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지금-여기’의 문제를 성찰하고 그 대안을 상상제안하기 위해 ‘지나간 미래(future past)’로서 한국 현대시 중 도시(都市)에 주목한 시, 소위 ‘도시시(urban poetry)’를 대상으로 삼아 연구한다.
그런데 왜 시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우리의 삶은 무엇인가? 삶에 관해 우리는 무엇을, 또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스스로 아는 만큼 온전히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의 ‘삶’에 관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다름 아닌 ‘언어’가 우리의 삶에 있어 근간을 이룬다고 말이다. 언어는 우리가 소통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단계까지 가기 위해서도 수많은 언어적 소통을 거쳐야 한다. 그러한 토대가 마련될지라도, 소통이 불통으로 바뀌기는 그 반대보다 훨씬 쉽기에, 우리는 언제나 원활한 소통을 지향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언어를 통해서, 그것도 ‘조탁(彫琢)한’ 언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삶 자체가 곧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이며, 우리의 언어가 곧 우리의 삶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삶이 언어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언어의 감수성을 높이는 일은 우리의 삶의 감수성을 높이는 일이며, 더 나아가 우리의 삶 전부를 드높이는 일이 된다. 높은 언어 감수성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우리가 일상적인 삶을 더 잘 느끼고 더 잘 파악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더 잘 전달할 수 있게 됨을 뜻한다. 왜? 우리의 삶이 언어를 통해 영위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시의 주제와 대상은 결국 우리의 삶에, 주변에서 겪는 사건과 사물이다. 그런 면만 보더라도 시를 읽고 쓰는 일은 우리의 삶을 읽고 성찰하고 전달하는 일이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시를 읽고 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장르의 문법상 시는 언어의 압축적 사용인 까닭이다. 의욕적이고 문제적인 시는 그러한 사용의 극단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소설이 구체적인 서사를 통해 ‘상황’을 보여준다면(상황을 허구적으로 그려낸 일종의 사고실험), 시는 구체적인 상황보다는 그에 따른 인간의 감정이나 은유나 환유 등을 통한 시적 논리(상상력)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말하자면 시는 ‘고차원적 언어 사용 양상’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 결과물로서 시를 읽는 일은 우리의 삶에 한 면모를 여실히 들여다보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한국 현대시에 국한된 담론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시를 해석하고 연구하는 작업, 즉 시에서 시작하여 시에 수렴되는 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학과 사회’라는 차원에서 더 확산된 논의를 시도하기 위한 것이다. 시적 상상력은 미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본래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제언(提言)이다. 다른 형태의 제언 중에서도 문학, 특히 시적 제언이 사실상 더 효과적인 이유는, 그것이 가진 감화력 때문이다. 따라서 시적 상상력은 지금까지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여기 수록된 글들은 교육과 취미의 현장에 매몰되어 있는 시적 상상력을 그로부터 최대한 끄집어내어 사회의 문제를 성찰하는 데 쓰고자 한 시도다. 물론 이러한 생각의 배경에는 그런 차원에서 유의미한 시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단순히 형식적 아름다움에 그치는 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고 그에 효과적인 형식을 갖춘 시들도 적지 않다. 그 한복판에 도시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시들은 여타의 담론 형태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해야 할 이유가 존재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시는 감화력을 무기로 한다. 문제를 인식하고 진단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어 감화력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책은 시를 다룸으로써 ‘우리시대 질문’이라는 타이틀에 얼마간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1부에는 “현대 도시의 공간과 시의 공간”이라는 제목하에 총 7개의 글이 있다. 여기서는 1990년대 이후의 도시시를 대상으로 삼아 ‘지금-여기’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얻는다.
〈제1장 파열된 세계의 파편 줍기: 공간과 장소의 결구(結構)로서의 시〉에서는 최근 공간과 장소에 관한 논의를 바탕으로 시적 언술의 특징을 규명하고 그 유형 중에 어떤 것이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데 적합한지 탐색하는 작업을 한다. 이러한 탐색에는 필연적으로 역사적인 검토가 필요한바, 크게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간략한 역사와 각각의 글쓰기가 주는 효과를 공간 및 건축의 경험과 연관 지음으로써 새로운 논의의 국면을 마련한다. 시와 건축의 만남은 ‘공간’이라는 공통 화두에 의해서 그 정당성을 얻는다. 이 장에서는 무엇보다 시적 논리와 실제 물리적 공간의 교통(交通)에서, 특히 파편적 글쓰기의 형태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고, 왜 그러한 형태의 글쓰기가 현재의 문제적 상황에 대안적 상상력을 제공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답하려고 한다.
