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다양한 질병을 극복해오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선사시대(구석기시대), 고대(고대문명 발생), 고전기(동서양 간 활발한 교류), 중세(유럽 서구: 암흑시대, 유럽 동구: 비잔틴제국의 번영; 아시아: 이슬람제국과 중국 번영), 근세(유럽: 대항해시대, 아시아: 대부분 유럽의 식민지로 전락·퇴보) 그리고 근·현대(제1~4차 산업혁명, 제1, 2차 세계대전)를 거쳐오면서 역사적 사변과 함께 다양한 질병에 시달려 왔고, 그 질병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질병의 역사이면서 또 그 질병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역사인 듯하다.
선사시대(BC 700만 년~BC 1만 년) 인류는 수렵채집 중 입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비비거나 진흙을 바르는 등 동물과 비슷한 행위를 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자연적인 존재(홍수, 번개, 바다 등)나 초자연적인 존재(神이나 精靈)가 질병에 관여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하여 이 시기 인류는 애니미즘과 토테미즘에 의존했고,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샤먼 혹은 주술사들이 의사역할을 했다. 선사시대 동굴벽화나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원시문화 속에 남아있는 흔적으로 그 당시는 종교와 마법 그리고 의술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고대(BC 1만 년~BC 500년) 인류는 농업혁명(신석기시대, 집단생활과 동물의 가축화)과 도시혁명(촌락 → 부족사회 → 부족국가 → 도시국가)을 기반으로 동양에서는 강을 중심으로 4대문명(BC 4300년~3200년 사이, 메소포타미아문명, 이집트문명, 인더스문명, 황하문명 탄생)이 탄생했다. 한편, 서양에서는 동지중해(에게해)에서 고대 그리스문명 이전에 서양 최초의 에게문명(BC 3000년~1600년 사이, 크레타-미케네문명 탄생)이 탄생했다. 고대문명의 지도자들이 신전에서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역할(일종의 샤먼)을 맡으면서 종교의 힘은 더욱 강해졌고, 의학은 종교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시기에 메소포타미아문명의 다양한 약초와 외과술, 이집트문명의 파피루스의학, 인더스문명의 아유르베다의학, 황하문명의 약초, 침, 뜸 등 의술의 원형이 되는 치료법이 발달해 있었다.
고전기(BC 500~AD 500년) 초기는 칼 야스퍼스(Karl Theodor Jaspers, 1883~1969년)의 기축의 시대(BC 800~200년, Axial Age Civilization)가 절정을 치닫던 BC 500~300년과 연대기가 겹쳐진다. 고전기에 대략 고대 그리스·로마, 페르시아제국, 인도, 중국 등의 역사가 펼쳐졌다. 비록 이들 국가들은 거리상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가교역할을 한 페르시아제국으로 인해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그 영향으로 고대 그리스(아테네황금기의 철학사상)에서 중동(페르시아제국의 조로아스터교), 인도(브라만교, 불교), 중국(제자백가 사상)에 이르는 유라시아 전역에 걸쳐 새로운 종교와 철학사상이 등장하는 등 종교에 근본적 변화가 생겨났다. 이 신흥종교나 사상들은 각기 먼 거리에 떨어져 있었지만, 도덕성, 자기수양, 금욕을 강조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이 시기에 생긴 종교나 사상이 전 세계에 걸쳐 확산이 됐고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세계의 종교가 되었다. 종교나 사상의 교류와 함께 각 국가 간 발달된 의술(그리스ㆍ로마의 히포크라테스의학, 갈레노스의학, 페르시아제국의 준디샤푸르의학, 인도의 아유르베다의학, 중국의 음양오행론, 황제내경과 신농본초경 등) 또한 상호교류를 통해 발전될 수 있었다
중세기(AD 500년~AD 1500년) 서구유럽은 신 중심(반헬레니즘) 사회로 문화뿐만 아니라 의학이 그리스·로마 이전 수준으로 퇴보되었다. 서구유럽의 중세 전반기는 의학연구의 금지로 수도원 중심으로 약초요법(본초학 수준)이 사용되었고, 고대 외과술은 사라져 소작술이 그 자리를 대신할 정도로 의학의 암흑시대였다. 중세 후반기는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예술과 의·과학의 협력으로 인체해부학이 발전하였으나 실질적인 의학의 발전은 없었다. 반면, 그 시기 비잔틴제국, 이슬람제국과 중국(수, 당, 송), 몽골제국 등에서는 찬란한 문화와 역사가 펼쳐졌고, 꽤 수준 높은 의료행위도 행해졌다.
근세(15~18C)는 중세 말기 북부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르네상스운동(14C 중엽~16C)의 영향으로 서구유럽에서 대항해시대의 막이 열렸다. 이 역사적 사변을 계기로 세계 판도가 동양에서 서양으로 옮겨졌다. 15~16세기는 포르투갈을 필두로 대탐험이 시작되었고, 이를 배경으로 일어난 17세기 과학혁명(합리주의, 경험론, 기계론적 우주관, 하비의 혈액순환이론 등)을 토대로 18세기에는 계몽주의사상에 힘입어 의학이론과 연구업적들이 다량 축적되었으나 실질적인 의학발전은 거의 없었다.
근대(18C 말~19C) 초반의 의학수준은 18세기의 연속에 머물렀지만,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보건위생과 공중위생 관련 연구가 심화·발전하였다. 특히, 세균학(질병의 원인으로 미생물의 발견)을 매개로 병리학과 해부학이 융합되어 근대의학으로 진일보하였다. 이러한 19세기의 획기적인 의학분야의 업적과 산업혁명으로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현대(20~21C)에 들어 항생물질(항균성 약물, 페네실린, 백신 개발), 인공심폐장치, 정밀검사방법(초음파, X-ray 단층촬영, MRI)의 개발 및 인간 유전학의 발전으로 서양의학(현대의학)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렇듯 현대 인류는 엑스레이와 미세수술, 장기이식, 레이저, 로봇수술, 유전공학 및 AI 등 다양한 첨단과학과 의료장비 덕택에 무병장수의 꿈을 이루는 듯했다.
그러나 이러한 첨단 의·과학기술의 발전과 물질문명의 풍요롭고 편리함 속에 해마다 만성질환자가 급증하고 있고, 자연파괴에 의한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등으로 인류는 질병양상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최근, 인류는 사스, 메르스에 이어 코로나 바이러스(2019. 11~2023. 05)로 이어지는 신종 전염성질환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현대의학은 이러한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17세기 이후 서구철학(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우주관) 중심의 현대의학(서양의학)이 질병에 대한 심리적(영성), 사회적, 환경적 조화와 균형(자연치유)을 무시한 결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보편의학으로 질병치료에 공이 적지않은 서양의학(현대의학) 자체를 문제 삼자는 것은 아니다.
이제 더 이상 서양의 기계적, 분석적, 인과론적 세계관에 매몰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동양문명의 직관적, 종합적, 유기적인 세계관을 받아들여 상생의학(相生醫學)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