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고’, ‘경험과 감을 축적하고’, ‘낭비를 철저히 줄이는’ 최강의 도구가 바로 매뉴얼인 것이다. 마쓰이 전 회장은 이 책을 통해 어떤 업종,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구조를 소중히 여기는 업무 방식’은 일을 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는 걸 알려준다.
언뜻 매뉴얼이 있으면 ‘판에 박힌 업무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매뉴얼 때문에 업무가 늘어난다면, 그것은 옳은 매뉴얼이 아니다. 더욱이 무인양품은 한번 정한 매뉴얼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 모두가 매뉴얼 아이디어를 내가며 이를 반영해 매달 업데이트되기에 오히려 작업에 활기를 더해준다. 또한 매뉴얼의 각 항목에는 무엇을 위해 그 작업을 하는지, 즉 ‘작업의 의미와 목적’을 명시해둔다. 이는 스스로 ‘왜 일하는가, 어떻게 일하는가’를 되짚어볼 수 있는 나침반이 된다. 단지 매뉴얼을 따르는 기계가 아니라, 매순간 업무의 본질을 돌아보게 하는 지침이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