〈2장 ‘홈 파인 공간’: 현대 도시와 광학적 욕망〉에서는 들뢰즈와 가타리(G. Deleuze & F. Guattari)의 개념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건축과 도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데 유효한 개념을 내놓은 바 있다. 이들은 공간을 ‘매끈한 공간(espace lisse)’과 ‘홈 파인 공간(espace strie)’으로, 그리고 그 네트워크 구조를 수목(樹木)과 리좀(rhizome)으로 나누었다. 아울러 이들은 ‘시각적/촉각적’ 대립 개념을 ‘광학적/촉지적’으로 이해하고, ‘수목적-홈 파인 공간’을 ‘시각적-광학적’ 공간에, ‘리좀적-매끈한 공간’을 ‘촉각적-촉지적’ 공간에 연결했다. 이때 ‘촉지적’이라는 것은 촉각, 시각, 청각의 요소가 함께 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이미 파인 홈을 따라 삶으로써 또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없는 ‘홈 파인 공간’으로서의 도시가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의 모습임을 부정하기는 아마 어려울 것이다. 홈 파인 공간은 일정한 기능을 하는 (들뢰즈적 의미에서의) ‘기관’이 가득 들어찬 공간을 구축하며, 따라서 ‘(규격화된) 광학적 건축’을 적극적으로 지향한다. 도시시는 이와 관련한 제반 인식을 미적 통찰을 통해 근본적으로 재고함으로써 ‘매끄러운 공간’으로서 대안적 공간을 상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
〈3장 현대 도시에서의 삶: 매체와 소통의 불가능성〉에서는 도시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동시에 문제적 상황을 야기하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는 매스미디어 중심의 소통의 특징과 한계점, 그리고 대안적 소통 방식에 관한 고찰을 담고 있다. 근대적 대도시는 19세기 부르주아의 확대와 자본주의의 극단적 실험무대로서 성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특히 현대 도시의 주체들은 자본주의적 ‘교환’으로서 모든 관계를 경험한다.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기제는 곧 ‘생산(노동 분화 및 소외)-소비’의 순환으로 말할 수 있는바, 이때 광고(commercial)는 그 과정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서 자리 잡고 있다. 화폐 경제는 생산의 합리화를 위해 노동을 분화시키고, 그럼으로써 ‘상품’을 보편화한다. ‘욕망을 충족시켜 줄 것을 약속하는’ 상품은 그러한 분화와 보편화를 가속하고 유지하기 위해 신속하고 지속적인 순환을 필요로 하는데, 여기서 획일성의 문화와 무감동의 인간이 등장하게 된다. 이 새로운 인간 유형의 탄생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지만, 지금에 있어서 그것이 우리가 고수하고 지향할 인간형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분명해졌다. 이 장은 이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시를 통해 성찰해 본다.
〈4장 ‘매끄러운 공간’의 건축-시: 촉지적 시각과 걷기의 미학〉에서는 도시 경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문명의 이기를 비판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그것이 우리의 인식과 상상력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찰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본다. 여기서는 대표적으로 지하철과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자동차 중심의 도로가 침해하는 인간의 경험과 이에 반하는 대안적 경험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찰한다. 최근 적지 않은 시인과 비평가가 주목하듯, ‘걷기’는 도시 경험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을 중요한 대안적 행위가 된다. 우리에게는 걷기를 통한 ‘촉각적 시각의 공간’이, 그리고 그 이전에 관련된 상상이 필요하다. 촉각적 시각의 공간은 ‘홈 파인 공간-광학적 공간-정주(定住)적 삶-수목적 구조-영토화’의 계열체가 ‘매끄러운 공간-촉지적 공간-유목적 삶-리좀적 구조-탈영토화’의 계열체와 대립하면서도 동시에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함께 실현되는 것과 그 양상이 같다. “촉감적 경험은 근대의 시각 이미지에서도 그 시각체계를 관통하며 구현될 수 있다. 근대의 시각 이미지 역시 촉감을 이용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 수영하는 사람이 물의 흐름을 자신의 피부로 감지하듯, 이미지의 흐름은 강화된 촉감적 감각으로서 이해하여야만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다(유하니 팔라스마).” 근대적 시각 이미지를 사용하되, 그것의 무의식을 거슬러 읽어냄으로써 촉각적 이미지로 바꿔 내는 것이 관건인 셈이다.
