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모든 이의 완전한 몰입을 요청한다”
─무수한 경험과 목소리를 가진 얼굴들의 이면을 폭로하기
“위대한 예술은 어쩌면 그것들을 그려내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인간과 세계의 비밀을 폭로하는 일에는 중독성이 있어서, 예술은 예술을 갱신할 뿐”
-「농부 혹은 바울드기너 씨의 수상 소감」 부분
장수진은 시인으로 등단하기 전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후 극단 골목길, 크리에이티브 바카에서 활동한 연극배우이다. 무대에서 강렬한 캐릭터와 다양한 역할에 자신을 밀어 넣어 연기해온 그의 경험은 종이라는 무대 위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 시편들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배역을 맡은 존재들의 기저를 관찰하는 시선이 있다.
「그는 프롤로그이며 에필로그이고」에서 ‘그’는 군중이자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며 구두이기도 하고 수선공이기도 하고 늙은 소년이기도 하다. 또한 “아무것도 훔치지 않고 생각에 잠기는 느린 소매치기”이다. 이 낯선 듯 익숙한 이는 “엉망이고/더럽고/사랑스럽고/자유로우며/잔혹”한 측면이 있는데, 여러 얼굴과 특징이 혼재하는 ‘그’를 두고 시인은 “인간의 모든 걸 갖추었다”고 말한다. 「소설 인간」에는 주자창, 자정을 넘긴 운동장, 싸구려 초상화가 즐비한 가을 나무 아래와 같이 대체로 무해하게 비스듬히 서 있는 ‘당신’이 등장한다. 그는 작가의 의도대로 “심드렁하고/유식하고/반발심”을 품고 움직이는 소설 속 인물이지만 엄연히 자아가 있어서 “용납할 수 없는” 이야기를 연기 하는 중에도 “인간을 모방하고/인간을 이룩하며/무수한 자를 살해하고/복잡한 자를 요약하며/만화 인간의 커다란 눈을/증오한다”. 이 시집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습 중 하나는 의사와 환자 혹은 내담자와의 대화이다. 내담자는 “신이 내게 천국을 보여준 것”이라며 자신이 본 세계에 대해 말하는데 생각해보니 “주님은 아마도 마일리지일 가능성이 있지만/나는 그녀의 기도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악몽의 연속에서 이따금 열리는 천국을 “정말 갔다 온 사람이 있”(「상담사와의 추억」)다는 내담자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지 않는가 하면 “우린 참 못생겼지/그런데/신도 참/잣같이 생겼더군 [……] 어서 일어나/집으로 가”(「아픈 사람」)라며 위로한다.
자주 언급되는 또 다른 화자는 ‘개’이다. 「겁먹은 개」에서는 비스듬히 놓인 단추 그림과 해독할 수 없는 짧은 언어가 공포에 사로잡힌 개의 심정을 대변하고 「개헤엄」에서는 “물에 던져진 개”가 “물을 껴안고 물을 할퀴고 온갖 욕설과 사랑을 퍼부으며 힘을 뺀다”.「신경」에서 ‘개’는 “인간의 구역질에 두드려 맞”는 존재로 “내가 살아 있는 한 나의 주인은/인간답게 살지 못할 것이며/인간답게 죽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악마야/나랑 놀자/우리는 무직이니까”로 시작해 직업이나 배경을 아예 포기하고 “중대하고 심오한 비극”(「악마는 시를 읽는다」)을 꿈꾸기도 한다.
이 밖에도 『순진한 삶』에는 “철없는 레지스탕스 당원”(「화해」), 주인 행세를 하지만 주인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모자(「안타까운 헛소리」), 아마추어 여성 영화감독(「침대 선생님」), 굶어 죽은 소년(「글로리아」), 농부이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예술가(「농부 혹은 바울드기너」)와 같은 가지각색의 배역이 등장한다. 그리고 시인은 그 화자들이 표현하는 다양한 모습들에 얽힌 세계의 “비밀을 폭로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즐겼다 희망 없음을
그리고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계속 썼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형벌을 실험하기
주인공의 볼품없는 몸이 훤히 드러난 그 장면에서 너는 계급과 인종에 대해 잠시 생각했지만 결국엔 파도가 아름답다고 느꼈고, 그 파도만 보게 되었다. 파 도 파 도 미 도 단순한 멜로디를 즉흥적으로 흥얼거리며 너는 주먹을 쥔 채 파도를 이끌고 가는 여인의 모습을 보았다.
