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남궁민 · 소설가 정세랑 · 문화평론가 정덕현 추천!★★★
비극의 한복판에 내던져진 이 시대의 초상
최윤석 작가의 첫 소설집 『셜록의 아류』는 시대가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비도덕적인 생각과 행위에 무감각해지는 현시대를 비판한다. 욕망하는 대상을 쉽게 취할수록, 인간은 본래 목적을 망각하고 더 큰 쾌락과 자극을 좇는 데 중독된다.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과 ‘수단의 윤리성’이 균형을 이룬다면 더없이 이상적이겠으나, 그 ‘목적’이 변질되는 순간 ‘수단’을 가리지 않게 된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시대는 ‘이미 시작된’ 비극에 내던져진다.
표제작인 「셜록의 아류」는 주인공 ‘현식’이 ‘신’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담아냈다. ‘현식’은 어렸을 적부터 ‘천재’라 불렸으나 녹록지 않은 현실에 남들과 비슷한, 평범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던 중 회사 동료들의 대화를 듣고 드라마 〈셜록〉을 알게 되며, 자신도 ‘셜록’처럼 ‘천재’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현식은 ‘셜록’처럼 타깃을 정하고, 타깃의 삶을 추리한다. 열 개의 추리 중 다섯 개가 맞으면 50점, 일곱 개면 70점을 매기며 ‘추리 리스트’가 100점이 될 때까지 반복한다. 그리고 마침내 100퍼센트를 맞혔을 때, 정작 그는 ‘신’이 아닌 ‘용의자’의 신분으로 조사실에 갇힌다. ‘그’의 내면에 잠식된 열등감을 해소하고 싶은 욕망이 앞서 끔찍한 짓을 벌인 그는 악질적인 범죄를 저지르고도 ‘정의’를 구현한 듯,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듯 뻔뻔하게 “정신 승리” 하는 인간의 어리석은 면면을 재연한다.
「얼굴」은 한 부부가 갓 태어난 아기를 처음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기를 품에 안은 부모는 새로 찾아온 생명에 경이로워하는 대신, 그들의 성형 전 얼굴과 닮은 아기의 ‘외모’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게다가 아이를 데려온 간호사는 눈코입을 떼었다 붙일 수 있는, 이른바 ‘패치형 얼굴’ 성형수술을 권하기까지 한다. 다소 비현실적이고 기괴해 보이는 이 설정은 신체를 개조하면서까지 ‘미’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인간상을 꼬집는 블랙코미디 같다.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다”라는 ‘신체발부 수지부모’가 ‘신체발부 수치쾌락’, 다시 말해 ‘모든 것은 쾌락에서 받았고 쾌락에서부터 나온다’로 변해버린 현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비극’은 「고물 영감 이야기」에서도 계속된다. 42년 동안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조 씨’는 출소 당일 그 누구보다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오히려 교도소장과 재소자들이 그의 출소를 축하해주는데, ‘조 씨’는 교도소에서 만든 자신의 ‘예술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한다. 이 소설은 고물 영감이라 불리는 ‘조 씨’가 교도소에 들어오게 된 사연을 전면에 드러내어 ‘스토리’에 초점을 맞춘 듯하지만, 그 서사 뒤편에는 비틀린 욕망에 대한 작가의 첨예한 시선이 숨겨져 있다. ‘조 씨’의 예술 세계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호의적 태도’는 다소 이질적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 괴리감을 직접적으로 노출하지 않음으로써, 어그러진 욕망이 낳을 참극을 시사한다.
「루돌프에서 만나요!」의 ‘찬실’은 크리스마스이브를 함께하기 위해 데이팅 앱 ‘루돌프’에 가입한다. 오로지 ‘루돌프’ 앱에 공개된 정보만으로 낯선 사람과의 데이트 여부를 정해야 하므로, ‘찬실’은 여러 이성의 프로필을 열람한다. 마치 물건에 대한 만족감과 불편함을 평가하듯, 각 프로필에는 별점과 데이트 후기가 남겨져 있다. ‘찬실’은 단적인 요소로 사람을 품평하는 데이팅 앱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자신 역시 데이트 상대를 고를 때엔 더 높은 별점을 가지고 긍정적인 리뷰가 많이 쓰인 사람을 선택한다. 「불로소득」의 주인공 ‘은영’과 ‘내균’은 제목 그대로 ‘불로소득’을 생의 목적으로 삼는다. ‘중고나라’에서 서로를 속이려 했다가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사기꾼임을 알아본 그들은 연인이 되고 최고의 사기 파트너가 된다. 그리고 더 편한 방법으로 땀 흘리지 않고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다. 한 명은 장님인 척하고 다른 한 명은 다리를 다친 척하며 구독자들의 동정심을 유발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구독자들을 만족시키려는 그들의 행동은 결국 극단적인 삶의 종장을 불러온다.
「하비삼의 왈츠」의 주인공 ‘하빈’은 할머니의 유언을 전하려 고모 ‘하비삼’을 찾아간다. ‘하빈’은 거대한 저택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며 고립된 ‘하비삼’에 연민을 느끼지만, 그녀가 저택에서 벌이는 기이한 행동을 목격한다. 그녀가 진정으로 기다리고 갈망하는 대상의 실체를 알게 된 하빈은 큰 혼란에 빠진다.
「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어느 날 커피가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세계관에서 시작된다. 줄기에 매달려 인간처럼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게 된 커피 체리 ‘커두씽’은 그의 주인 디에고에게 돈과 명예를 가져다준다. 그러나 ‘말할 수 있는’ 커피 체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자 ‘커두씽’의 희소성도 떨어져버리고 만다. 이처럼 최윤석 작가는 우리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미디어와 그것들이 초래한 처참한 시대상을 보여줌과 동시에, 흥미로운 장치를 설정해 독자들에게 사유할 거리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