〈5장 관계 맺음과 소통의 토대: 인접성의 원리와 시적 전략〉은 우리가 관계를 맺음에 있어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 가족과 같은 이른바 ‘무목적적 모둠’이라는 전제로, 그러한 모둠을 이루는 관계의 면면에 ‘인접성’ 기제가 작용하고 있음을 밝히기 위해 최근 시인들의 시 텍스트를 살펴본다. 인접성은 ‘가까움’과 그 정도를 의미하며, 따라서 필연적으로 공간과 장소의 문제를 건드린다. ‘관계’에서 주로 긍정적인 것으로 언급되는 ‘사랑’, ‘관심’, ‘친(親)함’, ‘정(情)’ 등이 근본적으로 공간적인 가까움/멂의 원리가 작용하는 문제인 것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인접성은 또한 ‘연결’과 ‘접속’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그러나 인터넷과 같이 물리적 공간을 함께 점유하는 접촉이 없는 관계 맺음은 형이상학적 자아를 강화할 뿐,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도시에서의 삶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이러한 흐름에 저항하는 주체는 ‘살(flesh)’의 감각에 민감해지는데, 이는 직접 접촉을 통한 상호작용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정보량을 소통하고, 그럼으로써 감정이입과 공감, 그리고 이질성에의 직관 등이 더 잘 이루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은 더 나아가 윤리성까지도 담보하는 태도가 되기도 하기에, 결론적으로 인접성의 확보는 관계 맺음에 매우 중요한 기제로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윤리적인 관계는 어디까지나 ‘메타적인 언어적 작용’이 동반된 주체의 참여가 있을 때만이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을 놓쳐서는 곤란하다. 시는 메타적인 언어를 통해 타자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즉 절대적 타자성을 의식하게끔 만든다. 그러한 의식이 전제될 때야 비로소 타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서사’가 창안될 수 있고, 또 그럼으로써 동질성과 이질성이 공존하게 되어 상호 호혜적인 ‘함께 삶’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6장 정체성의 해체와 사회적 공동체의 탄생〉에서는 공동체 윤리를 위한 시적 상상력을 살펴본다. 사실 ‘공동체’란 ‘공동’, 혹은 ‘공통’된 것을 토대로 같은 지향점을 가진 집단을 이른다. 그러나 현대 도시에서 그러한 집단은 불가능할뿐더러 그러한 집단을 추구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다. 다만 여전히 ‘인간’ 혹은 ‘생명’을 위해 그 저변의 것, 이를테면 물리적 신체의 차원에서 공동체, 혹은 공통체를 지향할 수는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란 바로 그런 것이다. 하지만 통상 공동체는 그러한 의미로 사용되지 않고, 일종의 ‘잃어버린 대상’이자 앞으로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대안으로서 강력히 자리매김해 왔다. 이때 ‘정체성 정치’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다. 그러나 이때의 ‘정체성’은 배타성을 띠게 되는 지점에까지 이르고 만다는 것이 문제이며, 이에 따라 ‘인정’과 ‘분배’에의 요구를 내재하는 정체성에 관해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요청이 나오기도 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물론 주지하다시피 정체성 정치는 지금까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한편으로 여전히 필요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제는 정체성 정치에 입각한 폐쇄적인 공동체가 아닌, 탈정체성 정치를 향해서도 열려 있는, 이른바 ‘열린 공동체’가 필요하다. 열린 공동체의 가능성을 모색한 시 작품들을 통해 이에 관해 고찰해 본다. 아울러 〈7장 시야를 통해 눈 보기〉는 5장과 6장에 이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데 있어 아이러니에 입각한 의식적 언어가 중요하다는 전제로, 아방가르드(Avant-garde)의 시쓰기를 참조하며 도래할 사회의 논리를 실험적으로 구상해 보고자 한다.
