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을 001 개정판
경주 GYEONGJU.
2019년 11월 발행한 〈고을〉 1호 ‘경주’ 편의 개정판을 출간합니다.
개정판은 기존 원고와 새롭게 취재한 원고를 함께 엮었습니다. 2019년에 작성된 원고의 경우, 개정판 출간일인 2024년 3월 기준에 맞추어 메뉴, 가격, 운영 시간, 주소, 시점 등을 수정했습니다. 경주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 이들, 그리고 새롭게 터를 잡은 이들을 통해 경주의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경주에는 높은 건물이 없습니다. 고개를 조금만 들어도 푸르른 하늘을 마주할 수 있고, ‘자연 박물관’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문화재들이 곳곳에 펼쳐져 있지요. 그 어떤 도시보다 엄격한 고도 제한으로 지켜낸 경관입니다(2020년 경주 지역 주민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고도 제한이 완화되었습니다). 경주의 아름다운 경관은 이곳에 머무는 모든 이가 일궈온 유서 깊은 역사의 산실입니다.
천년 고도千年古都로 잘 알려진 경주는 기원전 57년에 건국되어 992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습니다. 고려 태조가 다스리던 935년에 ‘경주’로 지명이 바뀐 이래 지금까지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도 불리지요.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대’로 알려진 첨성대, 경주의 분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대릉원은 주변이 시시각각 변하는 동안에도 그 중심을 지켜왔습니다. 생활 반경 안에 다양한 문화 유적지가 자리해 언제든 걸어서 갈 수 있는 경주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도시입니다.
이처럼 전통 문화유산의 보고로서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경주는 경상북도 남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태백산맥의 하단부에 위치한 침식분지 지형으로, 주변보다 평야가 낮은 도시입니다. 낮은 산맥이 둘러싸고 있는 경주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비옥한 토질로 농·축·수산업이 골고루 발달했습니다. 안강, 강동, 천북면 등 평야 일대에서는 신선한 사과를 재배하고, 건천읍을 중심으로 생산하는 버섯은 전국 생산량의 24.6%를 차지할 만큼 뛰어난 품질을 자랑합니다. 특히 돼지, 한우, 젖소를 활발히 사육하는데, 한우의 생산 규모는 국내 3위를 차지해 전국 최대 송아지 생산 기반지로 꼽힙니다. 산나물, 밤, 호두, 대추, 도토리, 산딸기 등의 임산물부터 시내 유일한 어항인 감포에서 생산하는 수산물까지. 없는 것이 없는 경주는 특별하다기보다 풍요로워서 더욱 빛나는 도시입니다.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문화 유적지를 곁에 두고, 바야흐로 경주에는 다채로운 색채가 더해지며 생동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경주에서 나고 자란 이들과 여행객이었다가 경주의 모습에 반해 터를 잡은 젊은 세대가 하나둘 모여 새로운 문화를 이끄는 것이죠. 수천 년 역사를 둘러싼 활기 가득 찬 공간, 묘하게 어울리는 조화로움은 넋을 놓고 바라보게 합니다. 더딘 듯하나 저마다의 속도로 찬란하고 느긋하게 시간이 흐르는 도시가 바로 천년 고도, 경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