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은 흔히 ‘생-로-병-사’의 과정으로 정의된다. 이 가운데 생과 로, 그리고 사는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과정으로 치부되는 반면, ‘병(病)’의 경우는 바라는 바도 아니거니와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하며, 불운과 불행이 아니라면 결단코 도래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이 평생 최소한 한두 차례의 질병에 걸리게 마련이고, 죽음에 이르는 최후의 순간도 결국은 자연스러운 ‘노-사’보다 ‘병-사’인 것이 더 흔한 사례이다. 따라서 ‘무병장수’가 인간의 본래의 삶의 행태이기보다는 ‘유병-단명’이 보편적인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확한 현실 인식이라고 할 것이다.
질병의 역사만큼 오래된 의학 발달의 역사는 인류-인간을 괴롭혀 오고 숱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수많은 질병을 퇴치하고 극복해 온 역사이다. 그러나 오래된 질병이 극복되는 속도만큼이나 새로운 질병이 발견되고, 또 의학의 발달 덕분에 수명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질병에 감염될 가능성도 커진 것을 감안하면, 인류가 막연하게나마 기대하고 있는 질병의 완전한 정복은 요원한 일일 뿐 아니라, 결코 도래하지 않을 사태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맥락과 배경 위에서 최근 들어서는 무병장수 대신 유병장수를 말하고, ‘인생은 결국 질병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라는 관념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질병이나 죽음을 멀리하고 늦추는 것을 게을리 하지는 않되, 그것이 닥쳐왔을 때는 또 그대로 그것을 직시하고 그것을 삶의 일부로 여기는 것, 질병까지도 포함하는 나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그 모든 것이 나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나아가 나의 나 됨은 그것을 포함하며 또 넘어서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삶의 태도가 점점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질병의 유발은 물론이고, 치유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다는 것은, 이만큼 의학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그러한 상황에 직면한다는 것은, 그때의 질병이나 고통은 생이나 노-사만큼이나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과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의 나 됨을 유지하고 나의 존엄을 수호하는 길이라는 인식도 마찬가지로 스며들 듯이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다.
이 책이 소개하는, 질병과 함께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섯 사례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인간의 ‘병’의 과정은 이 여섯 과정 경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승려 공동체에서 질병을 맞고 또 그것을 감당하며 질병을 벗어나거나 혹은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례는 ‘환자’로서의 인간이 주어진 조건 속에서 어떻게 투병하는가, 거기에 임하는 자세에 대하여 생각게 한다. 평생 지병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나름대로의 성취를 일구어 간 춘원의 경우 또한 자기 신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어떻게 자기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하는지 웅변한다.
또한 백신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부조리한 상황들은 우리가 현재 누리는 현대의학의 성취들이 얼마나 많은 부정한 과정을 통해 획득된 것인지를 돌아보게 하고, 그만큼 겸손함을 예비한다.
콘택트렌즈 개발사를 들여다보는 것은 그 자체가 인간의 질병 극복사의 축소판이라는 점에서 흥미진진하다.
또 투병중인 환자와의 돌봄과 대화 과정은 특히 오늘날 긴급하고 광범위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돌봄의 본질을 돌아보게 한다. 이주민들의 질병과 의료 접근성 문제는 앞의 승려 공동체에서의 발병과 치유, 질병을 대하는 태도의 경우와 유사하게, 우리가 다 같은 인간임을 말할 수 있기 위해서 어떠한 열린 시선과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생각게 한다.
이 책은, 세상에 태어난 사람, 하루하루 한 해 한 해 나이 들어가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언젠가 죽을 운명의 사람이라면, 마지막 하나, 우리가 좀 더 능동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질병과 우리 삶의 관계 맺음에 대하여 덤덤하지만, 의미심장하게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