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시 세계를 형성하는 또 하나의 줄기는 ‘나’와 ‘타자’를 향한 사랑이다. “내게 박힌 못들이 탱탱 녹슬어갈 즈음 나도 어디에서 불타 저렇게 동그라미를 만들 수 있을까?”(「사리(舍利)」)라는 화자의 목소리에는 혹한의 세상에서 “시린 손발들을 녹여주는” “안은 따뜻하고 밖은 추운 동그라미”를 꿈꾸는 시인의 속 깊은 인간애가 고스란히 스며 있다. 시집 『살아 있는 것은 다 아파요』를 읽는 독자들은, 아픈 당신 대신 아프고 싶은 마음으로 ‘저물어가는 당신’ 밖을 서성이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세상의 어두운 골목마다 환한 가로등처럼 켜지는 점등의 순간을 마주치게 될 것이다.
강산이 세 번 바뀔 30년 만에 첫 시집을 선보이는 김성오 시인은 시집 첫머리에 쓴 「시인의 말」에서 “그러니까, 한 40년 넘게 시를 써온 결과, 끝까지 살아남은 시가 100여 편 정도, 너무 많은 편수가 살아남았다. 내 시에 엄격하지 못했음의 방증일 것이다. 자신의 시에 대한 객관화에 나는 아직 미숙한 것일까? 내놓아 부끄럽지 않을 시가 어디 그리 쉽던가, 시에 올인한 생활이었다 해도 결과물로는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 이렇게 시집을 낸다는 것이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도 아닌 것을 시라고 내놓는, 그런 추한 꼴이 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라는 글을 남긴 것처럼 자신의 시에 대해 완벽하려는 결백이나 염결성이 있는 듯하다.
이런 김성오 시인은 해설(解說) 대신 1999년 시전문 월간지 『현대시학』에 소시집 특집을 할 때 자신의 시와 시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쓴 시화(詩話)를 실었다. 그 일부를 옮겨본다. “하여간에, 나는 지금 시라는 이름의 산을 등반하고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여기는 산의 어디쯤일까? 그러나 나는 알지 못한다. 가르쳐줄, 물어볼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애당초 이 산의 지도는 존재하지도 않고…. 이렇게 자신이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채 나는 지금 이 산 속에 있다. 이 산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까맣게 모르는 정상을 향해 한사코 오르고 있는 것이다. 오르다 도중의 한 봉우리에 이를 때마다. ‘또 속았군! 역시 한 고개에 지나지 않는군!’ 탄식하며, 이러한 고개들이 모여 산의 지고한 정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자위하며, 더 오를 것인가 내려갈 것인가를 놓고 잠시 생각하다가 분명 다시 또 오르는 것이다. 더 높은 봉우리를 향하여 기진맥진 기어오르는 것이다. 산골을 따라 산꼭대기로 피어오르는 저 산안개처럼 그렇게 운명처럼….”
김성오의 시집 『살아 있는 것은 다 아파요』에 대해 오랜 친구인 최영규 시인은 “김성오 시인은 어린 나이에 고향인 여수 앞바다를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손때 묻혀서는 안 될 기억을 안고 사는 시인이다. ‘폭풍이 쓸고 간 바닷가에/ 오후의 지친 파도가 밀려와 쉴 즈음/ 수제선 모래밭엔/ 어디서 떠밀려온 공산품들이/ 두런두런 고향을 이야기하고 있었다.’(「타향」 전문) ‘몹시 추운 겨울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 바다는 나에게/ 목도리 하나 만들어주었습니다./ 햇빛이 잔뜩 수놓아져서/ 누가 보아도/ 희망이라고 금방 알 수 있는/ 그런 목도리였습니다./ 새파랗게 얼어붙은 하늘이/ 부러운 듯 쳐다보고 있었습니다.’(「오동도」 전문) 아물지 못하는 그 기억을 이렇게 시(詩)로 변용시켜 쏟아내어야만 버텨낼 수 있는 시인”이라고 정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