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가야 할 길을 좇아, 자유에 이르는 모험
손오공이 요마와의 고된 싸움을 끝내고 깨달음을 얻는 막바지에는 손오공의 머리에 씌워놓은 긴고아도 사라진다. 이는 자유롭게 행동하면서도 타인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201쪽)
이 책에서 저자는 『서유기』를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 서로 다른 두 대상을 짝지어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자유와 구속은 이 책이 주목하는 『서유기』의 핵심 주제다. 『서유기』의 주인공인 손오공은 자유와 구속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며 모험을 이어나간다. 손오공 일행을 가로막는 요마들 역시, 다수가 ‘죽지도 않고 하늘에서 영원히 시종으로 사느니 자유를 찾아 지상에서 살겠다’라며 도망쳐 내려온 이들이었다.
화과산 꼭대기의 신기한 바윗돌에서 태어난 돌 원숭이 손오공은 72가지 술법에 통달한 뒤 세계 곳곳을 들쑤시면서 소란을 피운다. 가령 용궁에 가서는 ‘마음대로 길이를 늘였다 줄일 수 있는 몽둥이’ 여의봉을 손에 넣는가 하면, 저승을 뒤집어놓고는 모두의 타고난 수명이 적힌 생사부에서 자신은 물론 의형제들의 이름을 지워 불사의 몸이 된다. 이렇듯 거리낄 것 없이 자유롭게 활개 치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던 손오공이지만,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 결국 석가여래에게 굴복하고 모험에 합류하게 된다. 더구나 금테 긴고아를 머리에 쓰게 되면서 제멋대로 행동할 때마다 삼장법사에게 제압당한다(때로는 삼장법사의 오해 탓에 손오공이 긴고아로 고통받는 억울한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저자 이경덕은 여의봉이 자유를, 긴고아가 구속을 상징하며, 특히 긴고아는 인간의 문화화 과정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인간의 도리’를 배워나간다. 그렇다면 모험 끝에 ‘깨달은 자’가 된 손오공이 긴고아를 벗는 장면은, 외부의 제약 없이도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는 자유의 경지에 이르렀다 해석될 가능성을 열어둔다. 이처럼 신화학자의 시선에서 『서유기』를 깊이 있게 검토함으로써 다채로운 독법을 제시하는 것 또한 이 책의 매력이다.
『삼국지』보다 먼저 읽어야 할 동양의 고전
『서유기』는 『삼국지』 『수호전』 『금병매』와 더불어 중국의 ‘4대 기서’로 꼽히는 고전이다. 각기 흥미로운 성격을 지닌 이 4대 기서 중에서, 저자는 『삼국지』보다 먼저 읽어야 할 고전으로 『서유기』를 꼽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난세에 각지에서 일어난 영웅이 사람들을 모아 나라를 세우고 온갖 병법으로 속고 속이며 각축전을 벌이는 것이 『삼국지』의 주제라면, 개인이 자아를 실현하고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룬 소설이 바로 『서유기』이기 때문이다. 『서유기』를 통해 삶의 지침을 세우고 나서, 세상으로 나아가 타인들을 마주하기를 권하는 저자의 제언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책의 「에필로그」는 모든 대중이 한자리에 모여 합장하고 염불을 외는 『서유기』의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맺는다. 여기서 ‘모든 대중’이라는 말이 가리키듯 『서유기』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우리이며, 이는 곧 『서유기』라는 모험의 끝에서 우리가 새로운 모험을 시작할 차례임을 암시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 편의 거대한 이야기 속으로 즐거운 모험을 떠나기에, 이 책은 좋은 시작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