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시집에 관하여 시인과 나눈 짧은 인터뷰 내용이다.
[Q] 주제와 이야기의 방향은?
[A] 이번 시집에는 길의 이미지가 많이 담겨 있습니다. 제목부터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이지요. 개인과 사회, 과거와 현재, 지질과 역사의 단면을 길의 이미지로 치환했습니다.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사물, 사회의 이면, 세계의 표정 등을 시로 썼습니다. 길 위의 사람 이야기 중에서도 1부의 ‘맹인 안마사의 슬픔’과 ‘풍란 절벽’ ‘망고 씨의 하루’, 3부의 ‘우득 씨의 열한 시 반’ ‘방호복 화투’ ‘노숙인과 천사’ 등에 슬프고도 애틋한 삶의 풍경들이 스며 있습니다.
과거의 길과 현재의 길이 맞닿은 곳에서 ‘새로운 길’의 시작점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즐겨 활용한 것이 ‘인유(引喩)의 작시법’입니다. 만해와 백석, 정지용, 윤동주, 정병욱 등의 입과 눈빛을 빌려 다음 세대의 여정을 그려보는 작업에 공을 들였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과 ‘경전 필사’ 연작을 만날 수 있었으니,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이야기의 방향은 ‘오래된 길’에서 ‘새로운 길’ 쪽으로 가 닿습니다. 그 길의 접점에서 태어난 ‘신생의 말’이 곧 63편의 신작시이지요.
[Q] 이번 시집의 특징은?
[A] 비교적 짧은 시가 많다는 점입니다. 3~4행짜리부터 10행 안팎의 단시(短詩), 길어도 한 페이지를 넘지 않는 작품이 많습니다. 상대적으로 좀 긴 작품도 호흡이 늘어지지 않게끔 내재적 리듬을 살리는 데 애를 많이 썼지요. 서정과 서사만큼이나 중요한 게 운율이잖아요.
또 하나는 문자 이전의 소리 감각을 되살리려고 노력한 점입니다. 시어의 의미와 소리의 말맛이 둥글게 맞물릴 때 화자(話者)의 감성이 그대로 전달되지요. 시가 곧 노래이니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시를 쓰거나 퇴고하는 과정에서 몇 번씩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습니다. 손으로 다듬는 ‘문장 퇴고’와 함께 혀로 궁굴리는 ‘입말 퇴고’에 더 시간을 많이 들이는 편이죠. 낭송 무대에서 제 시를 자주 만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Q] ‘나’는 어떤 시인인가?
[A] 죽순을 닮은 시인을 꿈꿉니다. 비 그친 다음 날 대나무 숲에서 보았지요. 여기저기 싹을 밀어 올리는 죽순. 귀 기울이면 키 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마디마다 생장점이 있어 하루에 30~50㎝까지 자라니 그럴 만도 하죠. 한 달이면 어른 대나무 키가 되고, 생장이 끝난 뒤엔 더 굵어지지 않고 속을 단단하게 다집니다. 그런데, 대나무는 땅속에서 5~6년을 자란 뒤에야 순을 내밉니다. 땅속줄기가 굵을수록 죽순이 튼실합니다.
마디마다 달린 눈 가운데 죽순으로 솟는 것은 고작 10%. 그만큼 오랜 기간을 거치고 생멸의 경계를 지난 뒤에야 지상에 오릅니다. 꽃은 일생에 한 번만 피우지요. 마지막 순간에 온몸으로 개화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가 탄생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래 견딘 뿌리, 삶의 극점에서 단 한 번 피우는 꽃, 매사에 더디고 과작인 제가 특별히 신봉하는 ‘죽순의 시학’입니다.
- 「저자와의 인터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