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에게 선물이 된 만돈이와 아이들 만세와 돼지 저금통은 무인 가게에서 우연히 만났다. 눈을 유혹하는 재미난 장난감과 맛있는 간식들 사이에 푹 빠져 있을 때, 만세의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배고파, 배고파.” 돼지 저금통이 밥 달라고 내는 소리였다. 이쯤 되면 우연이라기보다 돼지 저금통이 만세를 선택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돼지 저금통은 열흘만 키워 주면 그 뒤로 자기는 하늘을 나는 돼지가 된다고 했다. 어릴 적 놀이동산에서 풍선을 샀다가 놓치고 속상해했던 기억 때문에 만세는 잠시 망설였지만, 어쨌거나 돼지 저금통은 만세네 집에서 열흘 동안 기거하게 되었다. 마치 먹을 걸 맡겨 놓은 것처럼 시시때때로 배고프다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저금통이었지만, 아이들 눈에 제법 귀엽긴 했던 모양이다. 깍쟁이 만아까지 나서서 자기들 이름의 앞 글자를 따 ‘만돈이’라는 이름까지 지어 준 걸 보면. 그리고 어쩌면 처음부터 만세는 하늘을 날고 싶다는 만돈이의 꿈을 이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늘로 날아가 버린 풍선을 기억하고, 재개발 때문에 정든 친구들과 집을 떠나 온 애틋함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어린이니까. 조건 없이 만돈이에게 동전을 먹여 주고, 그 동전을 모으려고 착한 일을 찾아서 하는 만세와 만아는 분명 만돈이에게 선물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런데 자기의 꿈을 아이들에게 투영시키고,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만세네 가족이 소중한 시간을 함께할 수 있게 만들어 준 만돈이야말로 멋진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현실 남매, 목적 달성을 위해 뭉치다! 피아노 학원이 끝나고 자기를 데리러 온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오빠라는 사실을 알자 만아는 입을 삐죽거린다. 집까지 나란히 걸어가지도 않는다. 손 붙잡고 가기를 바란 건 아니지만 픽 하고 웃음부터 났다. 흔하디흔한 남매의 단상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런 두 아이가 만돈이 일이라면 끔찍하다. 당장 눈앞에서 배고프다고 외쳐 대니 동전을 안 먹일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만돈이 입에 들어갈 동전만큼은 내 손으로 꼭 벌겠다는 자세가 분명했다. 자녀의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부모님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평소 같으면 서로 잘못을 일러바치기 바빴을 텐데, 착한 일을 하고 용돈을 받아야 하니 아주 선량한 오빠와 동생이 되었다. 게다가 어른도 도와주기 어렵다는 두발자전거 마스터에 도전한 남매! 넘어지고 다친다고 울기 없기, 못한다고 화내고 구박하기 없기를 단단히 약속하고 집을 나섰지만 약속은 어디까지나 약속일 뿐. 윽박지르는 목소리와 앙칼진 대답이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곧 마음을 가라앉힌다. 만아가 오빠 덕에 두발자전거를 마스터하면 용돈을 받을 수 있고, 만돈이를 배불리 먹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단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빠가 자기에게 그랬듯, 만세도 동생 만아에게 든든한 오빠가 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온 식구가 두발자전거를 타고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자 미소가 지어졌을 것이다. 아무튼 남매의 돈 모으기 대작전이 갸륵하다.
◎ 짝이 되는 동무, 반려 우리는 언젠가부터 반려동물, 반려식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반려’의 의미가 ‘짝이 되는 동무’이고 보니 이 단어와 나란히 쓰이는 무엇은 그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가 된다. 만세와 만아에게 만돈이는 어떤 존재였을까? 아마 처음에는 그저 신기한 장난감 정도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아이는 만돈이의 보호자이기를 자처하는 모습이었고, 때로 만돈이에게 의지하기도 했다. 열흘이라는 시간 동안 셋은 서로에게 점점 ‘반려’가 되어 갔던 셈이다. 본문의 문장 속에서도 아이들의 마음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앞에서는 만돈이를 ‘가져오(가)다’로 표현하지만 뒤에 가서는 ‘데려가다’로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가게에서 돈 주고 사 온 한낱 돼지 저금통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반려이고, 가족으로 받아들여진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더불어 이 느낌을 이어받아 동화의 마지막 문장이 아주 간략하고 함축적인 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만세가 만돈이를 향해 외치는 한마디인데, 만돈이에게 자신과 같은 백 씨 성을 붙여 불러 주었다. 그리고 만돈이의 꿈과 만세 가족의 희망이 한데 어우러져 날아오르는 기분까지 들었다. “날아라, 백만돈!” 만돈이는 지금쯤 어디를 날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