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하고 함축적인 문장이 전하는 유년의 추억과 아름다운 연대 이야기
그림책 속에는 세 여자아이가 등장한다. 각각의 공간에 놓인 세 아이는 반투명한 종이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서로의 행동을 이어가기도 하고, 사물과 감정을 주고받기도 한다. 그림을 그린 요안나 콘세이요는 세 아이가 자신과 그의 딸, 할머니의 어린 시절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세 여성은 같은 나이의 어린아이가 되어 만난다. 실제로는 불가능하지만, 이야기 속에서는 이루어진 이 만남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세대를 잇는다. 세 아이가 만나 손을 잡는 마지막 장면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여성이 서로를 보듬어 주는 연대를 상징한다.
이제 당신은 여기 있어요.
나는 당신을 붙잡았고
당신은 나와 함께 가요.
-본문 중에서
‘나’와 ‘당신’의 세계는 연결되고, 함께 지나온 길들에는 기쁨과 피로, 인내가 놓여 있다. 긴 여정 끝에 마침내 휴식에 다다른 세 아이의 모습은 인생의 축소판을 보여 주는 듯하다. 지금껏 걸어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은 고되고 멀겠지만, 함께하는 사람이 있기에 멈추지 않고 다시 일어나 걷게 될 것이다.
16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풍부한 일러스트가 녹아 있는 반면, 글은 길 위의 흰 자갈처럼 알알이 떼어져 천천히 흘러간다. 섬세하고 시적인 단어의 나열은 또 다른 단어를 연상하고, 일러스트와 함께 조화롭게 녹아든다. 작품을 넘어서 책을 읽는 독자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두 작가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서로를 설명하는 도구로서 책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독자가 책을 읽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기를 바란다.
작가에게 ‘당신’이 자신이자 자신의 딸이자 할머니이듯, ‘당신’은 누구나 될 수 있다. 이미 오래전 우리 곁을 떠나간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림책은 ‘당신’이 늘 여기 있으며, 언제나 우리와 함께한다고 말한다. 작가가 전한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통해 책을 읽는 독자 역시 각자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 확장된 책 읽기를 경험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베일을 벗듯 드러나는 정교하고 섬세한 일러스트
반투명한 트레이싱 페이퍼를 통해 이미지는 끊임없이 중첩된다.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장면은 푸른 나무들이다. 여러 장으로 이어지는 나무의 이미지는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숲을 연상시킨다. 그 페이지 사이사이 아이의 작은 신발과 옷 일러스트가 놓이고, 그것들을 갖춰 입은 여자아이가 등장한다.
그림을 그린 요안나 콘세이요는 회화와 판화 등 다양한 드로잉을 넘나드는 일러스트레이터이며, 『당신은 여기 있어요』에서는 연필과 색연필의 조합으로 섬세한 질감의 일러스트를 완성했다. 콘세이요는 배경으로 등장하는 자연의 모습들을 자신의 유년 시절에서 찾아 그렸다고 했다. 나무, 꽃, 동물들은 모두 실재하는 것에서 영감을 받았다. 작가가 유년 시절에 보았을 자연의 이미지와 등장인물이 끊임없이 겹쳐지며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한 여자아이가 떨어트린 작은 구슬은 다음 장에서 다른 소녀가 입은 옷의 단추가 되며 변주된다. 하나의 그림이 또 다른 그림을 불러오고, 독자를 모든 페이지에 머물게 한다. 한편으로는 이미지의 확장도 보여 준다. 풀잎이 모여 숲을 이루고 꽃잎이 모여 활짝 피어나는 꽃이 되는 연출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세 여성의 초상화는 콘세이요의 할머니, 콘세이요 자신, 그리고 그의 딸이다. 실존 인물의 이미지를 그림책 속에서 등장시켜, 이들의 삶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