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뒤 청소년들에게
집필하는 순간 가장 즐거웠다. 책을 쓰며, 읽으며 알게 된 건, 책이 가장 좋은 선생님이자, 친구이자, 애인이라는 거였다. 삶 을 살 때는 외로웠지만, 책을 읽고 쓰는 순간만큼은 외롭지 않 았다. 글을 쓴다는 건, 그냥 그 삶을 살아내는 것 같다. 작가가 되기 가장 좋은 때는 마음에 쓰고 싶은 이야기가 차오를 때다. 자다가도 이야기만 떠올랐고,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있으면서 1 년간 900편 이상의 영화를 봤다. 하루에 3편의 최신 영화를 보 고, 수많은 책을 읽으며, 이야기 공부에 심취하게 되었다. 이 책 을 쓰면서 나의 청소년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 안에 뭔 가 멋있어 보이고 싶고, 주목받고 싶었던 청소년 한 명이 있었 다. 현실에서는 항상 누군가의 보조로 살고 있었다. 나의 청소 년 시절은 춘향이를 꿈꾸는 향단이었다. 항상 주목받고, 인기 있고 싶었지만, 춘향이의 옆에서 그 정도 의 관심과 인기를 받았었다. 성인이 된 후의 나의 삶도 별반 다 를 게 없었다. 유명하고, 중요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조교, 보조 자를 하고 있었다. 청소년 시절의 희망 사항이 해소되지 않았었 다. 잘 아는 감독님이 말해주셨다. “남을 위해 살면 넌 평생 누 군가의 노예야.”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누굴 돕기보다 내 안 에 들어가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하기로 했다. 내 청소년 마 음 안에는 항상 소외되고 왕따당하던 청소년 친구들이 있었고, 그 이야기를 세상에 말하고 싶었다. 원하는 주인공으로서의 삶 이었다. 글을 쓰는 순간, 가장 살아 있었다. 한 글자, 한 단어, 한 문장씩 쓴 것이 원고지 1,000장이 넘었다. 정말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다. 내 속에 아픈 청소년 시절을 통해 10,000여명의 청소 년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나의 아픔과 청소년 아이들의 아픔을 다시 글을 통해 대면하 면서 난 최전선에서 싸우는 병사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패배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대에는 꿈을 꾸고, 20대에는 준비 해서, 30대에는 영향력을 발하자.’ 스무 살에 꽂혔던 말이다. 10 대에는 꿈만 꿔도 된다. 20대에 준비하며 30대가 되었다. 영향 력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냥 그 시기를 즐겁게 잘 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0대 시절의 하루 연습은 20대 시절의 이틀과 같고, 30대 시절의 며칠과도 같다.’ 10대는 뼈와 근육이 다 성장하지 않았고, 말랑말랑한 상태이 므로 전력을 다해 연습하고 훈련하는 건, 몸과 마음이 이미 굳 어버린 후의 훈련과 비교할 수 없다. 이 글을 쓰면서 사고를 치 는 건 아닌지 조심스러웠다. 청소년의 문제들을 밝히는 것을 불 편해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바꿔 먹 었다. 사고 치는 작가가 되자고. 작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 다. 할 수 없는 이야기도 하고, 사고도 좀 치는. 그게 나와 더 맞 는 길인 것 같다. 청소년을 감동시키고 그들 마음에 불을 지르 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필력이 열정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청 소년을 위해 국가와 사회가 나서기만을 바라는 게 아니라, 그 냥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동안 만난 청소년의 이야기를 하는 것뿐이었다. 글을 쓴다 는 건,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오르는 것과 같았다. 글을 쓰 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자동차로 오르는 게 아니 어서 버겁기도 했다. 자전거가 고장나기도 했고, 자전거밖에 탈 수 없는 나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혼자 자전거를 타며 음악 을 들을 수도 있었고, 주변 경치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아팠던 청소년 시절에 나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 마음을 털어놓았다.
글을 쓰면서 나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난 강의하고, 집필할 때가 가장 나답다. 수다쟁이와 벙어리, 조증과 울증. 이 게 딱 나다. 마음 졸이고, 마감 날짜 맞춰야 하는 묘한 감정도 즐 기게 되었다. 세상에 쉬운 건 재미없다. 글을 쓰면서 나의 내면 을 보게 되었고, 이 과정을 통해서 모든 것을 용서했다. 어렵게 시작한 첫 단어. ‘용서한다’에서 ‘용서했다’로 끝나는 이야기. 나의 한계를 알 때, 좋은 작품이 나온다. 문제아는 사실 천사다. 수많은 청소년의 상황을 바라보며 사 실 난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아프고 힘든 건 청소 년 그들 자신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한 마디 였다. “문제아가 잘 산다.” 책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 몰라 도, 한 사람의 마음에 무언가는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 책을 통 해 어디에선가 홀로 울고 있는 누군가의 마음에 남아 조금이라 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글을 통해, 문제아들을 달리 봐줬으면 좋겠다. 문제아와 청 소년에 대한 또 하나의 눈, 하나의 시선, 하나의 관점을 제공하 고 싶다. 그거면 됐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문제를 일으키 는 청소년도 많지만, 문제를 안고 있되 표현하지 않고 묵묵히 견디는 아이들도 있고, 별로 문제가 없지만 어른들에게 보여주 기 위해 문제아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아이들도 있다. 행위 하는 사람은 자기 행위의 의미를 모르고, 해석하는 사람은 행동하지 않는다. 나에게 글 쓰는 행위는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게 했다. 그 해석은 100년 후의 청소년들에게 맡기고 싶다. 무한 상상. 아 직 어른 되려면 멀었다. 앞으로 100년 후의 청소년들이 내 책을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엄청난 꿈을 갖고 썼다.
100년 뒤 너희도 호 해주고, 이뻐해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