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설 엿보기
한혜영 시조집 『뒷모습에 잠깐 빠졌을 뿐입니다』는 간결한 언어로 삶과 죽음의 사유를 정제해 나간다. 시조의 형식이 지닌 규율은 삶의 제약을 상징하는 듯하지만, 삶이라는 것이 제약에 순응하며 억압된 양태에 머물러 있지 않듯 한혜영 시인의 시는 주어진 조건을 변주하여 그 안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축조함으로써 미학적 질감을 형성해 낸다. 이는 바로 보이는 앞이 아닌 뒤를 향한 시인의 시적 응시 태도에 기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표제에 언급된 ‘뒷모습’이라는 시어는 시집을 통틀어, 여는 시 「목련」에 단 한 번 등장한다. 그럼에도 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결정적 시계(視界)로 작용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대상을 마주함에 우선하는 것으로 ‘앞’을 상정한다. 그것은 화려하고 긍정적이며 진보적인 방향을 가리키는 기재로 상상된다. 하지만 ‘앞’은 대상이 나에게 보여주고자 한 바를 표상하고 있기에 그 너머를 은폐한다. 우리는 다른 존재에게 자신을 드러내야 할 때 ‘앞’이라고 생각하는 바를 꾸며 보여준다. 이는 어쩌면 보고자 하는 것을 보여주는 태도이며, 보고 싶은 것을 보려는 태도와 결부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앞’은 역설적이게도 존재의 본질을 은폐하며 진실을 거세하고 남은 자투리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뒤’는 부정적이고 수동적이며 감춰진 무엇을 의미한다. 그 안에는 더러움, 추악함, 부끄러움, 욕망, 거짓 등의 것들이 있다고 상상된다. 앞에 내놓을 수 없는 것들이 그 안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뒤’를 통해 존재의 진실에 닿을 수 있다는 걸 안다. 화려하게 꾸밀 수 있는 ‘앞’과는 달리 ‘뒤’는 은폐될지언정 완벽하게 삭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존재의 본질에 닿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그것이 보여주고자 하는 ‘앞’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뒷모습’을 응시하는 태도이다. 억압하고 억눌러 놓은 ‘뒤’를 향한 접근이야말로 ‘나’가 ‘너’와 함께하는 윤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때의 ‘뒤’ 또는 ‘뒷모습’을 향한 응시가 꼭 타인을 향하는 것만은 아니다. 타인 혹은 타자의 뒷모습을 인식하기 전에 ‘나’의 뒤를 살피는 태도도 윤리적 수행의 출발이 된다. 한혜영 시인이 이번 시집을 통해 응시하는 “뒷모습”은 타자와 세계의 뒷모습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시적 주체의 뒷모습이자 시인이 전유하고자 하는 경험적 시간의 총체이기도 하다.
「목련」에서 화자는 “목련”의 “뒷모습을 잠깐 보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목련은 “시구”라는 시어를 통해 화자가 무엇인가를 던지고 있으며, 그것이 “포물선을 그리며” “계절의 담장”을 넘어가 버렸다는 것을 드러낸다. “마지막/꽃 한 송이”도 떠난 지금, 화자는 “어떤 청춘이/공을 받아 애인에게 줬을까” 묻는다. 그리하여 목련은 공이 되고 다른 청춘이 받아 애인에게 넘겨줄 수 있는 그 무엇이 된다. 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청춘”이라는 시어에 주목해 보면, 목련은 화자가 지녔으나 이제는 계절의 뒤안길로 넘긴 시절, 즉 청춘의 시간이라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시적 화자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목련이 지듯, 청춘(靑春), 푸른 봄을, 나아가 꽃이 피는 모든 계절을 경험하고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나이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때 잠깐 본 뒷모습은 결국 화자가 경험한 시간의 흔적이자 그동안 무시하거나 은폐했던 삶의 이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화려했던 청춘을 보낸, 그 결여의 화자는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그것은 슬픔의 정동이 되어 존재를 잠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은 “슬픔이 내게로 오면 묻지 않고 젖을 거”(「불문율」)라고 말한다. 부정적 감정을 거부하지 않고 그것을 수용하여 사유하며 자기화하고자 한다. 결여가 야기하는 그 모든 것을 기꺼이 포용함으로써 존재를 부정하거나 그에 잠식되지 않고 자신의 기억으로 전이하여 삶의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 이병국(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