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고 싶을 만큼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아니 어쩌면 일생에 수천 번, 수만 번 되뇌어 봤을지도 모를 그 말. 그건 바로,
“죽고 싶다.” … 가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쉽게 내뱉는 사람들치고 정말 죽고 싶은 사람이 또 얼마나 되겠나. 오히려 그들 대부분은 그 누구보다 (잘)살고 싶은 이들일 가능성이 더 높다.
소설 〈이상한 LP가게와 별난 손님들〉(임진평, 고희은 저)의 주인공들 역시 그렇다. 아니, 그들은 좀 다르다. 그들은 최소한 말로만 죽고 싶다고 투정부리며 관심을 바라던 이들은 아니었다. 각자의 방법으로 실행에 옮겼다는 얘기다. 비록 하나같이 미수에 그쳤지만. 그 만큼 나름의 상처가 컸던 이들이라는 얘기.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건 그들의 시도는 실패했다는 것이고 그래서 여전히 살아남았다는 거다. 물론 잘 살고 있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상한 LP가게’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들이 어느 날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서울 변두리 풍진동에 자리한 "이상한 LP가게"에서 조우하게 된 건 누가 봐도 우연으로 보였지만, 세상 모든 일들이 지나고 보면 또 그러하듯 애초에 그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건지도 몰랐다.
▶ 짐이 되는 기억? NO!
힘이 되는 추억을 만드는 이야기
비틀즈의 ‘Blackbird’란 노래가 있다.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은 그 노래만 나오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가 침을 흘리듯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고 했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던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 갑자기 정신이 명료해지면서 뜬금없이 그 노래를 들려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인의 엄마는 결국 노래를 듣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눈을 감기 전 아주 잠깐 정신이 돌아왔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인의 가족은 지금도 어머니 제삿날이면 비틀즈의 ‘Blackbird’를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고 한다. 엄마는 특히 LP를 사랑했었다고 …
Blackbird singing in the dead of night
짙은 밤, 검은 새가 노래한다.
Take these broken wings and learn to fly
부러진 날개를 가지고 나는 법을 배우기 위해.
All your life, You were only waiting for this moment to arise.
평생 동안 날아오를 이 순간만을 기다리면서.
지인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다. 한평생 지난한 삶을 살았던 엄마가 부러진 날개를 가지고 날아오르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를 … 그래서 그 노래만 들으면 지금도 조건반사처럼 눈물이 나오는 거라고.
▶ 그리고 마침내는 지구를 구하는 이야기.
한때 죽음을 떠올렸던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현실 속 지인처럼 LP판에 대한 저마다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들이 서울 변두리에 자리한 중고 LP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 이유다.
살다 보면, 우연 같지만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일들이 종종 있다. 일테면 죽음을 떠올릴 만큼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던 이들이 우연히 중고 LP가게에서 조우하고, 각자의 추억이 담긴 LP판을 매개로 살아야 할 소소한 이유들을 찾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우리네 삶. 저마다가 구해낸 각자의 삶은 선한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마침내 멸망할 뻔한 이 세상을 구해낸다.
▶ 하지만 결국 우릴 구한 건 음악이 아닐까?
〈이상한 LP가게와 별난 손님들〉은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최근에는 동물권 관련 다큐멘터리를 틈틈이 선보여온 임진평 감독과 문화기획자로 유럽 예술기행서 〈고독한 사람들의 도시〉를 펴낸 고희은 작가가 평소 공통의 관심사였던 음악을 매개로 완성한 첫 장편소설이다. 그래서인지 소설은 마치 한 편의 영화나 혹은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리듬감을 선사한다. 거기에 소설 전반에 등장하는 LP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막대한 정보량은 덤이다. 클래식과 올드 팝을 넘나드는 LP 이야기에 음악 매니아들은 아마도 반가운 선물을 받은 것처럼 흐뭇해지지 않을까.
그밖에 소설에는 10대 아이돌부터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긴 인간 군상들이 다양하게 등장해 각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쩌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발견하는 ‘나’ 혹은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인생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거라고 했다. 다행히 소설 속 인물들은 길에서 만난 인연을 받아들이며 서로의 짐을 기꺼이 나누어 진다. 덕분에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각박한 세상, 그래서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이 세상에서 소중한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