제2부는 “현대 도시를 산책하며 사유하는 시”라는 주제로 총 7개의 장이 배치되어 있다. 각 장은 지금까지 현대시사에서 도시적 감수성으로 도시의 공간과 장소, 소통의 가능성과 공동체를 위한 윤리를 시적으로 고찰하고 노래한 7명의 시인, 즉 이상(李箱), 박인환, 구연식, 김구용, 황지우, 기형도, 그리고 김현의 시세계를 다룬다. 이들 모두는 특히 몸의 감각에 주목함으로써 각각 앞서 언급한 촉지적 시각의 한 사례를 보여준다. 이러한 시인들의 작품을 꼼꼼히 살펴봄으로써 도시의 윤리를 구상하는 데 필요한 단서를 얻고자 한다.
본문은 지금까지 여러 곳에 발표한 글을 하나로 묶어낸 것이다. 묶어내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을 수정가필하였으며,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한 글도 있다. 출처는 다음과 같다. 제1부 제1장 〈파열된 세계의 파편 줍기〉: 「삼면상(三面像)에서 건축무한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까지」(『시와세계』, 시와세계, 2015년 봄호부터 2016년 겨울호까지 5회 연재한 글을 수정). 제2장 〈‘홈 파인 공간’: 현대 도시와 광학적 욕망〉, 제3장 〈현대 도시에서의 삶: 매체와 소통의 불가능성〉, 제4장 〈‘매끄러운 공간’의 건축-시: 촉지적 시각과 걷기의 미학〉: 「1980-90년대 한국 "도시시"의 미적 비판 방법론 연구」(『국어문학』 제67집, 국어문학회, 2018) 및 「피부의 눈: 만지는 시선을 통한 도시의 윤리 - 1990년대 한국의 ‘도시시’를 중심으로」(『서강인문논총』 제58집,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20). 제4장 보론 〈촉진하는 시선의 윤리적 가능성 - 김기택의 시〉: 「견고한 벽에 난 틈, 촉진하는 시선 - 김기택의 『낫이라는 칼』에 관한 단상」(『상징학연구소』, 상징학연구소, 2023년 가을호). 제5장 〈관계 맺음과 소통의 토대: 인접성의 원리와 시적 전략〉: 「관계 원리로서의 인접성 탐구 - 최근 한국 시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인문학연구』 제59집,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20). 제6장 〈정체성의 해체와 사회적 공동체의 탄생〉: 「자본주의의 심화와 인간성의 종말을 대하는 문학의 태도 - 정체성의 해체와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브렛 닐슨 외, 『역동하는 관계와 가족커뮤니티』, 한국문화사, 2023). 제7장 〈시야를 통해 눈 보기〉: 「시야를 통해 눈 보기」(『이상』, 이상과시, 2013년 가을호부터 2015년 가을호까지 3회 연재한 글을 수정). 제2부 제1장 〈실낙원과 낙원 사이에서 - 이상〉(「이상 시에서 나타난 가족 갈등과 낙원의 논리」, 『어문논총』 제36집, 전남대학교 한국어문학연구소, 2020). 제2장 〈목마가 부유하는 도시와 끝없는 비애: 박인환〉: 「폐허를 견디기 위한 유행에의 탐닉 - 박인환 시 연구」(『한국지역문학연구』 제7권 1호, 한국지역문학회, 2018). 제3장 〈전후 도시의 불안을 치유하는 방법으로서 초현실주의: 구연식〉: 「구연식의 『검은 산호의 도시』 연구 - 초현실주의 시학 수용과 적응의 한 사례」(『우리문학연구』 제80집, 우리문학회, 2023). 제4장 〈전후 도시의 폐허를 걷는 만보객: 김구용〉: 「한국 전후시의 공간 인지 특성 연구 : 서정주, 신동문, 김구용을 중심으로」(전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6). 제5장 〈도시-사막을 방황하는 실패한 투사: 황지우〉: 「‘광주 파노라마’와 변증법적 도약의 시」(임환모 외, 『발터 벤야민과 한국문학』, 국학자료원, 2018). 제6장 〈도시의 거리, 기억할 만한 지나침: 기형도〉: 「기형도 시에 나타난 가족상과 관계성에 대한 시적 통찰」(박미선 외, 『가족주의와 가족의 경계들』, 한국문화사, 2020). 제7장 〈공동체를 넘어 사회로, 타자와 공존하기: 김현〉: 「퀴어와 새로운 글쓰기의 가능성 - 김현의 『글로리홀』을 중심으로」(『한국문학이론과비평』 제72집,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