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날갯짓을 멈추면 추락한다, 마법이 된 생명력- 문혜영 시집 『숨결』 -
김태균(시인)
문혜영 시인의 숨결을 따라 들어가며,
평온을 유지하는 비법, 여유
문혜영 작가의 시집 『숨결』은, 그가 세 번째 암 투병을 겪으며 탈고한 원고다. 고통의 시간을 발효시켜 얻은 그의 숨결은 담담하고 여유로워서 ‘경이로움’ 그 자체다.
평소에 마주친 작가의 인상은 늘 평온을 유지하며 해맑은 웃음을 보여서 전혀 고통에 시달리며 살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가 걸어온 삶의 내력, 특히 투병의 역사를 알고 나면, 그런 고요함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 그의 내면세계가 자못 궁금해진다.
생명을 통째로 삼켜버릴 듯한
맹수의 숨결,
그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수년째 마주하고 있다.
그 두려움으로 때론 단단한 얼음이 되고
그 고통으로 때론 하얗게 재가 되지만
그 무지함 앞에선 늘 헐벗은 알몸이 된다.
- 시인의 말, 부분 -
시인의 말에서 언급한 대로 분명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며 써냈으련만, 그의 언어는 따뜻한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맹수의 숨결로 타격받은 신음과 불편을 느끼게 하는 어두움조차 다 걸러내어 여과된 언어들로 직조된 결이 고운 비단 같다. 그의 시에는 아픔을 포근히 감싸는 배려와 성찰, 온화함이 느껴진다. 이러한 여유는 아픔조차 품을 수 있는 작가의 성정에서 나오는 것 같다.
이 무더위에 에어컨 고장이다
배관이 다 삭았다더니
일주일만 기다리란다
여기저기 고장 난 내 몸은
기약 없는 수리 공사 중
완공일은 신만이 아시겠지
그런데 숨 쉬는 리듬 따라
헤실헤실 웃음이 난다, 그냥
이런 내가 난 너무 좋다
〈웃음이 나네, 그냥〉 전문
단단함과 유연함
4기 암 진단을 받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절망과 고통에 시달렸을 텐데, 매 순간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며 아기처럼 순수하게 웃을 수 있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달관의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비가 바람을 만나니
자작나무가 춤춘다.
여린 허리 낭창낭창
감출 줄 모른다, 아직 어려서
세월을 좀 더 살아
허리 굵어진 소나무는
까딱도 하지 않는데
이끼 끼도록 산 나는
흠뻑 젖어
자작나무랑 마냥 즐겁다
〈비가 바람을 만나〉 전문
세월을 거쳐 허리가 굵어진 소나무는 웬만한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는다. 반면, 작가는 이끼가 끼도록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성품인지 혹은 사유를 통해 얻은 해탈인지, 유연하게 흔들리며 비바람을 즐기는 모습이다. 그의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는 해맑은 미소는 이러한 유연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린 자작나무처럼 허리를 낭창거리며 힘든 비바람의 세월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세월의 굵은 나이테가 씨앗으로 자리 잡아 유연함 속에 단단함이 시마다 깊이 느껴진다.
두려움이 두려움을 달래다
4기입니다, 선언에
안개 저편으로 밀어낸
절망이
해일로 덮쳐 왔다
이번 협곡은 얼마나 험난할지
모든 걸 기억하는 몸이
혈압 맥박 널뛰기 시키며
비상사태를 알린다.
나대지 마
괜찮아
마음이 몸을 어른다.
두려움이 두려움을 애써 달랜다.
〈나대지 마〉 전문
한 번도 겪기 어려운데 세 번째 암 진단을 십 년 만에 또 받았다면, 누구라도 평정을 잃기 십상이다. 몸은 다 기억하고 있으니 그 두려움이 온몸에 비상사태를 알린다. 그런 순간에 마음이 몸을 어르는 상황을 두려움이 두려움을 달랜다고 표현한다. 투병은 포탄이 터지는 또 다른 전쟁터다. 생사의 경계에서 두려움에 떠는 병사들의 목숨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 몸과 마음을 세상이라는 전쟁터에서 함께 살아내야 할 동지로 인식하는 작가. 그래서 시 전편에 흐르는 메시지는 사실 마음이 몸에게, 또한 몸이 마음에게 전하는 위로이며 감사의 말이기도 하다.
응시, 근원에 대한 물음
내려놓음의 끝을 보고 있다
붙들 것이 남았을 때
주먹도 쥐는 거니까
나,
아직 붙들 것이 남았을까?
〈붙들 것이 남았을까〉 부분
항암 주사의 부작용으로 탈모 증상을 겪으면서 내려놓음의 깊이를 실감하기는 쉽지 않다. 탈모를 단순한 증상으로 보지 않고, 존재의 근원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진다. 생명으로 태어나는 순간, 아기들은 주먹을 불끈 쥔다. 어린 생명도 탄생과 동시 본성으로 알고 있댜 생명으로 존재한다는 의미는 이제 쥐어야 할 게 많다는 것을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저절로 안다. 반면에 쥐어야 할 것이 남아 있지 않음을 알고 힘을 푸는 것이 영면에 드는 순서이다.
