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론적 고처(高處) 지향의 의지
문현미는 존재자들이 필연적으로 사라지면서 남기는 어떤 흔적이나 자국, 잔상을 통해 삶을 완미하게 탐구하고 구축해가는 시인이다. 그의 시가 시인 스스로 삶을 탐색하고 성찰해가는 이른바 자기 확인의 속성을 띠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속성에 덧붙여 문현미 시의 창작 동기는 삶을 성찰하는 지적, 정서적 과정을 겪어가게 된다. 이때 시인이 견지하는 성찰의 에너지는 자기 인식의 과제를 충실하게 수행하면서 새롭고 아름다운 인간 존재론을 지향하게 된다. 그때 그는 궁극적 자기 귀환의 과정을 통해 어떤 존재론적 고처(高處)를 지향하게 된다.
만약 새가 되어 날 수 있다면
눈과 귀를 씻고 새털구름의 친구가 되어
길고 긴 청강淸江에서 시나브로 흐르고 싶어
높푸른 하늘에 가장 가까운 곳
눈꽃 열차를 타고 흩날리며 갈 수 있는 곳
멀리 산 첩첩 능선 너머 불어오는
서리꽃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
쉬엄쉬엄 오랜 누추를 활짝 말릴 수 있는
가끔 노루가 쪽잠을 자고 빗방울들이 스치듯 머무는
햇살과 별빛과 바람이 단골손님인 곳
내 안의 수많은 나, 눈부시게 소멸되는 곳
마음 한 자락 두둥실, 하루가 천 년인 듯
온갖 시름 사라지는 구름 여관에서
- 「구름 노숙 - 추전역」 전문
‘추전역’은 고지대로 둘러싸여 있으며 철도역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시인은 새가 되어 눈과 귀를 씻고 새털구름 친구가 되고자 한다. 강물처럼 구름처럼 흘러 “높푸른 하늘에 가장 가까운 곳”에 가닿고, 눈꽃 열차를 탄 채 눈을 흩날리며 능선 너머 불어오는 서리꽃 바람을 맞고자 한다. 오랜 누추를 말릴 수 있고 햇살과 별빛과 바람을 단골손님으로 맞아들이는 그곳에서 시인은 “내 안의 수많은 나”를 눈부시게 소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온갖 시름 내려놓은 구름 여관에서 온몸으로 노숙을 청하는 시인의 마음은 “오직 거기/한 줌 흙의 고향”(「우물쭈물하는 사이」)을 그리워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못내 뭉클, 뭉클해지는 지금”(「자꾸만 뭉클」)을 사랑하며 “고요한 마침표가 된 간이역”(「적막의 곁」)에 당도한 신성한 발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문현미 시의 지향은 시인 스스로 삶을 돌아보는 성찰과 기억의 과정에 있고, 그의 성찰과 기억은 스스로를 반성하는 실천을 아우르고 있다. 그 흐름이 남긴 예술적 문양이 바로 시인의 생의 형식이면서 그가 써온 시의 가장 중요한 내질(內質)이 되는 셈이다. 융융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문현미의 시는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꿈의 세계를 예비하여 현실과 꿈의 접점을 풍요롭게 언표하는 세계이다. 우리는 그 꿈이 세상의 폐허를 치유하면서 새로운 상상력을 추구해가게끔 해주는 형질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결국 그의 시는 남다른 기억의 힘으로 지난날을 속속들이 재현하면서, 그 시간을 항구적으로 간직하려는 꿈의 세계에서 발원하고 완성되는 언어예술인 셈이다.
한 영혼의 온전한 기억을 열정적으로 기록해온 문현미의 시는 합리성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구축되는 선험적 질서가 아니라, 이성이 그어놓은 표지(標識)들을 재구성한 근원적 질서에 의해 씌어진다. 그는 삶의 근원적 이치를 탐구하는 서정시의 존재론을 지향하면서 놀라운 서정적 순간을 조형해 보여준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서정의 존재론을 들려주는 ‘최초의 노래’로서 이번 열 번째 시집을 축하드리면서, 앞으로 시인이 더욱 아름다운 묵상과 기도, 성찰적 존재론의 세계를 아득하게 펼쳐가기를, 마음 깊이, 희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