-「순진한 삶」 부분
사랑과 죽음은 장수진의 시 세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이자 빼놓을 수 없는 관념이다. 특히 시인은 열렬한 사랑이 진행되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끝을 마주했을 때 “도처에서 생태계가 저물어가는 징후”(해설)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도망쳐」에서 화자는 “사랑을 멈출 수 없”고 “지옥이 쏟아”지는 것을 피할 궁리 없이 받아들이다가 다음에 배치된 시 「보호와 교육」에서 “리본에 목을 졸”리고 “속이 쪼그라지도록 뜨거운 우유를 마시며” “음악이 아닌 울음”을 토해낸다. 그럼에도 다시 희망을 꿈꾸듯 순수한 얼굴로 “성실한 삶”과 “미래를 연습”한다. “물건으로 둘러싸인 거실을 운운하는 것이 사랑이라면/저 언덕을 흘러내려도/더 무서워도 나는 좋”(「사랑은 거실의 것」)다는 고백은 마치 순진해서 용감하고 성실한 사랑의 독백처럼 들린다.
여린 마음으로 꿈꾸던 영원이 사실상 허상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죽음을 생각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죽음이 뭐지?/우리 만나, 죽어서?/사랑과 영혼?/고스트?/오 마이 러브 유어 터치!”(「단순한 공놀이」)라고 장난스럽게 떠올리는가 하면 “우리, 소설처럼 죽을 수 있겠니”(「카페 ‘편집’」) 하고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사랑의 끝에 떠오른 죽음은 ‘나’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당신’을 향한 것일 수도, ‘사랑’의 끝임을 목도한 것이거나 이 모든 것일 수도 있다. 그 무엇이든 “악의도 적의도 없이/죽을 때까지/죽일 뿐”(「매」)이다.
『순진한 삶』의 화자들이 죽음을 떠올린다고 해서 “비탄과 고통과 오욕에 절어”(「솔리스트」)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저게 그 뭐야, 고통……이라는 건가?”(「화해」)와 같은 무사태평한 태도와 혼재되어 있다. 「호시절」에서는 “우리 생에 가장 좋았던 시절은 전쟁 중이었”다고 말하고 「작별」에서는 “날아가는 새에게 뒤는 없다” “안녕, 모르는 이여”라며 고통의 시간을 추억처럼 회상한다. 좌절도 슬픔은커녕 오히려 “모두가 죽음에 고정된 채 감미로운 질병으로 존재”(「안락의자 아래 놓인 발목」)할 뿐이다. 그리고 죄수는 말라죽어가는 수감자들 틈에서 “죽음의 순서”를 기다리는 동시에 “자유를 느”(「구오의 일기」)낀다.
「낮의 소년에게서 이어지는 밤」 속 화자의 꿈은 “낮에는 소년이었다가/어스름한 밤이 오면 재규어가” 되는 것이다. 다정하고 순진한 소년과 그것을 물어 죽일 수 있는 재규어를 오가는 이 시편에는 “사바? 꼬망 사바? 위, 위, 농”이라는 시구가 등장한다. ‘괜찮아? 잘 지내? 응, 응, 아니’로 번역되는 화자의 말 속에서 시인이 “펜을 쥘 수 없게 사방으로 뒤엉킨 손가락들”(「솔리스트」)로 써 내려갔을 무수한 밤을 상상할 수 있다. 뜨거운 낮과 서늘한 밤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랑이 끝을 앞에 두고 비로소 완성되는 삶. 앞으로도 시인은 그 오롯이 “순진한 삶”을 아름다움으로 전환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