작가의 “나, 아직 붙들 것이 남았을까?" 무심한 듯 반문하는 시어가 기막히다. 생사의 본질을 그 한마디로 꿰뚫고 있다. 극도로 냉정하게 툭, 던지는 시어가 저리도록 아 프게 느껴짐도 그것이 본질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과의 교감
산새들이 잘 살아냈다고
온산 울리게 인사를 건네면
그래, 나도 잘 살아냈다 화답하려는데
눈물이 먼저 마중을 나온다.
〈희열〉 부분
곁에 있는 의료인들조차 쉽지 않게 여길 정도로 힘든 시간을 살아내고 있으니, 또 한 번의 봄을 알리는 건너편 산의 멧비둘기, 뻐꾸기 울음소리가 무심하게 들릴 리 없다. 하루하루가 기적이며 선물인 삶. 하루를 천년처럼 산다는 작가의 시간 속으로 어느새 빠져들게 된다.
독무獨舞, 자존감으로 이끌어가는 삶
뼈 없어도 굽히진 않았다
〈마른 오징어〉 부분
한평생 독무獨舞에 익숙했다.
군무群舞에선 걸핏하면 엇박자가 났다.
나 홀로 흠뻑 취해서
멀미가 나도록 추는 춤
〈환幻이어도 좋았다〉 부분
산소와 플랑크톤만 있으면
숨을 이어갈 수 있으니까
느릿느릿 헤엄치며
혼자 놀기 알맞은 강,
〈내가 사는 강〉 부분
작가의 삶이 잘 그려지는 부분이다. 혼자 넉넉하게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잘 살아가는 거라고 한다. 자존감으로 혼자의 시간을 아쉬움 없이 채울 줄 아는 작가. 외롭지만, 어디에도 굽히지 않고 느릿느릿 헤엄치며 작가 나름의 삶을 추구하며 살았음이 짐작된다. 작가의 시간은 예전에도 지금도 그렇게 흐를 것이다. 그 속에서 문학이 숨결을 보듬어주고 길을 열어주니, 그 힘든 투병에도 이력이 생기는 게 아닐까?
시는 어둠을 밀어내는 날숨
그에게 문학, 특히 시는,
어둠을 밀어내는/ 유일한 내 날숨/ 내 꽃 숨
〈꽃숨〉 부분
또한 시집을 내는 것은 절망적인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로 환생하는 일이다.
봄날엔 반딧불이로 살까/ 어두워질수록 더 반짝이는,
시집 한 권 엮으면/ 시와 시 사이로 반딧불이/
요정처럼 날아다닐 테니
〈환생〉 부분
마법이 된 삶, 날갯짓을 멈추면 추락한다는 것을 아는 작가
작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마법에 걸린 시간으로 환치換置한다.
내 인생에 마법이 걸렸다.
몸으로 겪는 게 진짜 공부라며
협곡이 연이어 찾아왔다
자나 깨나 꿈길을 헤맨다.
몽롱하게
분명 길이었을 텐데
어디까지 왔는지
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지나왔는지
텅 비어 있다
새가 날아간 허공 마냥
〈마법 같은 내 인생〉 부분
부실하게 태어나 잔병치레가 많았던 지나온 날을 생각하며 자신이 돌아봐도 암을 세 번씩 견디며 살아내는 일은 마법이 아니면 답을 찾을 수가 없다고 여겨지나 보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다. 마법을 건 것은 다른 어떤 존재가 아닌 작가 자신임을.
앞으로 얼마를 더 가야 할지
가늠할 수 없지만
수천 킬로라 해도
날갯짓을 할 것이다
〈마법에 걸린 내 인생〉 부분
작가의 투철한 생명력이 바로 마법이다. 새가 날아간 허공 마냥, 고통의 시간을 비워내고 다시 생명의 지표 따라 수천 킬로라 해도 날갯짓을 할 것임을 그는 알고 있다. 철새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먼 길을 날듯, 작가 역시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앞으로도 힘든 여정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을 것임을 그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작가의 날갯짓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다. 날갯짓을 멈추면 즉시 추락하는 새와 같이, 그의 시간은 계속해서 날갯짓을 하는 시간으로 연결된다. 비록 투병 중이라 할지라도, 멈출 핑계를 찾기보다는 매 순간을 마지막 순간처럼 최선을 다해 날갯짓하는 것, 바로 그가 마법을 가능하게 하는 이유다.
강의실에 들어가면
마지막 무대에 선
노배우가 되어
영혼을 활활 태운다
〈생은,〉 부분
그는 마치 마지막 무대에 선 노배우처럼, 매번 영혼을 태우며 강의한다. 그의 아낌없는 강의에 수강생들이 호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작가의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는 깨어 있을 때나 꿈속에서나 변함없다.
