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ESG 경영’의 최고 전문가 최남수 교수가 말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와 ‘ESG’ 핵심 가치와 기업이 실행할 방향은 무엇인가?
국내 ‘ESG 경영’ 최고 전문가로 『넥스트 ESG』 『생물다양성 경영』 등을 출간한 최남수 교수는 3년 만에 출간하는 개정판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던지고 있다. 현재 워싱턴 컨센서스로 불려 온 신자유주의는 양극화 심화 등 많은 상처를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실상 사라진 상태이다. 베이징 컨센서스로 불리는 중국의 국가자본주의는 수치적 성과는 뛰어나지만, 민주, 자유, 신뢰 등 소프트파워의 결여로 대안이 될 수 없는 체제이다. 한때 ‘유러피안 드림’으로 불리던 유럽식 자본주의는 재정 위기를 거치며 힘이 빠진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이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핵심 가치는 기업 성장의 과실이 사회 전반에 흘러내리는 ‘낙수효과’를 복원해 골고루 잘 살고 환경 등 공존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건강한 사회와 경제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라고 최 교수는 진단한다. 세계적인 전략경영 전문가인 마이클 포터가 얘기한 것처럼 기업은 이미지 개선에 초점을 맞춘 사회적 책임 활동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이제는 가치 사슬 전반에 있어 고객, 근로자, 거래 기업,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를 존중하고 그들의 이익을 반영하는 ‘공유가치 창출’의 요구에 직면해있고 이에 대한 해답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인 것이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논의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중시하는 ‘ESG 경영’의 활성화로 구체화되고 있다. ESG는 지난 2006년에 UN이 제정한 ‘책임투자원칙(PRI)’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된 개념이다. PRI는 기업에 대한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ESG를 중시하도록 기준을 제시했다. ESG는 최근 들어 글로벌 경제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다보스 선언 2020’에서 기업의 성과는 주주에 대한 수익뿐만 아니라 ESG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측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도 본격화될 ‘넥스트 노멀(next normal)’ 추세 중 하나로 ESG를 들면서 녹색 기술 기업이 향후 수십 년 동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미국 나스닥은 2021년에 증시 전망을 내놓으면서 5가지의 큰 흐름을 제시했는데 ESG 투자의 가속화를 그중 두 번째로 꼽았다. 이렇듯 ESG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최남수 교수는 두 가지를 들고 있다. 먼저 팬데믹과 기후 변화 대응을 중시하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다 주주 이익만을 중시하는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고객, 근로자, 거래기업,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를 중시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는 것도 한 이유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ESG에 대한 기업 입장도 뚜렷하게 바뀌고 있다. 종전에는 규제 회피 중심의 소극적 자세였다면 이제는 비즈니스 모델 측면에서 수익을 추구하는 적극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팬데믹 국면에서 경기 회복을 위해 각국 정부가 그린 뉴딜 정책에 나서면서 자금이 녹색 산업에 몰리고 있는 데다 자본시장에서 ESG 성과가 부진한 기업을 기피하는 투자자들의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이제는 재생에너지나 친환경 제품 등 신사업을 추진하거나 저탄소 기술 도입 등으로 기존 사업을 환경친화적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ESG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고 있다. ESG가 돈만 쓰는 대상이 아니라 돈벌이도 되는 비즈니스로 전략적 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ESG를 중시하는 경영을 하는 기업은 성과도 좋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MSCI 보고서는 ESG 관리 수준이 높은 기업은 위험도도 낮고 수익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ESG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새로운 기업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맥킨지는 진단하고 있다고 최 교수는 소개하고 있다. 먼저 ESG는 기업의 신뢰도를 높여 추가적인 성장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롱비치는 대규모 인프라 건설 사업을 진행하면서 우수한 지속가능경영을 한 민간 기업을 참여시켰다. ESG가 제품에 대한 소비자 수요를 확대한 예도 있다. 유니레버는 물을 훨씬 덜 쓰는 식기 세척 세제인 ‘선라이트’를 시판한 이후 기업 이미지가 좋아져 다른 제품까지 매출이 늘어나는 성과를 올렸다. 비용을 크게 줄인 기업도 있다. 3M은 제조공정 개선과 폐기물 재사용 등 방식을 써서 22억 달러를 절감했고, 3만 5,000대의 수송 차량을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추진 중인 페덱스는 지금까지 20%의 차량을 교체해 연료 소비를 19억 리터 가까이 줄였다. ESG는 생산성 향상을 통해 기업 성과를 개선하기도 한다. 실력 있는 인재를 확보하거나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연구진이 포천지가 선정한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5년간에 걸쳐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의 주가 수익률은 다른 기업에 비해 2.3~3.8% 높게 나타났다.
국내 기업은 최근 ESG에 의욕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외국 기업에 비해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한국ESG기준원이 791개 상장법인을 대상으로 평가한 2023년 ESG 통합등급을 보면 가장 높은 S등급을 받은 기업은 한 개도 없고, A+는 19개에 그치고 있다. B등급 이하를 받은 기업이 58%에 달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ESG 경영이 취약한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제조업 강국이라는 점이 ESG에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온실가스와 폐기물 배출량, 에너지 소비량 등 환경 측면에서 개선할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판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ESG에 대해 ‘교과서’와 같은 정보를 제공하고 판단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이 ESG를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개혁 방향에 대해 개론적인 이해를 하고 더 나아가 심층적인 학습을 해나가는데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