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쌓인 자신과 타인의 우주 속에서
곱씹을수록 깊은 단맛이 배어나는 페이스트리 빵처럼 스스로를 반추하다
『페이스트리 우주』의 저자 원대현 시인은 이역만리의 땅 미국에서 낮에는 학생들에게 문학과 영작문을 가르치고 밤에는 시를 쓰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이국의 삶을 시인은 매일 밤 고요히 찾아오는 고국의 낮에는 시를 쓰고 눈부신 타국의 낮에는 낯선 이방인의 얼굴로 교편을 잡는다고 스스로 묘사한다. 시집 곳곳에서 묻어나오는 고국과 그 아련했던 일상에 대한 그리움 탓인지 단순히 이국적인 단어들보다는 향토적이거나 친근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시어들이 여럿 사용되어 서정적인 문장을 이룬다.
덴턴인지 덴톤인지 발음도 어려운 이곳엔
굵은 빗줄기가 시끄럽게 창문을 두드리지만
아버지의 고향, 강원도에는 흰 눈이 쌓이도록
내렸겠지요
그 추위에 당신께서는
타다 남은 장작과 작은 불씨만 남은 옛 아궁이에
눈을 찌푸린 채
휘유 후 휘유 후
가쁘게 바람을 불어 넣고 계시겠지요
몽상처럼 눈을 감고
함께 흑염소에게 아카시아 잎을 먹이고
함께 햇감자를 한 아름이나 캐던
어릴 적처럼,
낡은 간이 의자 하나 대고 당신 곁에 앉아
슬그머니 새 장작 하나와
퇴색해 가는 추억까지 밀어 넣어 봅니다
순식간에 옮겨붙은 불꽃으로
아른거리는 눈동자에 맺히는 것은
- 「강원도」 중에서
감성적이고 친근한 시어와 체험적인 심상을 통하여 시인은 고국의 오랜 향취, 추억, 혹은 과거를 자극한다. 특히 첫 장, ‘한 겹: 처음엔 무심한 듯 그리움으로 반죽을’에는 그리움이라는 주제가 선명하게 관통한다. 「강원도」에서 그는 아버지와의 그리운 순간을 오버랩하듯 떠올리곤 구체적이며 감각적으로 사고의 흐름을 묘사해 나간다. 이처럼 어린 시절의 추억, 가족, 또 사물에 대한 창의적인 사유 등 다양한 소재들이 잘 채색된 수채화처럼 그려져 있다. 특히 두 번째 장부터는 단순히 고국에 대한 그리움뿐만 아니라 타국에서 느끼는 존재적 쓸쓸함, 관계에 대한 애착과 두려움, 성장과 갈등 등 복합적인 감정도 느껴진다.
한입 베어 물면 달콤함이 겹겹이 퍼지는 페이스트리 빵처럼 저자는 자신과 타인이라는 우주를 계속해서 깨물어 가며 되새기고 있다. 스스로를 탐색하는 지속적인 노력은 그가 그리운 지난날을 단순히 반추하는 것을 넘어서서 주변의 타인들을 차분히 인식하고 성실히 관계하며 성장해 가는 사람임을 정의한다.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과 쓸쓸함으로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순간 달콤하고 따듯한 페이스트리 빵 같은 이 시집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