최선을 다하는 거
그거밖에 모른다, 꿈에서도
〈꿈에서도〉 부분
오늘 신경외과 진료 첫날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을지
오케이,
난 준비 되었다
〈새 신발〉 부분
뇌 MRI 검사 결과 뇌하수체 아래 또 뭔가가 있다는 통보를 받고도 작가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신경외과 첫 진료를 앞두고, 그는 새 신발을 준비한다. 앞으로의 여정이 좀 가벼워지려나 마음을 가다듬으며. “오케이, 난 준비 되었다” 스스로 다짐한다. 어떤 시간 앞에서도 당당해지려는 불굴의 정신력이다.
지독한 사랑, 자기애自己愛
지독한 운명이
지독한 사랑을 낳는다
마라토너처럼
혼자 달리는 길
뜨겁게 안아 주고
묵묵히 믿어주기로
내가 나를 응원했다
이제 반환점을 돌았을까?
그만 달리고픈
유혹도 끈질기다.
그래서 더 내려놓을 수 없는
지독한 사랑, 목이 탄다
〈지독한 사랑〉 전문
그의 정신력의 백미는 지독한 사랑이다. 생명에 대한 무한대의 책임감, 혼자 달리는 마라토너에게 보내는 뜨거운 격려, 자칫 허물어지려는 자신을 믿어주는 마음, 달리 말하면 자기애自己愛. 이십 년이면 지쳐서 그만 달리고픈 유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내려놓을 수 없는 지독한 사랑. 목이 타도록 품고 있어야 할 사랑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생명에 대한 최선의 노력, 그 힘이 작가를 오래도록 지탱해 온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우린 모두 생의 무대에서 혼자 달리는 마라토너들이다. 1등도 멋지지만, 끝까지 숨결을 가다듬으며 완주하는 이에게 더 크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문혜영 시집, 『숨결』의 해설을 마무리하며,
감명 깊은 시들을 모두 나열하지 못하고, 부득이하게 해설을 마칠 수밖에 없는 것이 아쉽다. 간결함으로 함축된 시에 너무 많은 말로 답하는 것에 대해 다소 미안함을 느낀다. 그만큼 공감하며 작가의 숨결을 느낀 시가 많아 거론하지 못함이 서운할 지경이다.
오십 후반에 시작된 암과의 인연을 이십 년째 이어 오면서, 마치 오랜 친구와의 인연처럼 암을 다독여 온 사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경이로울 뿐이다. 작가의 웃음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자신을 다스리면 그런 평온함이 배어 나올 수 있는지, 시냇물 소리처럼 풀어낸 시집이 『숨결』이다. 그야말로 작가의 숨결로 빚은 언어들이 한 권의 시집 속에서 반딧불이로 빛을 발하고 있다.
지독하리만큼 아픈 운명의 시간을 여과시키며 풀어낸 시구들이 역설적으로 아름답기까지 하니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사람과 글과 너무나 닮았다.
그러면, 문혜영을 꼭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글과 사람이 일치하는 작가, 또 한마디를 덧붙여 말하라면, 초긍정인 사람, 또 한마디를 허용해 준다면, 품은 사랑이 늘 청청하다는 것.
생명에 대한 경외심, 알지 못하는 사후에 대한 두려움을 아주 조심스럽게 전하는 시구들. 그런 중에도 사랑하는 존재들에 대한 마음 비우기, 내려놓기가 더 뭉클하게 목젖을 건드리는 이유는 작가가 품은 사랑이 유난히 깊고 크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아주 간결하고 담백한 언어로 속삭이듯 들려온다.
문혜영 작가의 시어들은 순수한 날것처럼 익숙한 단어들로 간결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짧게 함축된 시어 속에는 깊은 사유와 명상에서 우러난 달관의 경지가 담겨있다. 그는 암조차 생명 공부라며 담백한 어조로 순수하게 받아들인다. 싸움이라는 단어를 천성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문혜영 작가는 ‘이기다’라는 불빛의 단어 대신 ‘견디다’라는 물빛의 단어로 세 번째 공부도 치를 예정이라고 썼다. (말의 온도)
단어 하나를 고를 때도 긍정적이지 않으면 시어로 택하지 않는 작가. 그의 말대로 제3의 생명 공부도 무사히 치르고 어둠의 동굴(곰의 시간)에서 어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문혜영을 작가라고 칭함은,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수필가로서의 지평을 넘어, 삶과 죽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통해 인간 정신의 깊이와 폭을 탐구하는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두루 갖추고 있는 시인이며 수필가이기 때문이다.
문혜영의 첫 번째 시집, 『겁 없이 찬란했던 날들』에 이어 두 번째 시집 『숨결』은 단순한 서정을 넘어,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색과 성찰을 담은 문학적 업적으로 평가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무엇이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오늘의 ‘문혜영 작가’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이 시집을 읽으며 조금은 답을 얻은 기쁨이 있다.
모든 독자에게 일독을 권하면서, 특히 아픔을 견디며 홀로 달리는 이들에겐 큰 선물이 되리라, 감히 말할 수 있다. 문혜영 작가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삶과 죽음에 대해, 그리고 인간 정신의 깊이에 대해 더 깊이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